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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8일 01시 57분 등록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 햇살과 나무꾼 옮김 / 윤정주 그림, 양철북



I. 저자에 대하여 :


  하이타니 겐지로


  ‘어린이’와 ‘문학’을 빼고서는 하이타니 겐지로를 이야기할 수 없다. 가난한 어린 시절, 작가를 꿈꾸던 하이타니는 교사가 되었다. 교사 시절 만난 아이들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말 그대로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다. 하이타니는 17년 동안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고, 아이들의 글을 엮어 <<선생님, 내 부하가 되라>>라는 책을 펴냈다.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 뿌리는 이 책에 있을 겁니다.”라고 작가가 말했듯, ‘그가 만난 어린이’야 말로 그에게 있어 문학의 원천이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문학을 이루는 한 축에 어린이가 있다면 또 다른 축에는 오키나와가 있다. 그는 형의 죽음과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오키나와로 떠난다. 작가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상냥함과 생명에 대한 존중 같은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rps지로는 1974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발표한다.

  이 책은 발간가 동시에 소리 없이 전해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백만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또한 일본뿐 아니라 세계 어린이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태양의 아들>>를 펴낸 뒤 1980년에 아와지 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섬이 관강지로 개발되자 1991년에 오키나와에 있는 작은 섬, 토카시키로 옮겨가서 살았다. 그리고 2006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남긴 작품은 아주 많지만 대표작을 꼽는다면 <<모래밭 아이들>> <<소녀의 마음>> <<우리와 안녕하려면>>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외톨이 동물원>> 등이 있다.


  이 책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MBC 느낌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의 선정도서 였으며 KBS 'TV 책을 말하다‘ 테마북 선정도서에 소개되었다. 또한 2002년 어린이도서연구회 권장도서에 선정되는 등 많은 분야의 선정도서로 권장되고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데쓰조는 잠자코 있었다.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때로 오해는 엉뚱한 곳에서 파리처럼 날아드는 법이다. 17p


  칭찬받은 것은 기쁘지만, 아다치 선생님의 이야기는 잘 모르겠어.

  데쓰조가 보물을 잔뜩 쌓아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보물이란 무엇일까? 데쓰조는 글씨도 쓸 줄 모르고 말도 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에 보물인지 뭔지가 숨겨져 있는 걸까, 하고 고다니 선생님은 생각했다. 22p


  데쓰조는 짧게 신음하듯 긍정인지 부정인지 분간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늘 있는 일이라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패거리는 말을 걸어 주는 방법으로 말수가 적은 데쓰조를 배려하고 있었다. 27p


  타락한다는 말이 있다. 바른 길에서 벗어나 나쁜 행실에 빠진다는 뜻인데, 어쩌면 고다니 선생님은 넉 달 동안의 고달픈 교사 생활을 잊으려고 귀엽게 타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1p


  데쓰조를 등 뒤에서 감싸 안았을 때 머리에서 냄새가 났다. 머리를 안 감았구나 하고 말하려다가 얼른 말을 삼켰다. 부모님이 없는 데쓰조에게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36p


  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다니 선생님은 가슴이 뻐근했다. 아직 엄마한테 어리광이나 부릴 나이인데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40p


  "선생님과 기미는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요. 오늘만 해도 선생님은 아무 말씀 안하셨는데, 기미는 순순히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뉘우쳤으니.......“

  “글세, 과연 그럴까요?”

  아다치 선생님은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나쁜 짓을까?”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비워 버리고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나 지금의 나야 잘 모르겠지만, 60엔을 받았을 때 기미가 얼마나 기뻤겠소. 오늘 아빠가 안 들어오면 밥을 굶겠구나 생각했을 때, 설령 나쁜 짓으로라도 60엔을 벌어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겠소.”

  술기운이 도는지, 아다치 선생님의 말씨에 사투리 억양이 배어 나왔다.

  “기미가 어른처럼 말할 수 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거요. 내가 열심히 가르쳐서 겨우 20엔 받은 게 뭐가 나쁘냐고. 그때, 선생님은 할 말이 있겠소?”

  취하기는 했지만, 아다치 선생님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기미는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뉘우친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찾아와서 아무튼 그만두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 오직 한두 명뿐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만두라고 하니까, 할 수 엇지 뭐. 기미는 그런 심정이었을 거요.”

  고다니 선생님은 아다치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42p


  바쿠 할아버지는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힌 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는다 싶어서 그만....... 선생님은 젊은 여자분이라 더욱 말씀드리기가 거북하더군요. 게다가 처리장 아이들은 학교에서 노상 미움을 받는다는 말도 들은 터라, 데쓰조가 미움을 받으면 거엾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데쓰조가 파리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화를 냈어요. 여간해서 때린 적이 없었는데도 그때는 마구 때리고 화를 냈지요. 병도 깨부숴 버렸고요. 그런데 꾸중을 들어도 매를 맞아도 파리를 기르지 뭡니까. 그러다 보니 화도 못 내겠고 때리지도 못하겠더군요. 이 녀석은 어미도 없고 아비도 없습니다. 세상에 서 아무도 귀여워해 주는 사람이 없죠. 그렇게 상각하니, 파리를 키운다고 화를 낼 수가 없었어요. 정 그렇게 파리가 귀엽다면 키우거라, 하지만 사람들은 파리를 싫어하니까 남들 눈에 띄지 않는 데서 키우거라 하고 말했습니다. 고다니 선생님, 파리를 기른다고 해서 데쓰조가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것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데쓰조가 파리를 기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데쓰조가 후미지인가 하는 얘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선생님께 다 털어놓을 걸 그랬습니다. 파리 얘기를 숨기고 병을 도둑맞았다는 얘기만 한 게 잘못이었어요. 그 병 속에는 데쓰조가 금사자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하던 파리가 들어 있었어요. 굉장한 놈이었지요. 보통 파리는 아무리 커도 1센티미터가 고작인데 금사자는 2센티미터쯤 되었을까요. 번쩍번쩍 금빛이 나는 게, 왕처럼 거만했어요. 그걸 도둑맞았기 때문에 데쓰조는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슬퍼했답니다. 후미지라는 아이를 때렸을 때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나 아끼던 것이었으니 내심 그럴 만도 하다 싶더군요. 선생님께 걱정을 끼쳐 늘 죄송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아이니까 귀여워해 달라는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도 사람의 자식이니까 사람 친구가 있었으면 싶은 거예요. 데쓰조는 어엿한 사람의 자식입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한 마디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56-58p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은 이삼 일씩 이어지듯이, 나쁜 일도 한꺼번에 찾아오는 법이다. 60p


  "데쓰조는 사람의 자식이니까 사람 친구가 있었으면 싶은 거예요.“ 라고 말하던 바쿠 할아버지의 말이 고다니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66p


  가슴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다니 선생님은 ‘내가 괴로운 건 당신이 말하는 괴로움과 달라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밤 고다니 선생님은 위스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 세상에 홀로 태어난 듯이 외로웠다.

  위스키 병 주둥이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 고다니 선생님은 파리를 쫓아 버리지 않고 마냥 바라보았다. 언제까지나 그 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73p


  고다니 선생님도 파리의 먹이가 세균인 줄 알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오해였다. 파리의 먹이는 세균이 아니었다.

  ‘파리는 세균을 먹기 때문에 대단히 불결합니다.’

  선생님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

  ‘파리는 세균이 붙어 있는 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그러니까 더럽거나 상한 음식은 빨리 처리해서 파리가 꾀지 않도록 합시다.’ 라고 가르쳐야 옳을 것이다. 88p


  홧김에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병 주둥이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고다니 선생님은 그때 왠지 그 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술에 취한 탓이었을까? 누구라도 좋으니 따뜻한 위로 하 마디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울고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아무튼 고다니 선생님은 그 파리가 정겨웠다. 88-89p


  고다니 선생님이 보여 준 글은 다음과 같았다.


  파리는 나면서부터 부모한테 버려진 채 평생 친구도 가족도 집도 없이 혼자 산다. 항상 벌, 거미, 참새 등의 위협을 받지만 남을 위협하는 일은 없고, 먹이라고는 인간 사회의 폐기물밖에 없다. 파리의 생태는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잔인하지 않으며 극히 조촐한, 말하자면 서민들이 사는 모습과 닮았다. 92p


  데쓰조가 말을 했다. 데쓰조가 드디어 말을 해 주었다. 고다니 선생님은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자꾸 웃음이 나오는 통에 당황해서 몇 번이나 입을 가렸다. 100p


  뭐 이런 아이들이 있을까. 어제 사토시 사건도 그렇고 오늘 일도 그렇고, 도대체 이 아이들에겐 사람의 마음이 있는 것일까. 친절함이나 동정심 같은 것이 한 조각인들 있을까. 105p


  불현듯 고교 시절의 은사님 말씀이 떠올랐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서 동경대 나온 멍청이로 통했다. 외모가 볼품없고 점심때마다 궁상맞게 가락국수만 먹는 것이 등이 그 원인인 듯했다. 학생들은 그 선생님 앞에서는 태연히 커닝을 하거나 떠들어 댔다.

  고다니 선생님은 아무래도 그 선생님을 업신여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갑자기 그 선생님이 말했다.

  “인간은 저항, 즉 레지스탕스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인간이 아름답게 존재하기 위해서 저항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다들 멍하니 있었다. 고다니 선생님도 말뜻을 잘 알 수 없었다. 그 뒤로는 그 말을 잊고 지냈다. 그 말이 지금 떠오른 것이다.

  “인간이 아름답게 존재하기 위해 저항을.......”

  고다니 선생님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데쓰조와 사토시, 처리장 아이들이 떠오른 탓이다. 그리고 아다치 선생님도.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두냐고 선재동자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아름답지 않을까? 어제의 아이들은 왜 아름답지 않았을까?

  처리장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생각했다. 파리를 기르는 데쓰조의 강한 의지를 생각했다. 빵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사토시의 진지함을 생각했다.

  ‘나는.......“

  고다니 선생님은 파랗게 질려서 일어났다. 그 등에 매미 울음소리가 무참하게 꽂혔다. 109p


  "자, 그럼 지금부터 좋은 녀석과 나쁜 녀석을 가르쳐 줄 테니, 귀를 후비고 잘 들어라.“


  아디치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칠판에 다음과 같이 썼다.


  - 한 것

  - 본 것

  - 느낀 것

  - 생각한 것

  - 말한 것

  - 들은 것

  - 기타


  그리고 ‘한 것’ 위에 ×표시를 하고 나머지에는 모두 ○표시를 했다. 117p


  "글은 좋은 녀석과 나쁜 녀석이 쉽게 구별되어서 괜찮지만, 사람은 좀처럼 그렇지가 못해, 좋은 녀석인가 싶으면 나쁜 년석이기도 하고, 좋은 녀석인데도 나쁜 녀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다치 선생님은 뒤에서 듣고 있는 선생님들을 비꼬고 있는 것 같았다. 119p


  아디치 선생님은 눈이 부신 표정을 지었다. 아다치 선생님도 약간은 편애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선생님 흉내는 내지 않겠어요.”

  “흐음.”

  아디치 선생님은 기쁜 얼굴을 했다. 대개의 선생님들은 ‘한 번 따라 해 보겠습니다’라든가 ‘가르쳐 주세요’라고들 한다. 아디치 선생님은 그런 사람은 딱 질색이다.

  “어렵겠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 가도록 하겠어요.”

  “암요, 그러셔야죠.”

  아다치 선생님은 한결 기쁜 표전을 지었다. 그리고 이 사람, 꽤 많이 달라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다니 선생님.”

  “네?” 하고 돌아보자, 아다치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오늘, 아주 예뻐요.”

  “바보.”

하고 말하고 나서, 고다니 선생님은 자신의 거친 말투에 스스로 낯을 붉혔다.

  어느덧 아다치 선생님을 꽤 닮아 가고 있었다. 121p


  고다니 선생님은 새삼 인간의 재능이 신비하다고 느꼈다. 데쓰조는 파리 그림을 그렇게 정확하게 그리면서도, 글씨는 보통 아이들처럼 연습한 만큼만 늘었다. 열정을 쏟은 것에는 사람의 재능이 한없이 뻗어 나가는 모양이다. 127p


  고다니 선생님은 잡동사니를 바라보면서 ‘까마귀의 저금’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까마귀는 쓸모없는 물건을 모으는 버릇이 있다. 찢어진 풍선이든 구두끈이든, 뭐든 중지로 물고 와서 모아 놓는다.

  뭔가를 모으는 점은 까마귀의 저금을 닮았지만, 처리장 아이들은 폐품을 이용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마음을 저금하고 있구나, 하고 고다니 선생님은 생각했다. 132p


  바쿠 할아버지는 한층 더 기쁜 얼굴로 말했다.

  데쓰조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파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그 책을 받은 뒤로는 늘 저런답니다. 하지만 저는 기뻐요. 파리를 기르거나 기차한테서 벼룩이나 잡던 애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138p


  바쿠 할아버지는 그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다니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예요. 저는 rdn 사흘 만에 낱낱이 불어 버렸죠, 이틀쯤 뒤에 헌병이 저한테 그 결과를 보여 주었어요. 글쎄, 한 열두세 채쯤 되었을까요? 집은 흔적도 없이 타 버리고, 시커멓게 탄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더군요. 작은 시체도 있었으니까, 여자와 아이들까지 가차없이 죽여 버린 모양이었어요. 아까 인간이란 쉽게 악마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제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 시체를 보고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보다는 이젠 살았구나, 하고 기쁨이 솟구치더란 말입니다. 난 용생이 한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용생이 어머님한테 뭐라고 사죄해야 할까요.”

  바쿠 할아버지는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은 한번 못쓰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지요. 입 다물고 있으면 누가 알겠냐 싶더군요. 그 뒤로는 흔히들 그렇듯이 술과 여자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 배, 저 배를 타고 다니며 유랑자가 되고 말았지요.” 143p


  "과거에 대한 죗값이 그렇게 돌아왔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선생님, 그건 달라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용생이나 용생이 어머님, 그리고 조선 사람들에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원한으로 따진다면, 저는 조선 사람의 원한을 사서 온몸이 구멍 투성이가 되었을 겁니다. 용생이 어머님은 내 죄를 용서하신 대신 아들 몫까지 살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나지 못한다면 김용생을 세 번씩이나 배신하는 꼴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답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을 울려서 죄송합니다. 술내기를 하쟀다가 그만, 죄송합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아뇨.”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고우신 까닭을 알았어요. 눈매가 곱디고운 이유도 알았고요.”

  바쿠 할아버지는 벽장에서 커다란 꾸러미를 꺼내 왔다. 종이로 꼼꼼하게 싼 꾸러미였다. 속에서 첼로가 나왔다.

  그러면서 바쿠 할아버지는 첼로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할아버진 지금도 첼로를 켜시나요?”

  “아니오. 켜지 않습니다. 이제 곧 용생이하고 같이 켜야지요. 그때까지 이 첼로를 잘 보관해 둬야겠지요?”

  고다니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45p


  "어떻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가르쳐 드릴까요? 난 미나코가 공책을 찢어도 화 안 내요. 책을 찢어도 화 안 애고요. 필통이랑 지우개를 빼앗겨도 화 안 내고 기차놀이를 하고 놀았어요. 화 안 내니까 미나코가 좋아졌어요. 미나코가 좋아지니까 귀찮게 해도 귀엽기만 해요." 164pㅇ


  "아까 치료라는 말을 썼는데, 위가 나빠서 치료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무라노 선생님은 뭔가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무식한 겁니다. 대뇌의 세포, 즉 신경 세포가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중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로, 정신지체 장애아의 교육이 다른 교육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라노 선생님은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반문했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오늘날 정신지체 장애아 교육에 있어 가장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7일 빌레펠트에 세워진 의료복지 시설에서 정신지체 장애자들과 평생을 함께한 어느 수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효과가 있으면 하고 효과가 없으면 안 한다는 생각을 합리주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인간의 생활 방식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인생입니다. 그 인생을 이 아이들 나름대로 기쁜 마음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요. 무라노 선생님, 우리 교사들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아마 이 이야기를 모를 겁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 바로 고다니 선생님 아닐까요?"

  무라노 선생님은 할 말이 없었다.

  "고다니 선생님은 어제부터 내내 울고만 있습니다. 왜 울어야 하죠?" '울지 말아요, 고다니 선생님!' 하고, 우리 모두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좀전에 얘기한 시설의 자원 봉사자 중에는 실업자와 극빈자, 비행 청소년까지 섞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장애자라고 부르지만, 마음에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따지면 우리도 역시 똑같은 장애자입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우스이 데쓰조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고, 피를 토하는 듯한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데쓰조에게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고다니 선생님에게는 문제아도, 장애아도, 선생님도 모두 고뇌하는 인간 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퇴근하는 길에 서쪽 교사 뒤편에 한번 가보시죠. 거기에는 두 개의 작품이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하고 신선한 작품입니다. 바로 문제아 데쓰조와 정신지체아 미나코가 함께 만든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여러분은 그 데쓰조가, 그 미나코가 하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정신지체아라는 소리를 듣고, 문제아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이들을 고다니 선생님네 반 아이들은 따뜻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은 선생님을 비롯한 아이들이 다들 흙투성이가 되어 지내온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고다니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울지 말아요, 고다니 선생님! 하고, 따뜻하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192-193p


  그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고다니 선생님은 빙글 돌아섰다. 고다니 선생님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거려, 고다니 선생님이 울고 있다는 것을 모든 아이들이 알았다. 준이치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고, 그때까지 참고 있던 미치코가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데루에는 훌쩍거렸고 다케시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들 쓸쓸한 얼굴로 차갑게 식은 급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204p


  빨간 병아리도 파란 병아리도 울음소리는 같았어. 자연 그대로인 노란 병아리도 같은 소리를 내겠지. 소리까지 염색할 수는 없을 테니가. 그렇게 생각하니 빨간색, 파란색으로 물든 병아리의 울음소리는 처절한 저항의 표현 같았다. 221p






III. 내가 저자라면


  나는 이 책을 읽고 고민에 빠졌다. 우리나라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쓰겠다는 것은 너무 경솔한 생각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더욱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진지해 지기 시작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는 하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나서는 한 동안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이 책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는 등장인물이 참 많다. 그 중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인물은 고다니 선생님과 아다치 선생님 그리고 바쿠 할아버지다. 고다니 선생님은 책의 주인공이다. 어쩌면 초등학생 데쓰조가 주인공이 되겠지만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고다니 선생님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 고다니 선생님과 데쓰조의 인연, 이 두 사람이 펼쳐가는 여러 상황 속에서 고다니 선생님이 데쓰조를 통해 어떻게 커가고 있는지 저자는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다치 선생님은 아마도 작가의 또 다른 내면적 바람을 담아 놓은 듯하다. 교사가 되어 학교와 말 못하는 충돌을 아다치라는 인물을 통해 토해내는 듯하다. 현실적 답답함을 괴짜교사로 불릴만한 인물을 등장시켜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는 작가가 젊은 교사들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또한 데쓰조의 할아버지인 바쿠 할아버지를 통해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자신의 나라 일본이 과거 어떠한 나라였는지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다니 선생님은 바쿠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을 배워간다.

  데쓰조는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아이다. 말도 잘 못하고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조차 자라지 못했다. 쓰레기처리를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파리를 키우는 것이 전부인 아이다. 이 아이의 담임이 된 고다니 선생님. 그녀 또한 이제 막 부임한 신출내기다.

  작가는 데쓰조를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으로 그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데쓰조가 배운 것은 할아버지의 살아가는 생활뿐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도 세상과의 대화꺼리가 있었는데 그것이 파리를 기르는 것이다. 더러운 곤충으로 취급받아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파리는 데쓰조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작가는 파리를 매개로 하면서 파리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면은 책속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파리에 대해 꽤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그 내용을 데쓰조와 고다니 선생님을 통해 책속에 고스란히 담아놓은 솜씨가 일품이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대하기를 꺼려하는 파리와 데쓰조는 너무도 닮아있다.


  이러한 데쓰조를 고다니 선생님은 파리 박사로 만들었고 여느 아이들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아이로 그 모습을 찾아주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그 아이를 가르친 다기 보다 그 아이가 하는 것을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것이었다. 데쓰조는 파리를 통해 글을 익혔고 자신을 위해 애쓰는 고다니 선생님의 마음을 읽었다.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와 함께 파리 연구를 했다. 그렇게 징그러워했던 파리에 대해 그녀가 알아낸 것은 대단했다. 더러운 곳에 꼬이는 파리지만 그 더러운 곳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것. 파리가 더러운 곳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결과는 고다니 선생님이 바쿠 할아버지와 나눈 다음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고다니 선생님, 파리를 기른다고 해서 데쓰조가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것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데쓰조가 파리를 기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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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2.21 07:55:53 *.209.172.49
홍스 너무 걱정하는 건 아니지?
소설에는 많은 인물이 나와서 좋더라. 거기에는 살아있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얼굴이 붉은 사람이 있잖아.
홍스의 이야기에도 그런게 있을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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