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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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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4일 15시 17분 등록
발칙한 한국학 (J. 스콧 버거슨 지음, 주윤정‧최세희 옮김, 이끌리오, 2002)
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이 특별히 시간 내서 뒤지고 다닌 한국의 자유지대

J. Scott Burgeson.. 1967년 미국 네브라스카의 링컨 시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했다. 1991년 버클리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자유기고가로 활동하였으며, 1994년 오사카를 시작으로 지금껏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부정기발행 잡지인 「버그(Bug)」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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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한국에서 즐겁게, 공짜 떡볶이 먹으며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는 법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한국 언론인들이 나에게 접근하는 태도이다. ‘와, 여기에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귀여운 외국인이 있네. 정말 깜찍하고 별난 놈이군.’ 그러나 그런 태도의 사람들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내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첫째 관심은 외국인에게서 한국 문화가 굉장히 멋지고 위대하다는 인정을 받아내는 데만 있다. 게다가 나는 백인이고 미국인이니까 훨씬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쩌다가 내가 그들의 은밀하고 암묵적인 목적에서 한 걸음이라도 발을 빼면, 그들은 정말로 화를 낸다.

저녁 식사 후에 우리는 이태원에서 한 장면을 더 찍어야 했지만, PD선생은 피곤하다며 내일 마저 찍자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들은 그날 촬영한 분량을 살펴보았는데, 사용할 수 없다고 전했다. 다시 말하자면 나에 대한 방송은 취소가 된 것이다. 그래, 별로 신경쓰지 않아. 최소한 공짜로 떡볶이랑 바가지 한국 음식을 저녁으로 먹었으니까. 게다가 아주 소중한 교훈을 얻지 않았는가? 만약에 당신이 외국인인데 한국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면 한국 정부를 ‘멍청하다’든지 서울이 추하다든지 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꼼장어나 도크 탕처럼 이미지에 나쁜 음식은 먹지도 말고. 쉽게 말하면, 그저 시키는 것만 하고, 쓸데없이 물어보지 말라고. 있으란 곳에나 있으면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한정된 사실보다 훨씬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여기 한국에서나 다른 곳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결코 언론에 나타난 외국인의 추상적 이미지에 대항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만 했다면 너무 부정적이고 반동적일 테니. 삶은 그렇게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일에만 매달리기에는 너무도 짧고 달콤하다. 나는 되도록 창조적이고 적극적이기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글을 쓰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주 간단히 이렇게 대답한다.
“재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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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 대한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들

전설에 따르면, 한국 민족의 어머니는 21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지내다가 여자가 되어, 빨리 임신하게 해달라고 졸라서 천제의 아들과 잠깐 결혼한 곰이었다. 그들의 맏아들이 바로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이다. 오늘날에도 별 다를 바가 없어서 많은 여자가 마늘 냄새를 풍기며 자기의 맏아들이 언젠가 왕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 나라, 한국.
하지만 옛날 전설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면 안 된다. 현대의 한국 여성들이 사나운 곰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결혼한 후의 일이니까. 한국은 아마 성(性)이 셋인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지만, 사람들은 열렬히 새것을 숭배한다. 예의범절을 엄격하게 강조하는 나라지만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마구 밀치며 지나가고 발을 밟는다. 노인들은 상당히 복잡한 체계를 지닌 한국어의 높임말에 따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낸다. 그렇지만 그들은 앞에서 문을 잡아준다든지 하는 배려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반말을 듣는 것이 면전에서 문이 꽝 닫혀버리는 것보다 더 마음 상하는 모양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사회여서 노인에 대한 공경이 사회의 공식적인 규범이라지만 실상은 완전히 딴판이다. 패션, 엔터테인먼트, 출판, 레스토랑, 여가 산업 등은 거의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에서 세상은 젊은이들의 것이어서, 그들은 “세상을 다 가져라”라는 주문을 받는다. 하지만 30줄을 넘기면 즐거운 생활에는 안녕을 고해야 하고, 사회는 그들에게 관심을 뚝 끊어버린다.

한국의 예술이나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미적 가치를 한(恨)이라고 하는데, 그런 무거운 감정은 실제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가벼움과 경박함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지나치게 진지한 것은 촌스럽게 여겨져 거의 금기시된다. 나는 이곳의 많은 젊은이가 맥도날드나 버거킹 따위의 쓰레기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하는 걸 ‘쿨’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남들과 똑같이 구는 것을 쿨하다고 생각하는 게 참 이상하다. 오히려 독특하고 별난 사람들은 조금 못나다고 여겨지고 말이다.

나는 20대의 다 큰 여자들이 가방과 휴대폰에 토끼 인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참 이상하다. 나는 평화를 설법해야 할 스님들이 다른 스님들이나 경찰들과 각목을 휘두르며 싸우는 게 참 이상하다. 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된 대중교통 시설을 놔두고 자가용을 몰며 교통 정체에 갇혀 시간을 낭비하는 게 참 이상하다. 한국 사람들은 벌레(번데기)를 먹는데, 내가 감자튀김을 먹을 때 케첩 대신 마요네즈를 달라고 하면 나를 벌레 쳐다보듯 보는 게 참 이상하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으면 정력이 세진다고 믿는 게 참 이상하다. 물론 개가 돼지나 소보다 더 귀엽다며 개고기 먹는 것을 비판하는 외국인들이 더 이상하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굉장히 민족주의적이지만, 해방 후 두 강대국에 의해 두 동강 나 끔찍한 전쟁을 치른 것도 참 이상하다. 오늘날의 적지 않은 한국인이 통일보다는 차라리 분단을 선호한다고 한다. 진정한 민족주의의 목표는 조국통일이 아닌가? 하여튼 참 이상하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매우 이상한 곳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론화하고 부정해도 그 기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 점이 참 고맙다. 사실 어거지로 짜맞춰진 동일성이나 표준화 따위야말로 고전적 제국주의의 초석이었고, 오늘날에도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의 기본 요소이다. 그런 세계화는 전세계를 동일한 표준 아래 두어, 예측할 수 있고 잘 경영할 수 있는 시장으로 만들고, 기업의 투명한 대차대조표만큼이나 지겹고 단순하며 이차원적인 세상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나랑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자라고 교육받아서, 내가 익숙한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기에 한국인들과의 관계가 재미있다. 나는 미국이나 서양이 한국보다 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도,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상할 따름이다. 어떤 인종이나 민족도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함에 관한 한 나는 절대 자유주의자이다.

2. 한국에 있는 외국 마을 표류기

▶ 한국의 텍사스촌, 부산

내게 부산은 세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 영화, 그리고 러시아인들. 우선 일본. 부산은 내가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몇 년 동안 해마다 시모노세키로 가는 페리호에 오른 곳이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는 열기가 정말 뜨거워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빼먹지 않는 행사이다. 그리고 러시아인들. 부산에는 러시아인이 정말로 많다. 부산은 큰 항구 도시이고, 러시아는 배로 해도 얼마 안 걸리는 거리이니까. 이런 모든 것이 짬뽕되어, 부산은 정말 근사한 국제적 분위기가 넘쳐나는 신나는 공간이 되었다.

▶ 또 하나의 세계, 이태원

나는 이태원을 ‘똥태원’이라 부르곤 했다. 한국의 팻퐁(태국의 유흥가), 매력은 절반, 가격은 두 배, 약탈자 일본 병사들이 임진왜란 당시 운정사의 비구니들을 강간해 임신시킨 후, 사생아로 태어난 곳. 한국전쟁 후 양키들이 군 기지를 용산에 세운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쟁 중에 생겨난 셀 수 없이 많은 사생아와 고아가 가뜩이나 뒤섞여 있는 곳을 더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요즘에 나는 전에 없이 이태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너무나도 어지럽고, 예측 불허이다. 이태원은 신선하고 활기 넘치는 요소, 주류 한국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라고는 볼 수 없는 요소로 넘쳐난다.

▶ 리틀 마닐라, 대학로

점점 늘어나는 필리핀인에게 대학로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혜화동 성당이 있고, 매우 크고 활기찬 거리의 장터, 수입된 필리핀 상품이 주를 이루는 장터가 혜화동 로터리 주변에서 매주 펼쳐진다.

한국에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당신이 부자이고 비싼 차를 가졌다면, 사회는 당신을 감탄의 눈으로 쳐다본다. 당신이 빈털터리에 뚜벅뚜벅 걸어 다닐 뿐이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면, 사람들은 당신을 팔꿈치로 밀치고 잡아당기거나 하여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하게 한다. 물론 고의는 아니다. 다만 당신은 부재하는 존재이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젊고 아름답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찬양하며 달콤한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이 장님 같은 장애인이면, 혹은 인생이 ‘끝장’ 나버린 사람이라면, 사회는 당신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버린다. 당신은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다.

외국인 사이에서도 그런 차이는 존재한다. 외국인이란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백인을 연상한다. 아마도 미국인. 혹시라도 흑인 등. 백인이 아닌 사람이 떠오르기도 할까? 백인은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좀더 강한 멜라닌 색소를 지닌 이들보다 한층 더 ‘잘 보인다’. 이런 모순은 두 가지 이유로만 설명될 수 있다. 재한 외국인들이 밤에만 돌아다녀서 피부가 밝은 사람이 피부가 검은 사람보다 더 눈에 잘 띄거나, 아니면 한국인들이 인종 차별적이거나.

▶ 한국의 차이나타운, 인천

최근 경제 제재가 많이 완화되기는 했다지만, 중국인은 여전히 규모나 기타 여러 면에서 사업상 차별의 대상이다. 어찌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다. 한국인이 화교 동포와 동등하게 경쟁하기에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 뭔가.

3. 내가 아는 재미있는 사람들

▶ 황금빛 코란을 든 사나이

수천, 수만 명의 한국인 이슬람교도(무슬림)가 불교도, 유교도, 기독교도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올리고, 돼지고기와 술을 금하며, 마호메트를 창조주의 마지막 예언자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지.

한국인들이 무슬림과 교류하기 시작한 시기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668~935)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후로 종교에 대해 관대했던 고려시대에 꽃을 피우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불교와 마찬가지로 핍박받으면서 이슬람교의 영향은 빛을 바래게 된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이슬람 문명을 향한 개방이 새롭게 이루어지면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 아래에서도 시들지 않고 다시 부활한다. 오늘날 이주 노동자 외국인과 그 밖의 외국인까지 합치면 알라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는 한국 내 무슬림의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이슬람교는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로 지구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6억 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음에도 너무나 쉽게 무시된다. 특히 서구에서는 테러리즘과 연관지어 이슬람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고, 이슬람교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배우는 것조차 막는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한국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무슬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수준은 위험천만한 극단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 재일교포 3세 클럽 DJ

일본에 가면 거리에 나다니는 모든 아이가 유명한 DJ가 되길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온 집(댄스 테크노 일종)을 들썩이게 하고 한국의 면상에 빵빵한 엉덩이를 흔들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후지와라 욘테이다. 도쿄 출신의 이 멋진 친구는 전영택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하지만 홍대 부근의 모든 클럽 키드는 그를 심오한 드럼 앤 베이스의 광인 DJ 후지와라로 알고 있다.

▶ 한국을 찍는 비디오 작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유명해진 외국 출신 아티스트 중에는 단순히 외국인이어서 유명해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말로 출중해서 유명해진 경우가 있다. 올리버 그림(Oliver Griem)이 흔치 않은 후자에 속한다. 6~7년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그는 한국을 심층적으로 파헤쳤다. 그가 1994~1995년까지 1년간 만든 다큐멘터리 는 한국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었고, 국제적인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 레이건 옷을 만든 주문맞춤 스타일리스트

‘김’은 한자로 ‘황금’ 혹은 ‘돈’을 의미한다. 그에겐 더없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성이다. 영어로 풀어보면 U. S. 김은 ‘미국의 돈’이 되니 말이다.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양재사이다. 아마 한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양재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반드시 그를 인터뷰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남한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과 남한의 긴밀한 연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0순위의 인물이겠기에. 뿐만 아니라 양복, 즉 서구 스타일의 옷을 만드는 전문가로서 그는 ‘서구의 양재’ 방식이 한국인을 비롯한 모든 비서구인의 몸에 어떻게 하면 딱 맞을 수 있는지 안다.

마침내 나는 서울 중심부에 있는 이태원에서도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용산 미군 제8기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그의 가게에 들렀다. 가게 벽에는 레이건, 슈바르츠코프와 유명한 미국 장관들의 사인과 사진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보다는 괄목할 만한 봉사 정신으로 오랜 세월 양복을 만들어온 그에게 오로지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U. S. 김, 만세!

4. 내 친구들이 들려준 흔치 않은 이야기들

▶ 시베리아의 동쪽 : 북한 영화 전선에 대하여 - 요하네스 숀헤(Johannes Schonherr)

나는 늘 이상하고 기괴한 영화와 그것의 고향에 매혹된다. 동구권에서 오래 살았고, 뉴욕에서 ‘전복의 영화제’를 개최하고, 동경에서 일본의 사이버펑크 영화에 빠진 지 몇 년, 내가 가볼 곳이라고는 이제 북한뿐이었다. 분단 한반도의 적대적인 반쪽은 영화광이자 술주정뱅이 지도자가 통솔하는 집단이 아닌가. 게다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제목은 ‘피바다’, ‘고려녀무사’, ‘의용군녀병사’ 따위다. 더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 한국의 아나키 - 일레븐 그린스톤(Eleven Greenstones)

한국 아나키스트의 역사를 알기 어려운 이유 중에는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이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당시 운동의 이상에 맞물린 상태로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1923년에 의열단 선언문을 쓴 아나키스트 신채호는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선언문을 서술했다. 나는 투옥되어 고문을 받았던 수많은 반제국주의자 아나키스트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3호선을 타고 독립문 근처의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다. 나는 내가 찾는 사람들이 아나키스트였다는 사실을 전해들을 수 없었고, 대신 의사(義士)나 ‘애국 열사의 거국항쟁’ 같은 말을 들었다. 수많은 아나키스트가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 나란히 국가 해방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런 상황은 민족주의자와 아나키스트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기 어렵게 했다.

▶ 서울을 뒤흔들어라: 식보이 프로덕션과 한국 클럽 씬의 리믹스 역사 - 롭 하커(Robb Harker)

식보이를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은 대체로 좋았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모두 있었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다. 외국인으로서 서울에서 사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할 수는 있다. 한국의 테크노 씬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아직은 파티에 오는 이가 적어서, 유명한 디제이와 일하려면 스폰서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식보이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동안은 일을 계속할 셈이다.

▶ 아웃사이드 컨트리 피플: 외국인들, 한국에 대해 온라인 대화를 나누다

네트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관계에 상관없이 좀더 자유롭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네트 안의 사람들이 아마도 실생활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까지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것은 논쟁의 조건을 확장한다.

논의에 참여한 열두 명의 기묘한(?) 사람들은 한국식 표현을 따르면 ‘외국 사람(oeguk saram)'들이다. foreigner가 가장 넓게 쓰이고 있는 단어이긴 하지만, 완전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한국어 외국 사람이 내포하고 있는 한국성의 핵심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로 나는 한국말 ’외국 사람‘을 글자 순서대로 영어로 옮긴 ’outside country people'(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 정의야말로 외국 사람, 외국인이라는 말이 지닌 고유한 풍미와 정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서이다. 또 한국적으로 국지화된 영어, 즉 귀여우면서도 투박하고 친근감이 들면서도 기괴한, 한마디로 상충적인 요소를 다 지닌 콩글리시의 예를 보여주기에도 나쁘지 않다. 좀더 따져 보면 이 정의야말로 외국인으로서 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실재이기도 하다.


***


미국인 문화비평가 스콧 버거슨이 6년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에 대해 솔직히 느낀 바를 털어놓은 책으로 주류문화를 외면하고 그만의 독특하고 삐딱한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았다. 산만하다고 할까, 온통 뒤죽박죽된 느낌과 익숙하지 않은 구성에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가벼운 잡지인 듯 하다가도 묵직한 심각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참 얄미울 정도로 똑똑한 외국인이다. 정확하게 핵심을 파악하고, 또 그것을 ‘발칙하게’ 표현하는 진지한 당당함에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것을 ‘쿨’하다고 하나?

36개국을 방랑하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일본에서 친구로 사귄 한국인 야쿠자와 스트립걸이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자랑하는 것이 신기해 '은둔자의 나라'를 찾아보기로 했다"라고 설명한다.
한국을 분석하기 위해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문헌 조사였다. ‘족히 수백 권은 읽었다’는 그는 먼저 개화 초기 외국인들이 한국을 소개한 책들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찾아낸다. '한국인을 유태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조선과 열 번째 유태족」(1879년), '조선에 악어가 넘쳐난다'고 묘사한 「진기명기 조선」(1895년), ‘일본의 사주를 받아 쓴 여행기’인 「이토 히로부미 후작과의 조선 여행」(1908), ‘한국인은 원래 백인이었다’는 「한국인은 백인이다」(1956), 한국을 소재로 한 SF소설「앵그리 영 스페이스맨」(2000) 등이 그것이다.

이어서, 한국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을 인터뷰한 그는 "전국 방방곡곡에 외국인들의 군락이 형성된 한국은 이미 국제적인 국가이다. 이제 외국인을 이방인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거두어야 한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을 포용할 수 있을 때 한국은 진정으로 세계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의 아나키즘,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바라본 이상한 한국인 등의 소재를 에세이, 리뷰, 인터뷰, 온라인 대화 등 다채로운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잘 알지 못하는 북한에 대한 글과 사진은 낯설다 못해 당혹스럽다.

저자는 96년 한국에 도착한 이후 여러 테마로 한국을 다룬 1인 잡지 「Bug」를 만든 문화비평가로 여러 번 언론에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벌레, 도청, 컴퓨터바이러스, 마이크, 사로잡힘’ 등의 의미가 있는 ‘버그’는 한국문화의 구석구석을 파헤치는 ‘컬처 버그’로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까지 꼼꼼히 훑는다. 「Bug」5호를 기본 텍스트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이 책은 한국이란 나라를 들여다보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는 물론, 다양한 프리즘을 통한 방식으로 저자의 생각을 공감하게 한다. 솔직함, 특이함, 이질감, 신선함, 잡다함, 진지함 등 다양함을 통해서 말이다.

끝으로,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평생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어쩌면 끝내 알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살아 있다는 확인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모습이든 일그러진 모습이든 그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당당하고 싶은 것은 욕심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당한 발칙함’을 갖고 싶다는. 그렇게 ‘쿨함’을 갖고 싶다는.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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