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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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올림픽 경기에 매료된다.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싸우는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그들이 메달이라도 따게 되면 참았던 흥분과 짜릿함은 일상생활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한다.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전 국민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펜싱에서 여러 개의 메달이 쏟아졌으며, 사격, 유도, 레슬링 그리고 수영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런 여러 멋진 경기들 중에서 내가 꼽은 최고의 장면은,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 선수의 결승 경기이다.
장미란 선수는 그 이전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 아니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미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0 순위로 꼽혔던 선수였다. 장미란 선수는 여자 역도 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했다. 작년에 참가한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유력한 선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올림픽 역도 여자 75kg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의 기록으로 4위에 머물렀다.
결승전 무대. 그녀는 끝내 들어올리지 못한 바벨 앞에서 오른손에 입술을 대 바벨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모든 관중들이 보는 앞에 무릎을 꿇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살며시 미소를 남겼다. 그녀가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던 것이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 고생한 바벨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장미란 선수의 마음은, 영국 런던 엑셀 제3사우스 아레나에서 벌어진 역도 여자 경기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녀가 경기 출전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허리와 어깨 부상으로 재활을 하고 있었음이 후에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제가 부끄럽지 않은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덧붙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무엇을 하든지 우리 선수들에게 많은 사랑과 격려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녀의 경기를 보면서,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를 생각했다. 1953년에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안긴 이 작품의 주인공인,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작은 조각배 한 척으로 고개를 잡으며 혼자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이웃에 사는 소년 마놀린이다.
노인은 84일이나 고기를 못 잡다가 마침내 85일째 되는 날, 홀로 먼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다가 굉장히 큰 청새치 한 마리를 낚는다. 그는 이틀 낮 밤을 꼬박 바다와 싸운 끝에 드디어 길이가 5.5미터가 되고 700킬로그램 정도 되는 물고기를 낚는데 성공한다. 노인은 물고기 녀석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타고난 어부의 기질을 발휘하여 치열한 사투를 벌인 끝에 얻은 성공인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시련은 그가 물고기를 잡은 이후에 시작된다.
이 거대한 청새치를 배 옆에 매달고 돌아오는 길, 노인은 상어들의 연이은 공격을 받게 된다. 자신의 승리의 표시인 물고기를 지켜내려는 노인과, 그것을 노리는 상어의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결국 물고기는 싸움 도중 앙상한 뼈와 머리만 남고, 노인은 결국 또 다시 빈손으로 귀환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집에 도착한 노인은 정신 없이 잠에 빠져들고, 그의 유일한 친구인 마놀린은 상처투성이인 노인의 손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잠에서 깬 노인은 소년에게 다시 함께 고기를 잡으러 나갈 것을 약속한다.
<노인과 바다>는 ‘파괴 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철학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노인이 목숨을 건 상어 떼와의 사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어쩌면 우리를 배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뿐인 승리의 전리품이 앙상한 뼈와 머리만으로 남는다 해도, 끝까지 싸우며 자신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인이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싸워가야 하는 전쟁터가 아닐까. 싸워보지도 않고 우리는 커다란 청새치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반성해본다.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산티아고는 마놀린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는 곁에 있지 않았다. 철저히 혼자였고, 홀로 전쟁터에서 몸을 던져 싸웠다. 그는 홀로 외롭게 싸우면서도, 결국 청새치를 건져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의지' 만큼은 물고기에 빼앗기지 않았다. 자신이 거대한 고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자긍심과, 팔뚝의 핏줄이 터지고 마디마디가 저릴 정도로 꽉 움켜쥔 낚싯줄을 통해 그는 긍정적인 자존감, 그리고 ‘바다’라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장미란 선수의 금메달 2연패의 꿈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가 그녀의 꿈에 대해서 좌절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그녀가 금메달을 따지 않았다 해서 그녀의 꿈마저 좌절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바벨 앞에 키스를 하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면서, 역도를 통해 성장한 자기 자신에 대해 비로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금메달 획득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회한의 눈물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자기와 바벨에 대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미란 선수에게 바벨은 산티아고의 낚싯줄과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결국, 낚싯줄을 놓지 않고 삶의 의미를 지켜냈던 것처럼, 그녀는 바벨을 쓰다듬으며 또 다른 꿈을 꾸는 것이다. 나는, 마놀린과 다음날 또 낚시를 하러 갈 것을 약속한 산티아고처럼, 언젠가 장미란 선수가 다시 바벨을 잡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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