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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2일 06시 02분 등록

홈쇼핑 매혈기

 

-- 위화 <허삼관 매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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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야겠다.

지난주에 홈쇼핑 방송을 진행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얼마 전에 신규사업부서를 설립했는데, 그 부서에 배치된 인력은 고작 2. 그 부서가 맡게 된 제품군은 가정용 의료기기에서부터 식품까지 다양했다. 말이 좋아 다양한제품군이지, 한마디로 공통점 없이 제각각이다. 2명의 인원으로는 제품 발굴에서부터, 기획, 판매, 그리고 홍보까지 도저히 진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회사에 인원을 늘려달라고 건의했더니, 오히려 회사에서는 2년 동안 그 부서를 이끌어나가지 못할 시, 그 부서를 없애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회사에서는 이 신규사업부가 일종의 파일럿, 실험적인 부서였던 것이다. 최소한의 인원에, 남들이 팔기 어렵다는 제품을 던져주고, 이 부서원들이 이 제품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느냐를 모니터하기 위해 만든 일명, ‘마루타 부서였다.

 

정말 잘 하거나, 아니면, 없어지거나….. 나와 부서원은 머리를 굴려 제품들을 어떻게 판매해야 할 지 궁리했다. 그리하여 결론에 이른 것이 바로 홈쇼핑사업 진출이었다. 최소의 인원으로 단기간에 일정 이상의 매출을 이끌 수 있다는 매력에, 단위당 순이익은 당장에는 없더라도, 제품 홍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경험이 없던 우리는 그냥 깡으로 부딪히기로 마음먹었다. 제품 설명 자료를 각 홈쇼핑 사에 돌리고, 홈쇼핑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묻고 또 묻기를 몇 달….. 결국, 방송 런칭에 성공했다.  

 

2.

홈쇼핑을 진행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각각 다른 반응들이었다.

홈쇼핑이 끝난 지난 목요일, 오랜만에 나는 잠실의 한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방송이 어땠냐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곧 홈쇼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친구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홈쇼핑을 보면 말이야, 뜬금없는 상품이 나와도 쇼호스트가 입을 열면 꼭 필요한 물건 같아 보여.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건을 이제야 찾게 됐다는 반가움이 앞서더라구. 그리고 그럴 때마다 홈쇼핑은 감사하게도 부족한 나의 경제사정을 아는 것 마냥, 파격적인 가격 구성을 제시하더라구.”

 

친구는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하면서,

 

이 베이글도 우리 집 냉장고에 홈쇼핑에서 주문한 3종세트가 그냥 얼어계셔. “

 

라며,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웃긴 건 말이야. 금방 매진을 할 것 같다는 쇼 호스트의 경고에 어느새 친절한 상담원이랑 통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야. 매진을 하기 전에 조마조마하게 득템하는데 성공하고, ‘반품이 가능하다는 말에 어느새 마음이 놓이면서 말이야.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을 것 같아지지.”

 

친구는 커피를 한잔 마시며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말이야.”

 

친구는 힘을 주어 말했다.

 

결제를 마치고 택배를 받을 때만 되면 말이야, 쇼 호스트와 상담원의 친절한 최면은 확- 하고, 풀려버리더라구. 받은 제품을 한두 번 쓰다 쓰레기가 되어 나뒹구는 꼴을 보다 못해 갖다 버리게 될 때, 나는 바로 그 득템의 꿈에서 풀려나는 거야.”

 

그 친구는 새해 들어 결심상품으로 런닝머신을 파격적인 가격에, 그것도 10개월 무이자 조건으로 샀다고 했다. 택배가 오자마자, 놓을 장소가 부족해서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듣기 시작해서, 어느새 운동기구는 집안의 멋진 가구가 되어 있더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 친구의 대답에 고래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판매자 입장인 나는 홈쇼핑만큼 피를 말리는 판매수단도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했다. 방송하기 3-4주 전에 방송 일정이 확정이 되면, 그때부터 완전히 전투태세 돌입이다. 이 제품을 구매할 주요 구매자를 타겟으로 삼아,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하여 방송 소구점을 찾아내고, 방송 심의에 해당하는 용어 선별하고, 제품의 할부조건과 추가구성을 확정하고, 필요한 게스트 섭외에서부터, 사전 영상물 제작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발로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생방송으로 시작되는 그 순간은 정말 피가 마르고, 숨을 쉴 수조차 없다. 방송 중에 1분 간격으로 확인되는 주문수량을 보면, 희비가 엇갈린다. 게다가 방송사고라도 나거나, 같은 시간에 다른 방송사에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 매출은 바닥이 된다. 1초마다, 쇼 호스트의 말 한마디에 따라 매출실적이 왔다갔다하는 이 순간의 판매. 이때는 정말 나의 피를 팔아서라도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3.

칼럼을 위해 모니터 앞에서 홈쇼핑 경험담을 이야기 하니, 문득 피를 팔던 인물이 나오던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생각이 난다. 장예모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의 원작자로 알려지게 된 소설가 위화는, 피와 폭력의 문제를 적절한 유머로 버무리는 특이한 재주를 지닌 작가이다.

 

주인공인 허삼관이란 인물은 제목 그대로, ‘를 팔아 삶을 꾸려가는 남자이다. 허씨 집안의 셋째 아들이라 해서 이름도 삼관이다. 그는 생사 공장에 누에고치를 대는 일을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모두 자신의 를 팔아서 해결한다. ‘를 팔아 가정을 이루고, ‘를 팔아 을 갚고, ‘를 팔아 바람을 피우고, ‘를 팔아 기근을 해결하고, ‘를 팔아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한번에 파는 피의 양은 두 사발. 두 사발의 피를 빼고 나면, 그는 농부가 반년간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버는 돈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오랜 가난과 기근, 그리고 문화 혁명을 겪으면서 환경이 바뀌고,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그는 피를 판다. 한번 피를 팔고 나면, 다시 뽑을 때까지, 삼 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데, 그는 서로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며, 무리하게 피를 팔아 생명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에도 봉착하지만, 세월이 흘러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을 만큼 자식들이 성장하여 자리를 잡게 된다.

 

허삼관은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며, 가정을 파괴할 위기에 놓이기도 하지만, 정작 아내와 부정으로 인해 태어난 첫째 아들에게 위기가 닥치자, 가족들을 위해 로서 목숨을 건다. 그리고, 그 피를 통해 피보다 더 진한 가족간의 사랑을 이루어낸다. 소설가 위화는 핏줄을 따지는 동양의 문화권에서 를 매개로 한 남자의 고분분투 매혈기를 유머와 감동으로 그려낸다.

 

내가 이번 주에, <허삼관 매혈기>를 떠올린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홈쇼핑이 진행되는 60분의 생방송 시간 동안, 방송 초반에 판매 숫자가 올라가 않아 걱정하고 있을 무렵, 가장 먼저 들었던 영상이 비로 우리 가정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뭄이 들어 모두가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허삼관은 피를 팔아 죽을 만들었고, 아들이 간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자신의 피를 팔아 병원비를 마련했다. 나는, 이 방송이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무엇으로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했다.  

 

피를 팔 때마다 몸을 보양하기 위해 돼지 간 볶음과 데운 황주를 먹던 그가, 후에는 그 음식을 먹기 위해 피를 팔아야겠다는 농담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피를 파는 희생을 감수했던 그의 삶은, 이제 그 자신을 위해 피를 하는 모습으로 변주되고, 희생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 하는 허삼관…… 그의 인생을 떠올리며, 홈쇼핑 판매 모니터 앞에서 입술이 바싹 마르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경험을 하는 나 자신도 깊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도 내 가족을 위해,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팔 수 있는 는 무엇일까, 하고.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의 붉은 핏방울.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 

-      위화 <허삼관 매혈기>

 

 

 * 이미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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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09:16:15 *.37.122.77

아~ 잘읽었습니다.

'허삼관매혈기'를 재미있게 읽었었드랬죠.

그래서 더욱 이 글이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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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16:05:40 *.216.38.13

너~ 무 재미있는 소설이죠?

시종일관 웃다가 마지막에 느껴지는 페이소스..

정말 위화는 재치있는 이야기꾼인것 같아요!

 

사실, 이 책을 한 10년 전에 읽었다가 어디론가 없어져서 한참을 찾다가 포기,

이번에 칼럼때문에 새로 다시 구매한 에피소드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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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09:48:47 *.252.144.139

저도 이 책 읽어봤어요.

유머와 위트가 있는 책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한동안 홈쇼핑 엄청 했는데 집에 tv를 없애면서 그만뒀어요.

그날 판매한 상품은 매진되었나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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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16:07:29 *.216.38.13

푸하하하^^.

얼마나 팔렸는지를 칼럼에 쓸까하다가 안썼는데...

많은 분들께서 걱정해주셔서 다행히 완판(!) 했답니다. 감솨감솨^^

 

너무 재미있는 소설이죠? 이 소설, 정말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언젠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던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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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21:12:00 *.33.12.78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가벼우면서도 위트가 있는 글이 매력있게 느껴집니다.

재엽선배 웃음 소리가 같이 들리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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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21:32:18 *.196.214.182

하악하악^^ 제 글에서 제 웃음소리가 들리다니 정말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연구원수업들을때 이런 얘기 들었거든요..지금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지만..."글은 배용준인데 얼굴은 정재엽이다..." 후다다다다닥!!! 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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