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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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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1일 10시 28분 등록

만약에 페인트에 화약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몇 년 전 큰 화학 기업의 기술자가 회의 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사람들은 다소 놀라고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기술자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자네들, 페인트를 칠하고 5년이나 6년쯤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페인트가 부스러지고 갈라지는데 그걸 없애기는 참 어렵다네. 낡은 페인트를 제거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어야 해. 만약 화약을 페인트에 섞는다면.. 제거할 때 거기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되잖나.”

 

몇몇 사람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기술자의 생각은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한가지 결점이 있었다.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화재의 위험이 현격히 높아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 생각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실용성을 기준으로 그의 생각을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 아이디어를,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해결책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았다. 한 사람이 그 기술자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물었다.

 

화학 반응을 이용하여 오래된 페인트를 쉽게 제거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이 생각은 훌륭한 촉매제가 되었다. 정체되어 있던 회의 분위기는 이 질문 하나에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사람이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페인트에 어떤 용액에 쉽게 녹는 한 물질을 첨가하자는 것이었다. 이 물질은 그 용액을 칠하기 전에는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불활성물질이다. 그러나 이 용액을 칠하면 두 첨가물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페인트가 즉시 벗겨지게 되었다. 그 회사는 결국 이 제품을 생산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게 되었다. 화약을 넣자는 의견을 디딤돌로 삼아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화약을 넣은 페인트에서 한번 더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았다면, ‘페인트를 넣은 화약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불꽃놀이'는 깜깜한 밤에 열린다. 그런데 화약에 페인트 가루를 넣는다면 환한 대낮에도 불꽃놀이를 열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 '대낮 불꽃놀이 쇼'는 중국 출신의 예술가 차이 구어 치앙의 예술 작품으로, 카타르 도하에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물감 대신 화약과 페인트를 이용해 푸른 하늘에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엉뚱한 생각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디딤돌은 단순히 자극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또 다른 생각을 유도한다. 디딤돌은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그것이 얼마나 실용적인 것인가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생각을 어디로 이끌어 들어가는가에 그 가치가 있다. 상상적 단계에서는 실제 세계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때로는 비실용적인 발상이나 결과가 문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한다.

 

잘 알려진 것 처럼 포스트 잇은 실패한 접착제를 디딤돌 삼아 탈바꿈한 것이다.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큘레(August Kekule)는 꿈에 원을 그리는 여섯 마리의 뱀을 보고 영감을 얻어 여섯 개의 탄소로 이루어진 벤젤링 구조를 생각해 냈다.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은 동방의 신비한 향신료인 후추를 찾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인도로 가는 더 가까운 항로를 발견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잘못된 전제 때문에 가정이 옳아, 행성간의 중력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라듐은 퀴리부인의 실수로 인해 발견되었다

 

페인트에 화약을 넣자는 식의 하나의 엉뚱발랄한 생각, 때로는 이런 생각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처음의 이야기에서 눈 여겨 볼 것은, 그 의견을 낸 기술자를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속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화약을 넣자고? 미친 거 아니야?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즉각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그 생각을 발판으로 삼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 말로 집단 창의성의 중요한 전제다. 비판 대신 그 의견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약하는 것이다.

 

보통의 회의였으면 어땠을까? 그대가 참석하는 회의나 토론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제안과 비판 중에 어디에 더 익숙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가? 엉뚱한 제안을 창의적 시각으로 바꾸어 생각한 적이 얼마나 되던가? ‘현실적이지 않다혹은 그건 우리 권한 밖이다’, ‘예전에도 해 봤는데 안된다는 식의 대안 없는 비판은 얼마나 많이 받는 편인가? 제안과 비판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그대는 어디쯤 서 있는가?

 

많은 직장인들은 제안보다는 비판에 익숙하다. 비판이 더 쉽고, 리스크가 적고, ‘똑똑해 보이기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비판이 곧 자신의 지적 수준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비판을 잘할수록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사지선다형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의 문제다. 사지선다형 문제에서는 정답을 먼저 찾기보다 오답, 즉 답이 아닌 것을 먼저 찾아 지워가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이공계에서 두드러진다.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고, 작은 오차를 강조하다 보니 왜 정답이 아닌지를 말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 것이다. 이런 공돌이들의 특징은 어떤 제안이 주어지면 안 된다는 말을 먼저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것일수록 더 자신있게 비판한다. 자신의 똑똑함을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반대해서 그 일이 추진되지 않으면 나중에 책임질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런 표현을 많이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비판도 일종의 제안이라고 주장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과 제안은 엄밀히 다르다. 비판이란 상대의 제안이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은 종속적이며 수동적이다. 상대의 제안이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안을 내어놓는 것(提案)’과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비판적인 사고는 지성인으로서 꼭 필요한 태도다. 마크 트웨인도 우리는 무지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확신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제는 대안 없는 비판을 너무 자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대안은 모르지만 어쨌든 당신이 틀렸다는 건 알아!’라는 태도로 토론에 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들은 조목조목 따져가며 제안이 왜 틀렸는지 반박하지만, 막상 대안을 말해보라면 상대방의 제안대로 하지 않는 것이 대안이라고 발뺌할 뿐이다.

 

한 사람이 상상력을 활용하는 양은 상상력을 이용했을 때 받게 되는 비판의 양에 반비례한다. 한 사회가 비판보다는 제안이 더 많을 때 그 사회가 갖게 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양은 그 비판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침묵하는 까닭은 비판 받기 싫어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침묵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한 사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개들은 모르는 것을 보면 짖는다며 비판자들을 비웃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면 우선 짖어대는경향이 있다. 아이디어가 익숙하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는 혁신적이었음을 기억하라. 여기서 혁신적이라 함은, 기존 상식의 틀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생각들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들, 그 곳에서부터 징검다리가 출발한다. 그러므로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할 생각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짖는 개에게 재갈을 물려야 한다.

 

이렇게 해 보라. 독특하고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를 만나면 5분간 아무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잠시만 혀를 꽉 깨물어라. 그렇게 하면 그 아이디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갖추어진다. 5분 동안 그 아이디어가 어떤 흥미로운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내가 놓치고 있는 새로운 관점은 없는지, 이 생각을 디딤돌로 삼아 옮겨갈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5분이 지난 다음에도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때부터 짖기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이상은 현실의 거울이다. 이상과 실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상이 없이는 실재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고, 현실을 개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생각,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엉뚱한 생각을 비판하기 보다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관점을 얻어야 한다. '왜 안 되는지' 하는 생각은 개나 줘 버려라. 어떻게 되게 할 것인지 상상의 나래를 펴라. 상상이 하늘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현실이라는 땅에 부드럽게 안착할 때까지 질문하라. 창의력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하늘 높이 올라야 많이 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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