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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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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01시 55분 등록

 

카페에 나갔더니 션한 책이 떡하니 눈에 들어왔다. 신간이다. 멋졌다.

 

남자마흔분투기.jpg

 

 

 

꿈을 꾸지는 않지만 절망하지도 않아

첫 책인 「마흔 살의 책읽기」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유인창 연구원.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음, 그러니까, 뭐랄까, 시니컬? 삐딱이? 염세주의자? 아웃사이더? 스크류바? 꽈배기? 에잇, 모르겠다. 그냥, 투덜이 스머프다. 뭔 재미로 살까 싶었는데 뚝딱뚝딱 책을 두 권이나 썼다. 완전 신기하다. 책장을 넘기는데 이거이거 장난 아니다. 막 읽혔다. 바로 문자 날렸다. 사인 본 선물 받고 싶다고. 그랬더니 그가, 진짜 왔다. 사인 본 받고 싶단 문자에 카페로 달려온 고마움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이럴 때 글은, 참 하찮다.

 

부제가 ‘남자 마흔 분투기’다.

책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나는 짜릿하지도 못하다. 보여줄 섹시함이 없다. 키는 작고 근육질의 식스팩도 없다. 생긴 것마저 그리 눈에 뜨이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나는 절대 빠르지 않다. 느릿하게 걸으려 한다. 영악하지 못하고 영악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상 소식에도 둔하다. 둔하기도 하지만 크게 관심도 없다. 소식에 둔하니 정보를 얻는 데 뒤처지기 일쑤다. 그런 마당에 재미까지 없다. 유머를 타고나지 못했다. 말도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사람을 만날 때는 할 말을 찾는 데 서툴러 어색해지거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사람과 착착 붙는 맛이 없다. 상대방에게 죄짓는 기분까지 든다. 이거야말로 어디를 봐도 스마트하지 못하다. 스마트한 시대의 낙오자에 가깝다. (p.190)

 

그리고 덧붙인다. 불편하지만, 짜릿하지 않지만, 둔하지만, 재미없지만, 그런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고 마음에 들고 편하단다. 진짜다. 참 자기를 잘도 안다. 그러니 책이 막 읽히지. 그래서 그냥 읽어버렸다. 그날은 그러니까 내 생일이었다. 내 생일에 이 책을 읽느라 밤을 새웠다. 이런 글 수다 선물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이럴 땐 말도, 차암 하찮다.

 

인생 역전, 꿈꾸지 않는단다. 모두가 대단한 삶을 살 수는 없고, 주어진 것이 대단한 삶이 아니라면 그래서 또 뭐가 문제냐고. 오케이, 콜. 이외에도 곳곳에 인용된 좋은 글이 반갑고 새삼스럽다. 다시 찾아 읽고 싶은 책도 있었다. 밑줄 쫘악 그은 곳 중에서 두 개만 뽀너스.

 

패배가 주어진들 어떠랴

나는 또 패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사람들은 자신이 패배하는 자리에만 서 있다며 불안해한다. 그렇지 않다. 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부끄러운 승리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때는 패배라고 쓰고 조용히 용기라고 읽으면 된다. 누가 비웃든 말든 인정하든 말든. (p.37)

 

송곳처럼 찌르는 분노의 목소리들

나는, 강하지도 못하고 뜨겁지도 않다. 내 안에 충분할 만큼 가득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비겁이다. 그 비겁을 끌어안고 때늦게 작은 저항을 꿈꾼다. 저항하고 싶다. 나에게 저항하고 삶에게 저항하고 싶다. 분노여도 좋고 저항이어도 좋다. 내 작은 역사에 힘 있는 투사가 되고 싶다. 이렇게 시들하게 끝도 없이 흘러가는 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p.80)

 

잠깐 만나 책을 건네준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말을 했다. 책을 왜 썼는지, 왜 쓰는지 자신에게 묻게 되는데 잘 모르겠다고. 왜 모를까. 이렇게 나처럼 홀딱 반해서 글이 넘넘 좋다고 오두방정을 떠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는 아닐까.

 

1년 동안 고전 읽기 좀 같이 하자고 졸랐다. 책 읽기 모임 하나 만들자고. 그렇게 한 달에 한두 번쯤 만나서 얼굴 보며 책 핑계 대고 사는 얘기 나누며 살아보자고. 난 정말 그렇게도 살아보고 싶다고. 투덜이 스머프는 고개만 끄덕이곤 말을 아꼈다.

 

세상에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피곤한 요즈음, 글 잘 쓴다는 글쟁이들의 삶이 글과 닮지 않은 모습을 보는 일에도 지친다. 책 읽을 시간도 시간이지만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도 일인 요즈음, 이런 솔직한 글을 만나면 그저 반갑고 좋다.

 

고마워요, 유인창 작가님!

 

***

 

그건 그렇고

글씨 한번 끝내주게 못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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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3 10:10:16 *.209.90.235

ㅎㅎ 옆에서 보기에도 이렇게 흐뭇한데 당사자인 인창씨가 보면, 연애편지 못지않게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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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01:26:14 *.114.233.30

한 선생님!

늘 감사해요.

 

글 잘 쓴 거에 대한 속 좁은 질투랄까, 글씨 못쓴다고 흉봤다니까..

신경 안 쓰고 산다고. ㅎ,ㅎ

이 글을 읽긴 읽었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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