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진철
  • 조회 수 2896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3년 3월 8일 23시 27분 등록

기원전 49년 1월, 로마의 아들이 강을 건넜다. 루비콘 강Rubicon R.이었다. 때는 로마 공화정 말기였고, 케사르Gaius Julius Caesar는 지금의 프랑스 지방인 갈리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원정 중이었다. 원로원은 케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즉각 로마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원로원의 말대로 순순히 무장을 해제한 채 로마로 돌아갈 것인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원로원도 케사르도 아니었다. 케사르에게 남겨진 여지는 많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해산하라던 군대를 이끌고, 로마의 경계인 루비콘 강을 건넜다. 스스로 국법을 어긴 것이다. 당시 로마법에는 원정을 나갔던 모든 장군들은 루비콘 강을 건너 돌아오며 반드시 무장을 해제해야만 했다. 이번에도 운명의 여신이 무력한 원로원에 맞서 ‘주사위를 던진’ 그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 원정을 위해 건넜던 강을 다시 건넜지만, 로마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이었다. 쿠테타였다.

 

로마는 피와 전쟁의 역사를 통해 성장하였다. 먼 옛날 로마의 테베레 강가에 버려졌던 아이들이 있었다. 버림받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사람이 아닌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들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씨앗들이었고 알바롱가의 왕 누미토르의 딸 실비아가 낳은 쌍둥이들이었다. 누미토르의 동생 아물리우스는 형에게서 억지로 왕위를 빼앗았다. 후한이 두려웠던 아물리우스는 실비아가 자식을 가지지 못하도록 베누스 여신의 사제로 만들었지만, 실비아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관계를 가져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게 되었다. 아물리우스는 잔인했다. 아이들은 테베레 강가에 버려졌다. 그러나 신의 핏줄들이었던 탓일까. 버려진 아이들은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늑대가 거두어 젖을 먹여 키웠고, 어느 양치기의 손에 이끌려 사람들 세상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출생의 비밀이 궁금해질 만큼 성장한 쌍둥이들은 세상에 복수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결국 아물리우스는 그들의 손에 죽었고,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버려졌던 테베레 강가에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다. 도시의 경계와 왕위를 둘러싸고 피를 나눈 형제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간에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졌다. 둘은 공생할 수 없었다. 하나가 죽고 하나를 죽인 나머지 하나가 왕이 되었다. 레무스가 죽고 로물루스가 살아남았다. 로물루스는 레무스의 희생으로 세운 나라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불렀다. 형제의 죽음 위에서 시작한 로마였다.

  

전쟁의 신 마르스의 핏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전쟁은 로마의 일상이었고, 전쟁을 통해 알프스 산맥 아래로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되었다. 침략으로 얻어진 땅이 로마를 키웠고, 식민지의 노예들이 제국을 먹여 살렸다. 지중해로 눈을 돌린 로마인들은 한발 앞서 지중해의 패권을 쥐고 있던 카르타고와 숙명의 결전을 벌였다. 백여 년에 걸친 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이 그것이었다. 결국 알프스를 넘어 한때 로마의 본토를 위협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무릎을 꿇었다. 에스파냐와 북아프리카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차례로 무너졌고, 그리스가 속주가 되었다. 그리스의 신들은 이제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로마의 장군들은 바삐 루비콘 강을 건넜으며, 멀리 라인 강을 넘어 갈리아 땅까지 뻗어갔다. 라인 강 서쪽과 도나우 강 남쪽의 유럽 대륙이 통째로 로마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까지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수 백 년 전 테베레 강가에 이름도 없이 세워졌던 작은 도시는 이제 제국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로마는 젊었다. 젊고 게걸스러웠다. 굶주린 듯 땅을 집어삼켰고, 바다건너 지중해의 여러 문명들이 로마에 흘러들어 뒤섞였다. 내란과 식민지들의 반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주로 평민들로 구성된 로마의 중장보병은 충분히 강했다. 로마의 장군들은 전술에 능했고, 전쟁터에서 단련된 병사들은 싸움에 노련했다. 그러나 오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이제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식민지에서 로마로 돌아온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속주의 곡물과 노예들이 함께 들어왔다. 노예들이 노동을 대신했지만, 그들은 노예를 부릴 만큼 부유하지 못했다. 노예는 귀족들과 대농장주의 소유였다. 더구나 로마에 남아있던 귀족들은 그들에게 돌아갈 땅을 남겨두지 않았다. 농장에서 나오는 식량도 그들이 차지할 몫은 없었다. 결국 소농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몰락한 소농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매번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비록 젊은 시절 식민지 도시들을 무너뜨렸던 그들이었지만 이미 칼을 놓은 지 오래였다. 검투사 출신의 노예들도 들고 일어섰지만 그들 또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노예들의 죽음은 가벼웠고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한때 로마의 땅에는 6천개의 십자가가 한꺼번에 세워지기도 했다. 로마의 땅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었지만, 귀족과 원로원의 욕심을 따라잡지 못했다.

  

원로원은 귀족들의 회의기구였고, 임기는 종신이었다. 법률적으로는 자문기관에 그쳤지만 실권을 틀어쥐고 있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원로원의 권한도 커졌다. 귀족들은 국고를 통제하려 했고, 지방 속주들을 손에 쥐려했다. 로마의 공화정은 아직 전통적인 혈통 귀족의 특권을 보호하는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끔씩 자객을 사기도 했다. 로마에는 칼을 부릴 줄 아는 자들이 많았고, 원로원의 귀족들은 충분한 돈을 가졌다. 그것은 성문화 되지 않았지만 로마의 전통이었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로마정치의 규칙이었다. 원로원에 반대하는 자들은 언제든지 자객의 방문을 받을 수 있었다. 평민들을 대표하여 호민관이 된 그라쿠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라쿠스 형제들은 땅을 다시 나누려고 했지만 결코 만만한 원로원이 아니었다. 원로원은 그라쿠스가 못마땅했고, 그의 제안 때문에 불편했다. 개혁은 실패했다. 그라쿠스 형제들의 시체는 테베레 강에 버려졌다.

 

 루비콘 강을 건너며 케사르는 그라쿠스 형제들의 죽음을 떠올렸다.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의 운명은 언제나 위험했다. 기득권을 쥔 원로원의 눈에 개혁은 도전으로 비쳐지고, 토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위태롭게 들렸을지 모른다. 원로원은 낮과 밤이 달랐고, 야누스처럼 앞과 뒤가 같지 않았다. 마주 대하는 웃음 속에 칼을 숨겼고, 심장을 찔렀던 칼 뒤에 웃음이 베어져 흘렀다. 케사르는 언젠가 자신도 그라쿠스 형제들처럼 죽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로마의 현실에서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역사 속에 기억되는 죽음들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간사한 그들이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폼페이우스는 또 어떤 계산을 하고 있는지 케사르는 모르지 않았다. 비록 몸은 멀리 갈리아 땅에 두고 있었지만, 그의 눈과 귀는 늘 로마의 정가에 머물러 있었다. 강을 건너는 일이 잘한 선택인지, 돌이켜 후회하게 될지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승산은 있었다. 이제 남겨진 것은 운명의 여신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케사르는 내내 자신의 손에서 만지작거리던 주사위를 던졌다.

  

케사르가 사랑하는 로마는 아직 젊었고 원로원은 늙고 무력했다. 로마의 귀족들은 이미 충분히 탐욕스러워져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잔에 넘치도록 포도주를 부었다. 로마의 군대가 새로운 도시들을 정복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농장을 넓혀갔다. 장교들이 작전을 짜고 있을 때 그들은 음모를 꾸몄다. 싸움은 평민들이 했고, 그들은 뒷전에서 정치를 했다. 승리의 기쁨만이 병사들의 몫이었고, 모든 부는 로마로 향하는 길을 따라 원로원으로 그리고 귀족들의 창고에 쌓였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제국으로 성장해가는 로마의 번영은 피의 대가였다. 로마는 이제 새로워져야 했다. 더 이상 테베레 강가의 조그만 도시국가가 아니었다. 제국의 시대에는 제국의 정치가 필요했다. 마침내 그는 강을 건넜다. 루비콘 강은 두려움이었고, 또한 경계였다. 그는 운명은 늘 두려움을 넘어선 자의 편에 서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도전한 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루비콘 강이 그날을 기억해줄 것이다.

IP *.33.12.111

프로필 이미지
2013.03.09 20:22:51 *.42.252.67

읽으면 신화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

책을 내고 싶은 강의 이야기가  바뀐거야?

읽으면서 너가 전해주려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생각이 들어.

무얼까? 무얼까?

우리나라 강이 아니여선지  공감은 떨어지네....

프로필 이미지
2013.03.11 16:16:15 *.47.39.151

네, 아마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재작년에 썼던 강따라 걸으면서 썼던 글들이 아니고...

강이 가진 키워드... 경계, 풍요, 치유, 분노, 흐름, 포용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서 신화, 역사, 문학작품들을 뒤져서...

꼭지글로 써보고 있습니다. 다소 개인적인 감성이 배제된 글이고

시간이나 공간적으로도 많이 동떨어져서... 공감이 약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딜레마처럼 여겨지는데... 나중에 초고 탈고하기 전에 다시 손을 보더라도..

일단 각 재재가 되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써보고 있습니다.

참고(인내하다라는 뜻).. 읽어주셈.. ㅋ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