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진철
  • 조회 수 328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3년 3월 16일 11시 28분 등록

 

신들은 어디에도 있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바람과 강, 이집트의 신들은 모든 것이었다. 만물은 이집트의 대기를 마시며 숨을 쉬었고 대지 위에서 풍요로웠다. 신과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분명치 않았다. 신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깃들어 있었다. 소와 양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가져다주었고, 자칼은 죽은 자의 부활을 도왔다. 사자와 매는 용맹을 불어넣었고, 개코 원숭이와 따오기는 지혜를 주었다. 이집트 땅에서 신들은 사람의 몸에 동물들의 머리를 했다. ‘아몬’은 거위와 양, ‘라’는 메뚜기나 황소, ‘오시리스’는 황소나 양의 모습을 했고, ‘호루스’는 매를, ‘세크메트’는 사자를, ‘하토르’는 암소를 그리고 지혜의 신 ‘토트’는 개코 원숭이의 머리를 가졌다. 선하고 이로운 신들만 존재하지 않았다. 사악한 신도 있었다. 그는 이집트 최고의 신중 하나였던 ‘오시리스’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동생 ‘세트’다. 세트는 어둠과 사악함의 상징이고 불모의 사막이나 미천한 자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그는 돼지나 하마, 악어 때로는 독사의 모습을 하기도 했고, 흔히 긴 주둥이에 괴물의 머리를 가진 남자의 모습으로 신전의 벽화에 새겨졌다.

 

나일 강 신들의 이야기는 눈(Nun)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은 태초에 존재했던 혼돈이었다. 그것은 모양도 색채도 가지지 않았고, 마치 바다처럼 흐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과 땅이 갈라졌다. 갈라진 하늘과 땅 사이로 태양이 떠올랐고, 빛이 어둠을 몰아냈다. 그러나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지평선너머로 사라지고 나면, 어둠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빛과 어둠은 낮과 밤이 되어 서로 하루의 절반씩을 차지했다. 낮과 밤이 밀고 당기는 사이, 대지의 갈라진 틈으로 강이 흘렀고, 바람이 불었다. 신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기 시작했고,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조화를 부리기도 했다. 신들의 조화로 인해 죽음의 땅, 사막의 한가운데서 조차도 사람의 삶이 가능했다.

 

사람들은 경계에 살았다. 강은 사막의 한가운데로 흘렀고, 강과 사막이 맞닿은 자리는 좁았다. 그 좁은 틈을 사이에 두고 나일 강은 넘쳤다가 줄어들기를 매년 반복했다. 우기는 7월부터 10월까지 계속되었다. 나일 강의 물줄기가 시작하는 에티오피아의 고원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지중해로 이어지는 델타지역은 내내 침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계절이 지나고 나면 강물은 다시 줄었고, 물이 빠진 자리에는 기름진 흙들이 남겨졌다. 검붉은 흙은 보리와 옥수수, 포도, 수박 그리고 대추야자와 같은 농작물들을 길러냈고, 사람들은 때를 맞춰 수확하였다. 그것은 태고부터 신이 인간들과 맺어온 약속이었고, 이집트 땅과 나일 강이 지켜온 믿음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홍수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신들이 주는 풍요를 기다릴 줄 알았다. 홍수가 지나면 땅은 어김없이 초록의 생기를 띠었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강물이 넘쳐 오르면 사람들의 배가 불렀고, 파라오의 창고가 넉넉해졌으며, 온갖 신들의 제사가 풍요로웠다. 그중에서도 오시리스와 이시스 여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가 있었다. 특히 나일 강의 범람처럼 죽었다 부활하여 사후세계를 관장하게 된 오시리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고대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와 왕비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글자를 알지 못했고, 배우고 쓰는 일도 할 줄 몰랐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그들에게 문명의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농사를 짓고, 집을 지으며, 셈을 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들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게 되었으며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시리스와 이시스 여신을 사랑하였으며, 그들 또한 자신들의 백성들을 소중하게 아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오시리스는 멀리 다른 땅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동생인 세트가 형 오시리스를 위한 환영연회를 마련했다. 그런데 하나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연회에는 오시리스가 모르는 무서운 음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세트는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공개했다. 선물은 나무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나무 관은 레바논에서 구한 삼나무와 에티오피아에서 들여온 흑단으로 만들어졌는데, 겉에는 금과 은, 상아와 청금석 같은 보석들로 꾸며져 있었다. 손님들의 경탄을 자아낸 관의 주인은 따로 없었다. 이 귀한 선물의 주인은 그저 ‘관에 잘 맞는 사람의 것’이라고 세트는 말했다. 모든 손님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관에 자신의 몸을 맞추어 보았지만, 딱 맞는 이가 없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세트의 음모는 오시리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몸에 맞을 리가 없었다. 마침내 오시리스의 차례가 되었다. 그가 관에 들어가 눕자마자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세트는 냅다 관 뚜껑을 닫아버렸다.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기겁을 하며 말리려 했지만 세트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순식간에 관에 못이 박혔고, 납을 녹인 물로 틈이 봉합되어 버렸다. 갇힌 오시리스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고, 결국 관속에서 죽고 말았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관을 어둠이 짙게 깔린 나일 강에 내다 버렸다. 때마침 범람했던 나일 강이 오시리스의 관을 집어 삼켰다.

 

이시스 여신은 지혜로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는 슬픔에 잠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잔인한 세트의 손아귀를 벗어나 나일 강 하류 델타의 어디쯤에 숨었다. 우선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남편 오시리스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내는 일이었다. 장례를 치루지 못한 영혼은 죽은 자들의 세계인 ‘두아트’에도 들어갈 수 없고 또한 다시 부활하여 신들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헌신적이었던 이시스는 남편의 시신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가 마침내 비블로스의 해안에 닿았다. 거기서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얼마 전 비블로스 왕의 궁전에 대들보로 쓰려고 구해 온 나무가 있었는데, 신비로운 향내를 풍긴다는 것이었다. 나무는 베어지기 전부터 한 겨울에도 꽃을 피웠고, 향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고 했다. 이시스는 어찌어찌하여 궁궐에 왕자의 유모로 들어가게 되었고, 바로 그 나무기둥이 남편의 주검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시스는 또 어찌어찌하여 가까스로 오시리스의 주검을 찾아내었지만 당장 장례를 치룰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별 도리가 없었다. 장례 준비를 하는 동안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주검을 잠시 나일 강 하류 어느 섬의 갈대숲에 숨겨두었다. 그런데 잔인한 세트의 손길이 그곳까지 뻗쳐왔다. 때마침 델타의 늪지로 사냥을 나왔던 세트의 부하들에 의해 숨겨둔 시신이 발각되었고, 오시리스는 다시 한 번 세트의 손에서 유린당했다. 그의 시신은 열네 조각으로 찢어 발겨졌고, 나일 강을 따라 이집트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오시리스의 주검을 삼켰던 나일 강은 이제 이시스의 슬픔과 통곡으로 가득 넘쳐흘렀다. 그녀는 또 다시 남편의 시신 조각들을 찾아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타고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다. 시신의 조각이 발견되는 곳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가짜 무덤을 만들고 신전을 세웠다. 세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시스가 남편의 시신 조각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고 있을 때, 세트의 아내 네프티스와 그녀의 아들 아누비스(Anubis)가 그녀를 도왔다. 네프티스는 이시스의 자매이기도 하고, 또한 오시리스의 남매가 되기도 했다. 네프티스는 세트와 결혼한 사이였지만 둘의 사이는 몹시 좋지 않았다. 사악한 세트의 품성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지만 혹자들은 세트가 아예 자식을 가질 능력이 없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여하튼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세트와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식을 갖지 못한 네프티스가 이시스처럼 변장을 했다고도 하고, 오시리스에게 술을 먹여 유혹했다고도 한다. 전후사정이야 어찌됐든 아누비스는 오시리스의 자식이 분명했다. 오시리스와 세트 그리고 이시스와 네프티스 각자가 얼마만큼 그리고 또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네프티스는 언니 이시스에게 이런 모든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이시스 여신이 사랑의 여신으로 널리 추앙받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동생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편 아누비스는 조각난 오시리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의 미이라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자칼의 머리를 가진 그는 훗날 죽은 자들을 지하세계인 두아트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으며, 죽은 파라오들의 미이라를 만드는 이들의 수호신으로 섬겨졌다.

 

조각난 시신들을 다시 하나로 수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헌신적인 이시스는 네프티스와 아누비스의 도움으로 시신조각들을 간신히 한데 모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장례를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여진 오시리스의 시신은 한 조각이 부족한 열 세 조각뿐이었다. 나머지 한 조각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조각은 오시리스의 남근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이미 나일 강의 물고기들이 먹어치웠던 모양이었다. 시신은 나일 강의 상류 엘레판티네 섬 북쪽에 있는 필레 섬으로 은밀히 옮겨졌다. 남성의 성기를 갖지 못한 채 오시리스의 영혼이 두아트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난감한 일이었다. 이시스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한편 이집트 신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호루스(Horus)다. 수많은 신전들의 벽화에 매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이다. 용맹을 상징하는 매의 모습처럼 그는 세트와의 대결을 통해 마침내 사악한 세트를 물리치고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방심한 사이 멧돼지로 변신해서 덤벼든 세트에게 한 쪽 눈을 잃기도 했고, 지혜의 신 토트의 도움으로 다시 앞을 보게 되기도 했다. 세트는 하마로 변신해서 호루스를 위협하기도 했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악어가 되어 덤벼들기도 했다. 태양의 신 하르마키스가 호루스를 도왔고, 위기의 순간에 어머니 이시스의 지혜가 그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세트의 공격은 집요했지만 젊은 호루스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세트는 호루스의 포로가 되어 신들의 회의에 끌려 나왔고, 위대한 신 ‘라’는 호루스에게 모든 처분을 맡겼다. 세트의 몸은 그가 죽였던 오시리스처럼 열 네 조각으로 잘려졌다. 하지만 세트의 목숨은 질겼다. 몸은 잘려졌지만, 죽기 직전 그의 영혼은 검은 독사의 몸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호루스가 함대를 이끌고 나일 강 상류의 엘레판티네 섬을 지날 때 사나운 비바람을 몰고 와 앞길을 가로막았다. 함대가 잠시 주춤거리며 밀렸으나 세트의 사악한 영혼이 깃든 검은 독사는 호루스의 작살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호루스는 이집트 최고신들의 인정을 받아 파라오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호루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이다. 비록 호루스가 세트와의 대결을 통해 스스로 오시리스의 핏줄이며, 파라오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출생 시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비록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세트 또한 신들의 회의 자리에서 그가 오시리스의 자식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신들과 세간의 이런 의혹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해 죽음을 당하기 전에 이미 호루스가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누가 진실을 알겠는가. 설마하니 정숙한 이시스 여신이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사실을 증명해 줄 남편 오시리스도 이미 죽어 저승세계에 있고, 신화 속에는 이시스의 적극적인 소명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혹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평소 마법에 능하고, 지혜로웠던 이시스가 성기를 잃어버린 오시리스의 주검에 어떤 신비한 능력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덕분에 장례식 직전에 죽은 오시리스는 잠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귀한 황금으로 오시리스의 거시기를 만들어 마지막으로 교접하였으며, 그로 인해 호루스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누구 하나 훔쳐본 사람도 없고, 신들을 법정에 세워 친자확인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어찌했든 필레 섬에 묻힌 오시리스의 영혼은 두아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위대한 신이자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였던 오시리스는 여느 신들과 달리 사람들처럼 죽었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죽음과 부활을 관장하였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왕이 되었다.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여겨졌다. 고대의 파라오들이 피라미드를 짓고, 사후 세계로 가는 주문 외우기에 열중했던 이유도, 이집트 사람들이 죽은 자의 시신을 공들여 미이라로 만들었던 까닭도, 해마다 나일 강이 차고 넘쳤다 다시 빠지는 이유조차도.

 

신들은 이제 이집트에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묻혔거나 더러 나일 강의 푸른 물길 속에 잠긴지 오래다. 무너진 피라미드 속에 감춰진 파라오들의 영광은 이민족들에게 도둑맞았고, 쓰러진 신전의 주춧돌들은 이교도들의 집 주춧돌로 쓰였다. 얼마 남지 않은 흔적들마저 오시리스의 조각난 사체처럼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지혜롭고 현명한 이시스 여신이 부활한다면... 우리도 그녀처럼 조각난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남겨진 신들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역사도 되풀이될 수 있을까. 갈수록 모를 일이다. 신들도 떠나버린 땅에 남겨진 나일 강에게 물을 뿐이다. 오직 나일 강만이 신들의 시대로부터 변함없이 이집트를 흐르고 있지 않던가. 다만 바랄 뿐이다. 나일 강의 범람이 계속되는 것처럼 죽었다 다시 살아난 오시리스의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기를.

 

 

 

 

 

 

 

IP *.186.57.60

프로필 이미지
2013.03.18 10:10:10 *.42.252.67

인내 중 ........

프로필 이미지
2013.03.20 10:25:01 *.47.39.151

ㅋㅋ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