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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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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9일 09시 1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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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 새 수장이 탄생했습니다.

콘클라베가 시작된 이틀만에 교황이 선출된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때는 네 차례에 걸쳐, 그리고 그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때는 8번의 투표를 거쳐 선출된 것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중지가 모아진 것입니다. 이번에 결정된 교황은 1282년만에 비유럽인이 선출되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교황은 '청빈'과 '박애'를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즉위명으로 정했습니다. 그의 교황 즉위로 인해 몇 가지 역사적 최초기록을 남겼습니다.

먼저, 그는 500여년 역사를 지닌 '예수회'가 배출한 첫번째 교황이 된 것입니다. 가톨릭 내에는 크게 몇 가지 수도회가 있는데, 예수회는 1540년 로마 교황청이 인정한 단체로 '로욜라'와 '프란치스코 사비에르'가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수도회로 조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로욜라의 영신수련을 수행지침으로 이웃 구원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예수회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로 영화 미션과 우리나라의 서강 대학교를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좀 쉬울 것 같습니다. 영화 미션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예수회는 16세기 종교개혁 바람을 타고 수도회 정신을 앞세우면서 개신교에 맞서 전 세계로 포교활동을 넓혔습니다. 아시아 지역은 1542년 사비에르가 인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전달되었습니다. 이들은 신대륙 전도를 포함해 벽지나 변경에서의 포교에 헌신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예수회는 교육부문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회 기관이기도 합니다. 1547년 예수회대학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226개의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대학을 일례로 들면, 조지타운 대학과 보스턴 칼리지, 그리고 포드햄 칼리지 등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에는 서강대학교와 광주가톨릭대학 등이 있습니다.

두번째, 그는 프란시스코성인을 즉위명으로 정한 첫번째 교황이 되었습니다. 즉위명은 보통 그가 가장 닮고자 하는 일종의 롤모델적 성격을 띄기 때문에, 교황으로 재임하면서 나가야 할 길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기에 가톨릭에서는 매우 중요한 상징을 지닙니다. 그가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것은 복음적 생활을 강조하고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성인은 금욕적이고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셨습니다. 새 교황은 지하철을 타고 다닐 만큼 청빈한 분이라고 합니다. 1936년생인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실만큼 공부도 잘했으나, 22세 때 예수회에 입문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신 후, 산미겔 산호세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33세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학자 출신에 원리를 중시여겼다면, 그는 신자들과 호흡하는 행동파 성직자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그 또한 동성결혼이나 낙태 등 사회문제에 대해 교황청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라고 합니다. 그의 선출로 이제 유럽 중심이었던 가톨릭이 이제는 전 세계인의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고,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있는 지금, 이제 가톨릭도 교황은 반드시 이탈리아인 교황혹은 유럽인이어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전통을 과감히 부수고 변화의 바람에 동참한 것입니다. 지금 가톨릭은 많은 지역에서 신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데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때에 성직자들이 종교적 삶으리 보여주는 솔선수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바람이 한창이던 16세기, 개신교는 가톨릭의 부패에 반대하여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때 예수회는 교회 안에 남아 내부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교회 건물 바깥 저자 거리로 나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하는 삶을 실천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물결과도 같은 지금 21세기에 그 또한 교회 건물 바깥 저자 거리로 나가 이웃에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그런 가난한 사도가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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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번 콘클라베는 여러모로 풀리지 않는 배경이 있어 여전히 베일에 쌓인 느낌입니다. 먼저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을 두고 그 배경에 많은 이들이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고령과 병약함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직분을 소화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세계 각국의 주교 대표 262명 등 가톨릭 수뇌들을 로마로 불러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교회의 나갈 바를 모색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인 시노드를 열기도 할만큼 건강하셨다고 합니다. 때문에 2010년에 아일랜드를 비롯한 전 세계를 휩쓴 가톨릭 사제들의 유아 성추행 스캔들로 일종의 사퇴 압박을 받았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것입니다.

아일랜드에서는 20여 년 동안 46명의 신부가 320건의 성적 학대에 연루된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습니다. 네덜란드에서도 300여건이 넘게 접수되었고요. 이런 파문이 커지자 당시 교황은 아일랜드 신자들에게 공식 서한을 통해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황청 내부의 비밀 문서들이 외부에 공개 된 것 또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교황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집사에 의해서 기밀문서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바티칸 은행장이 해임되는 등의 내부적인 갈등이 고조된 것들이 그의 사임에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보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베네딕토 16세는 598년에 처음으로 종신직으로 여겨진 교황이 슷로 물러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전의 사임한 경우는 14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비뇽에서 대립한 교황 베네딕투스 13세가 즉위하여 교회가 분열되자 피사 공의회에서는 두 교황의 동반 퇴위를 결정한 사건입니다. 그레고리우흐 12세는 당시 이에 불복했으나 결국, 유럽교회의 대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1415년 자진 사퇴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2010년에 발간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대담집 <세상의 빛: 교황, 교회, 그리고 시대의 징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페터 제발트라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나눈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그런데, 이 대담을 한 페터 제발트는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 <슈테른>에서 일하면서 주기적으로 가톨릭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기사들을 주로 썼던 기자입니다. 그는 교황을 비판할 목적으로 청한 대담이 성사되어 <이 땅의 소금>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를 계기로 가톨릭에 귀의하게 된, 재미있는 이력의 소유자 입니다. 이 책은 그가 반 가톨릭이었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어, 가톨릭 내부의 비리에 대해서 돌직구질문들을 쏟아냅니다. 이 책에서 교황은 교황직 사임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당시부터 그는 사임에 대해서 염두해 둔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맡은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하게들 때는 물러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고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부들의 성추문 사건들에 대해서도 그는 이야기 합니다.

실제적인 성범죄율을 고려할 때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최소화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가톨릭 사제직이나 가톨릭 교회만의 특징이 문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란 사실도 확인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인간의 죄에 뿌리를 두고있고 그런 일이 가톨릭교회 안에도 존재하기에 이런 끔찍한 결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선하고 좋은 일까지 모두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얼마나 많은 환자와 어린이가 힘을 얻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악을 최소화하려 해서는 안되고 힘들고 아파도 이를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이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 감사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역할을 하는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생활 전체가 붕괴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제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 외부 세계와 단절 된 채, 남은 여생을 보내신다고 합니다. 평생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그는 한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영적인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가톨릭에 발을 담그기는 하지만 깊은 신앙심 없이 주일마다 그냥 당연히 가야 하는 곳 쯤으로 치부하는 저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미사를 마친 후, 성당에 있는 서점에 들러 여러 성인에 대한 책을 골라봅니다. <성녀 에디트 슈타인>에 대한 책을 골라봅니다   

 

          

** 이미지 출처 www.yes24.com

IP *.6.10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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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0 10:37:13 *.252.144.139

오늘 신문을 보니 새 교황님이 금반지와 빨간 구두대신 금박을 입힌 은반지와 검은 구두를 신었다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부디 프란시스코 교황님은 건강하게 자신의 사명을 다하시길..

 

재미있고 깊이 있는 글 잘 읽고 있어요.

선배님글 항상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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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0 13:54:35 *.216.38.13

 

재키재동, 고맙습니다 ^^

 

어제 뉴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미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보도를 해서 저도 유심히 보았는데요,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그리고 제가 쓴  칼럼과 관련이 있어서 말씀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요.

 

먼저, 교황 프란치스코는 즉위 미사에 앞서서 교황의 상징인 '어부의 반지'와 '교황 문장(紋章)'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반지는 새 교황이 즉위할 때마다 새로 만들지만 이번에 사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용한 반지는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년~1978년)에게 선물로 바쳤던 것을 재활용했다고 합니다. 은에 금도금을 했고요.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반지는 '금'이었다고 합니다.  '청빈'을 강조하는 신임 교황의 메세지를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어부의 반지'는 교황이 모든 공식 문서에 찍는 '옥새(玉璽)' 용도로 사용 됩니다. 

 

반지의 명칭이 ' 어부의 반지' 인 것은 예수가 어부였던 베드로(초대 교황)를 제자로 삼을 때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고하죠.

'교황 문장'에서 방패 중앙에 'IHS'와 둥근 불꽃 모양이 있는데요, 이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한 '예수회'의 상징 문양이라고 합니다. 

 

 'IHS'는 '인류의 구세주 예수(Iesus Hominum Salvator)'를 뜻하는 라틴어의 머리글자 입니다.

 

방패 왼쪽의 별은 성모 마리아, 오른쪽 포도 모양의 '나르드 꽃'은 성모 마리아의 남편 성 요셉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대목은 바로 다음입니다.

 

이 즉위 미사에, 이슬람교·유대교·불교 등 다른 종교 관계자들도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세계 정교회 수장인 바르톨로뮤 1세 총대주교도 자리해 새 교황의 탄생을 축하한 것이죠.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 본부를 둔 정교회의 수장이 교황 즉위 미사에 참석한 것은

 

1054년 동서 교회로 분리된 후 959년 만에 처음으로, 가톨릭과 정교회의 화합의 물코를 튼 행보로 보입니다. 

 

이제 '변화'와 '화합'에 동참한 가톨릭의 행보, 정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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