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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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2013년 5월 5일 02시 06분 등록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유배 시절 많은 제자를 키웠다. 그 기간이 18년이었고 키운 제자도 수십 명이었지만 문하는 흩어져 사라졌다. 조선 최고의 학자인 다산의 문하가 남아 있지 않다니! 다산 연구가인 정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다산은 무척 깐깐한 스승이어서 웬만한 제자들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창을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와 욕하고 헐뜯으며 등을 돌린 제자도 있었다. 하지만 열 다섯에 다산을 만나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마음에 품고 행하며 산 제자가 있었다. 바로 황상이었다. 정민 교수는 다산과 황상의 만남을 삶을 바꾼 만남으로 정의한다. 황상은 다산이 써 준 삼근계三勤戒」를 평생 읽고 또 읽어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누더기가 되었다. 또한 스승이 준 편지와 쪽지글을 모아 서간첩이란 문집도 엮어 내었다. 내 삶에도 삶을 바꾼 만남이라고 칭해도 과하지 않은 스승과의 만남이 있다. 황상처럼 문집까지는 못해도 나의 스승 구본형이 준 글을 모아 글 한편을 쓰려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을 마음에 품고 황상처럼 평생 스승의 가르침을 행하려 한다.

 

그 날은 안동으로 1 2일 오프라인 수업을 다녀온 다음이었다. 임청각 군자정에서 하루를 머물며 우리는 쓰고 싶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추적추적 오는 비를 맞으며 하회마을을 돌아다니다 민박집 건넌방에 들어 안동찜닭과 간고등어로 허기를 달래고 저녁에는 월영교의 야경을 음미했다. 주말이 지나고 과제로 스승의 책 깊은 인생 북리뷰를 올렸다. 그 책에는 스승이 당신의 스승에게 편지를 쓴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나도 스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드렸다.

 

스승님께,

 

지난 주말 처음으로 안마를 해드렸습니다. 스승님의 굳은 어깨와 목을 주무르다 보니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손이 야무지다, 어린 놈이 시원하게 잘 한다는 칭찬에 더욱 신이나 열심히 하던 어린 제 모습이 보입니다. 이번에도 그리 했지요. 안마를 배웠냐는 스승님의 말에 기운이 솟아 두 손이 스승님의 머리와 관자놀이까지 슬금슬금 올라갔지요. 힘든데 그만 하라는 말씀이 고마워 더욱 정성을 담아 공들여 오랫동안 했습니다.

 

스승님과 제가 어떤 인연으로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 사이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왜 제가 1999년에 낯선 곳에서의 아침, 2002년에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2009년에 더 보스를 읽었고 2010년에는 드디어 스승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을까? 또한 올 한 해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되어 동거동락하게 되었을까? 정말 미래를 쓰여 있는 것일까요?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마는 것일까요?

 

학창시절 많은 스승을 만났지만 마음을 다해 존경한 분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다지 기억에 남는 분도 없었습니다. 스승이 왜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아집이 세고 고지식해 무슨 일이든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마흔이 다가오면서 처음으로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을 잘못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허물어졌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안식년을 시작할 무렵 스승님이 떠올랐습니다. 스승님 밑에서 수련하는 것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사제의 연을 맺은 지도 벌써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스승님, 제가 여쭈어 보았지요? 안식년에 연구원이 된 것이 잘 한 거냐고요? 스승님은 그것은 네가 나중에 알게 될 거라는 답변을 주셨죠. 하지만 이것은 알겠습니다. 안식년에 스승님을 만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지요. 이제야 저는 제가 어떤 인간이고 왜 그토록 힘들고 외로웠는지 알겠습니다. 무엇에 재능이 있고 무엇을 즐기는지도 알겠습니다. 저는 스승님께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쁨은 도처에 있었습니다. 제가 감탄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고 좋은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좋은 책을 음미하며 가볍게 사는 것도 아주 근사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저와 아주 비슷한 분입니다. 생긴 것도 생각도 닮은 곳이 많지요. 스승님은 저와 아주 다른 분입니다. 스승님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느릿느릿 걷지만 저는 갸름한 얼굴에 행동이 날래지요. 스승님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하시지만 저는 정해진 길을 시간에 맞추어 가야 하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저는 저와 아주 다른 스승님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평생 모시고 싶습니다. 저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신 분, 저에게 또 다른 인생을 열어 주신 분이 바로 스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가을이 깊어 갑니다. 이 가을이 깊어지면 겨울이 올 것이고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오겠지요. 제 인생도 나날이 깊어 갑니다. 머리로 얻은 지식이 가슴 속 사랑을 만나 지혜가 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깨달음의 시기는 분명 있었습니다. 이제 견딤의 시기를 성실하게 보내려 합니다. 그리고 먼 훗날에는 스승님을 넘어섬으로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스승님, 사랑합니다.

오랫동안 제 곁에 그 모습 그대로 계셔 주세요.

 

2011년 가을

제자 재경 드림

 

그 글에 스승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홀로 하루 종일 운전하라 애썼다.
옆자리로 루미가 옮겨 , 놈은 계속 잤느냐
?
깨어서 계속 재잘거려 주었느냐
?
임청각 군자정에서 목과 등을 안마해 주어 시원했다
.
6
개월이 지나는 동안 웨버로 너의 노고가 많다
.
모두 너는 일이 어울린다 생각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쓰러져 자야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
그러나 사람들은 식대로 살아야 좋은 것이니 책이 네게 도움이 많이 것이다
.

사람은 무한한 것이다. 필멸의 존재이나 내면은 참으로 넓고 깊어 무한한 탐험이 가능하다
.
자신에게 감탄하고 자신에게 놀라거라. 너는 그리 될 것이다.

 

스승의 댓글을 읽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그의 말대로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자고 난 후였다. 스승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싶었다. 스승의 예언대로 나에게 감탄하고 놀라는 삶을 살겠다 다짐했다. 스승이 그리 된다 했으니 그리 될 것이라 믿었다. 찾아보니 스승은 그 해 봄에 『깊은 인생』의 저자 사인에도 이리 적었다. 재경에게, 결국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나는 스승의 말대로 될 것이다. 누가 말하길 스승에게 도사기(道士氣)가 있다고 했다. 도사의 예언이니 그리 되지 않겠는가?

 

스승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만나고 헤어질 때 마다 제자들을 안아주었고 힘들어 하는 제자에게는 따뜻한 글을 전해주었다. 우리 동기 중에는 매일 그에게 전화를 한 녀석도 있고, 매일 메일을 보낸 녀석도 있다. 나라면 귀찮아했을 그 일을 스승은 그리 생각하지 않고 행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동기 중에 한 명이 과정 중 중도 하차 선언을 했다. 스승은 연구원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나에 대해서 이렇게 써두었다. 유재경은 7기 웨버입니다. 그녀는 이미 좋은 리더입니다. 그러나 올해 한 해를 통해 더 훌륭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해 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웨버가 되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그런 리더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하면 탁월함(excellence)를 추구할 수 있을까 골몰했다. 하지만 중간에 큰 사고가 있게 되니 스승을 볼 면목이 없었다. 나는 스승에게 용서를 빌며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깨우쳐 달라, 성심성의를 다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스승은 나의 메일에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내왔다.

 

이미 성심성의를 다하고 있지 않느냐? 네 천성이지 않느냐?

아무개는 잘 위로해 주어라. 그만두고 나서 스스로 많이 아플 것이다.

그저 안아주고 들어주고 가끔 만나 밥을 먹도록 해라.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해라. 한때 불운이 소나기처럼 쏟아 질 때도 있지만 비는 그치지 않더냐.

소녀를 데리고 원두막 속으로 들어가 사랑하다 보면 비가 그치고 햇살이 쨍쨍하지 않겠느냐?

작가는 인생이라는 소설의 끝을 마음대로 다시 쓸 수 있으니 멋진 직업 아니냐?

근데 재경아, 너 그 하하하송과 매직 카펫 라이드와 나 이런 사람이야 정말 좋은 것이냐?

 

스승의 댓글에는 감동과 유머가 공존한다. 감동해 울다가 결국 웃게 만든다. 하하하송과 매직 카펫 라이드는 나의 애창곡이다. 스승은 중환 선배의 노래방 북 콘서트에서 내가 부른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9월의 어느 날 칼럼에도 이런 댓글을 달아 두었다.

 

웨버일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 너는 훌륭한 웨버다.

나는 네가 계속 훌륭한 웨버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네 안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A, B를 잘 섞으면 좋아 보이는데... 그거 섞는 법이 네 첫 책 아니냐?

중환이 북 콘서트 할 때, 휴지 덮어 잘 흔들던데.
그리고 말야, 네가 부르는 2 가지 노래 가사 말인데, 그거 맘에 드냐
?
나는 네가 그거 부르면 가슴이 꽉 막히면서 얘가 왜 이러나 그러는데. ㅋ ㅋ

 

그래서 나는 스승의 댓글에 이렇게 답했다.

 

사부님,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
그리고 제가 노래 부를 때는 가사를 중점적으로 보셔요.(저는 사부님 노래할 때 그리합니다. ㅎㅎ
)
'
신경 쓰지 마요, 그렇고 그런 얘기들. 골치 아픈 일은 내일로 미뤄버려요
.
인생은 한 번뿐 후회하지 마요. 진짜로 가지고 싶은 걸 가져요
.
웬일인지 인생이 재미없다면. 지난 일은 모두다 잊어 버려요
.
기회는 한 번뿐, 실수하지 마요. 진짜로 해내고 싶은 걸 찾아요
.
용감하게 씩씩하게 오늘의 당신을 버려봐요
.'
-
자우림 <매직 카펫 라이드> 중에서

 

스승은 당신이 재미없는 사람이라 하지만 꽤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댓글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지만 촌철살인의 묘미가 보인다. 긴 댓글도 지루하지 않다. 그는 결코 이래라 저래라 시시콜콜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좋네 이것은 나쁘네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보다 한 마디씩 던질 뿐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제자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함께 공부하던 어느 여름 나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란 칼럼을 썼다. 백수 생활이 6개월이 넘어가면서 갖가지 상념들이 나를 괴롭히는 시점이었다. 20년간 오른 산의 정상에서 이 산이 아니었나란 당혹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으니 신중하게 다음 산을 선택해야 한다는 고민을 담은 글이었다. 이 글에 스승이 댓글을 남겼다. 나는 그의 댓글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시울이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다시는 갈림길에서 주저 앉아 있지 않겠다, 계속 걸어 바다에 다다르리라 다짐했다.

 

10년을 바친 인생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 라는 경우는 있다.
20
년을 바친 인생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라고 할 수도 있다
.
그것은 두렵고 두려운 것이다
.
그러나 누구도 평생을 바친 길에서 ' 이 길이 아닌가 봐'할 수는 없다
.
그것이 이미 그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
바다에 이르는 길이 어디 하나 뿐이더냐
?
산을 넘어 가는 길도 있고, 강 따라 가는 길도 있고, 긴 길도 있고 도는 길도 있고 짧은 길도 있다. 끝까지 가면 닿게 되어 있다
.
어느 길에나 위대함으로 가는 길을 있는 것이다. 끝까지 가면 바다에 이른다
.
그러므로 가다가 되돌아 와 갈림길에서 울더라도 다시 다른 길을 찾아 쉬지 말고 가야 한다
.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 것도 가는 길의 한 부분이다.

헤매지 않고 어찌 처음 가는 길을 찾을 것이냐.
갈림길에서 지쳐 주저 앉아 있지 마라. 일어서 걸어라
.
그곳을 벗어나 계속 걸으면 바다에 다다르게 되리니.

 

스승과 나는 문자도 자주 주고 받았다. 작년 어느 가을날 저녁 퇴근길에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사부님, 팟캐스트로 방송 잘 듣고 있어요. 생각보다 진행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 프로진행자!!

저는 요즘 출판관계자들의 피드백을 마음 설레며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거의 다 온듯한데 좋은 소식 있음 전해 드릴게요.’

 

스승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귀여운(?) 답문자를 보냈다.

 

그래 재경아, 나 잘해? 근데 월수 낮이 매여있어 싫구나. 난 건달인데.

성실하니 네 책은 결국 나올 것이다. 책을 내고 나서 당당하려면 고독과 고뇌가 있어야 한다.

먼저 너에게 도움이 되어야 네 처지의 남을 도울 수 있다.’

 

내가 출판사들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으며 좌절하고 있을 때 그는 이런 문자도 보냈다. 그는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을 시점이었다.

 

힘내라. 그 때마다 한 번 더 들여다 보고 조금 더 생각해라. 그렇게 좋아지는 것이다.

나도 힘내고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스승의 문자를 받으면 마음 한 구석에서 모닥불이 다시 타올랐다. 몸 안에 온기가 퍼지고 다시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작년 여름 스승이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을 내었을 때 저자 사인에도 스승은 재경에게, 다시 불꽃으로라고 써주었다. 그는 진정한 부지깽이였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열전』의 중니제자열전에는 공자의 제자들이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공자는 안회라는 제자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공자는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스승도 아마 제자들에 대해서 각각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작년 2, 우리는 동해안으로 수료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어느 날 밤 스승은 우리에게 못된 음식이라는 것을 해줬다. 돼지고기와 된장, 고사리와 쪽파가 앙상블을 이루는 정말 살을 부르는 못된 음식이었다. 그 날 밤 동기 하나가 스승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리자 했다. 마다할 줄 알았던 스승이 한 명씩 제대로 올리라 했다. 그래서 설날 세배하듯 스승에게 큰절을 했다. 그 밤에 우리는 스승에게 각자 한 마디씩을 청했다. 스승은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경이가 좀 걱정이 돼. 또 다시 탈진할까봐. 너희들은 얘를 좀 쉬게 해줘야 해. 너는 지나치게 센시티브할 필요가 없어. 피곤해지지. 쟤가 속이 엄청 여린 사람이야. 재경이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지. 겉으로 보면 멀쩡하고 튼튼해 보이고 언제나 기대고 싶은 여자이지만 안 그래. 얘가 쓰러지면 큰일이거든. 우리 다 쓰러져. 그러니까 너희들이 얘가 하는 말을 믿지 마. 얘가 맨날 그러거든. ‘사부님 제가 지켜드릴게요.’ 난 속으로 좋지. 재경이에게 기대면 좋지. 얘가 기대게 하는 여자지만 그러면 안돼. 너희들이 앞으로 얘를 잘 돌봐 줘야 해. 알겠지?’

 

스승에게 나는 걱정스러운 제자였나 보다. 센 척 하고 있지만 마음은 약하고 여린 제자가 스승은 마음이 쓰였나 보다. 그래도 쓰임이 있는 제자이기는 했을 것이다. 스승은 당신의 손녀를 볼 베이비 시터를 나에게 구해달라 했다. 나는 고급인재를 스카우트하는 헤드헌터인데! 그래서 나는 수완을 발휘하여 마음씨 좋은 조선족 이모님을 구해드렸다. 이후 그 분이 그만두게 되어 다른 이모님이 필요할 때도 구해드렸다. 스승은 기뻐했다. 한 번은 큰 딸이 집을 구해야 한다며 분당의 부동산 정보를 묻는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알고 있는 바를 알려드리고 추가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연락 달라고 말씀 드렸다. 이후로 딸이 이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스승이 별세했을 때도 나는 홍보담당자로 활동했다. 그의 부고 기사를 쓰고 기자의 전화를 받고 자료를 보냈다. 그러니 스승의 가는 길에도 쓰임 있는 제자의 본분은 다 한 것 같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챙겨야 할 일도 많았고 회사 일과 장례가 엉키어 경황이 없었다. 장례 중 해야 할 일들은 마치 업무를 해치우듯 했다. 일을 할 때의 평정심 때문인지 그 때는 그럭저럭 지낼 만 했다. 장례를 끝내고도 바빴다. 후속작업을 하고 회사의 밀린 일을 하느라 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자 검은 먹구름 같은 무기력이 나를 찾아와 장대비를 뿌려댔다. 얼마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회사 부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데도 주책 맞게 눈물이 났다. 샤워를 하다가 하늘을 보다가 울었다. 입관식에서 그의 차가운 볼을 만져보고 수골실에서 그의 하얀 뼈를 목격했음에도 그가 이 세상 어딘가 있을 것 같다. 출퇴근 길에 그가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으니 문자를 보내면 금새라도 답장이 올 것만 같다. 그냥 어디 연락이 되지 않는 곳에 여행을 갔다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스승과 이별하기 위한 나의 리추얼이다. 글로 만나 인연을 맺었으니 이별도 글로 하는 것이 맞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존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요즘 그것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삶의 갈림길에서 스승이라면 어찌했을까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렇게 삶의 중대한 결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승에게 더 이상 걱정스러운 제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승의 예언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온 힘을 다 쓰고 탈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춤추며 갈 것이다. 그리고 스승이 그랬듯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다. 스승의 당부처럼 삶 속에서 한가함과 치열함을 함께 찾아 갈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즐겨 읽어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별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리고 내 제자 재키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만큼 삶 속에서 한가함과 동시에 치열함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언젠가 그 때의 일년을 보낼 때의 마음으로 말이다. – 2013 1 14일자 <구본형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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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5 11:02:08 *.201.99.195

재키야,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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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5 15:47:17 *.143.156.74

명예 7기 좌샘, 저 밥사주세요.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에서 맛있는 걸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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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5 23:42:59 *.10.4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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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18:29:00 *.252.144.139

미옥아,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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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11:13:12 *.216.38.13

거의 한 달째 칼럼을 못쓰고 있습니다.

다음주에 올릴 칼럼의 주제 책이 바로 이 <삶을 바꾼 만남> 편이었습니다.

스승님과의 아름다운 문자가 가슴을 적셔줍니다. 정말 '삶을 바꾼 만남'을 지니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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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9 11:32:05 *.252.144.139

선배님 글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문을 열고 나오세요.

그것이 스승님이 바라시는 바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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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14:04:03 *.37.122.77

밥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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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9 11:32:37 *.252.144.139

그러자꾸나.

서울오면 연락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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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8 15:55:30 *.212.118.148

나두 이런 맘이라 너더러 자꾸 건강 잘챙기라 하게 된다. 밥사줄게. 출판기념회 빚도 있어 늘 그 고마움으로 사주고 싶었는데 

 볼때마다 맘으로만 한 열번 사주었구나. 밥 마이 먹고  너 한가할때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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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9 11:33:18 *.252.144.139

맘으로 사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번 사주시면 되지요.

함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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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4 17:14:02 *.34.180.245

재경 누나, 밥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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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13:52:20 *.252.144.139

그래, 사줘야지.

건너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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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6 22:02:14 *.50.146.190

별핑계 달핑계 대고 술독에 빠져 지냈답니다. 

다시 시작해야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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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9 17:59:47 *.143.156.74

다시 시작함을 축하드려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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