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김미영
  • 조회 수 296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5월 16일 23시 38분 등록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해야 할 일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냥 그랬다. 그러다 오늘, 덜렁덜렁 들고만 다니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그랬더니 두통이 시작되었다.

 

***

 

%BB%EC~1.JPG

 

포로수용소에서 가혹한 체험을 한 빅토르 에밀 프랑클은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가 그 하나.

그것은 뭔가를 만들어 내는 ‘창조’입니다. 이 말에서 곧바로 연상되는 것은 회화나 조각 등 이른바 예술적인 창조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닙니다.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발명이나 기업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기술 개발, 상품이나 서비스의 창조, 뭔가 업적을 쌓는 것도 창조입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이 ‘창조’가 인간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 ‘크리에이티브 creative'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의 획득에 성공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이고, 이것이 현재의 능력주의나 성과주의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진가 그 둘.

그것은 ‘경험’입니다. 원래 자신만의 독창적인 뭔가를 ‘창조’하는 것이 멋지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적어도 ‘경험’이라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뭔가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낯선 나라를 여행해 보고, 뭔가를 배우는 모임에 가입해 보고,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는 것입니다. ‘창조’보다는 못하다고 해도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경험만으로도 인생에 무게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진가 그 셋.

그것은 ‘태도’입니다.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며, 그저 마음속으로 빌고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소극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프랑클은 인간의 가치로서 이 ‘태도’를 가장 중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 가장 중요하게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태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사회 또는 시장 원리 앞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 ‘태도’를 획득하는 일일 것입니다.

 

‘태도’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프랑클은 어느 말기 악성종양 환자를 예로 들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는, 회진 때 의사가 죽기 몇 시간 전에 통증을 완화해 주는 모르핀을 주사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알고 그날 밤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 환자는 프랑클에게 “지금 그 주사를 놓아 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저 때문에 밤중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요”하고 말했습니다. 프랑클은 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할 데 없이 인간다운 업적”이라며 칭송했습니다.

 

***

 

삶이 하찮았다. 덧없고 무의미하고 그나마도 초라해서 숨거나 도망치고 싶었다. 돌아봐도 소용없고 오히려 자꾸만 작아져 갔다. 그동안 난 대체 뭘 하며 살았나 싶었고 앞으론 또 뭘 하며 살까 싶었다. 하루살이 같은 무지한 부지런함에도 지쳐 짜증만 늘었다. 무기력했다. 밴댕이 소갈머리로 취했고 또 취했다. 점점 미운 진상이 되어갔다. 어리석게도.

 

***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애초에 구할 수 없고, 구한다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 가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에 다 답했을 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목적으로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노력해도 안 된다는 허무주의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는 것.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저절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 등등. 이러한 ‘태도’가 아닐까요.

 

***

 

일을 조금 줄였다. 잠시 멈춰야 했다. 내게 시간을 좀 주기로 했다. 내 안의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묻고 기다려야겠다. 나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도 충분히 나답다는 것을.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좋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이 미움도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처럼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이 또한 삶이라는 선물인 것을. 결국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것을. 나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카페 다이어리, 이건 대체 언제 시작한단 말인가! 끙.

 

 

 

IP *.50.146.19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