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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일 15시 20분 등록

범해 좋은 사람들1.

 아버지의 여행 가방- 오르한 파묵

 

 

   오르한 파묵은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연설은 자신의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포함한 그의 정신세계를 짧은 시간에 다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을 준비하는 작가의 노력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여행 가방을 통해 자신의 문학인생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오르한 파묵을 좋아한다. 그가 50세 되던 해에 쓴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자전적 에세이다. 앞날이 환한 작가가 허위나 가식이 없이 자신의 삶과 추억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라져가는 고향의 풍경, 변방 이스탄불에 대한 비애가 바탕에 흐르고 있다 이스탄불의 영욕의 역사가 그의 50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2010년 터키 여행을 준비하며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혹시 그가 어느 구석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몰라 공연히 거리의 카페들을 기웃거렸다.

 

 오르한 파묵은 지금도 이스탄불에 살고 있다.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에 항상 같은 곳에 , 더욱이 50년간 항상 같은 집에 사는 것에 대하여 그의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밖에 좀 나가렴, 다른 곳으로 가렴, 여행을 떠나거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같은 집, 거리, 풍경 그리고 도시에 매여 살며 바로 이 이스탄불에 대한 예속감에서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고 말한다.

 

 그가 태어난 1952, 이스탄불은 나약하고 가난하고 변방이자 오스만 제국의 몰락의 정서와 가난과  폐허가 부여한 슬픔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의 생애 또한 도시의 운명과 같이 우울한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고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작가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는 조국 터키와 이스탄불이라는 시공간이 어떻게 그에게 작용했는지 악착스럽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와 소통하고자 한다. 불행하고 모순적인 가족의 이야기, 아스라한 첫사랑의 추억, 열등감을 불러 일으키는 형과의 싸움들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감정을 마구 헤집고 들춰가면서 글을 썼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시작되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해한 삶의 경험들이 나의 생각으로 변하게 되며, 나중에는 중요한 기억으로 저장되었다가  다시 나의 말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다. 오르한 파묵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두 해전에 당신의 글들과 단상을 적은 공책들로 가득찬 작은 여행 가방을 그에게 주었다. 당신의 사후에 이 글들을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작가라는 작업의 비밀은 뮤즈에게서 오는 영감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에 있다. 터키에 바늘로 우물파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을 위해 바늘로 산을 뚫은 이야기이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변함없는 열정으로 같은 말()을 수없이 그리다보니 아름다운 말을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게 된 이란의 옛 세밀화가처럼, 작가라는 직업과 삶도 그러하다. 그는 아버지의 가방을 열기가 두려웠다. 그의 아버지는 작가로서 평생을 바쳐온 그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외로움을 피해 친구, 사람들, 모임, 농담, 그리고 집단에 섞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단조로운 가정생활을 지루해 하다가 파리로 가서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호텔방에서 글로 공책을 채웠다.

 

"길을 가면서 아버지는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좋다는 것, 돈은 목적이 아니라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한때 우리를 떠나 파리에 있는 호텔방에서 머물며 시를 썼던 것, 발레리의 시를 터키어로 번역했던 것, 세월이 흐른 후 미국 여행을 갔다가 시와 번역물로 가득 찬 가방을 도둑에게 뺏겼던 것을 신나게 설명해주곤 했다.“                -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 425

 

아버지에게는 1500권이 넘는 장서들이 가득찬 서재가 있었고. 그가 만난 세계의 작가들에 대해 아들에게 알려 주었다. 아버지는 여행 가방에 있던 공책들의 대부분을 채우기 위해 파리에 갔고 자신을 호텔방에 가두었고, 그곳에서 쓴 것들을 터키로 가지고 왔다. 오르한 파묵은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아니 질투 했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홀로 방에서 심오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 사회와 그 속의 사람들과  같은 것을 믿거나 믿는 것처럼 하면서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인가? 그러다가 아버지의 가방을 연 것은 "혹시, 아버지의 삶에 혹시 내가 몰랐던 불행이나 오로지 글에만 쏟아 부었던 비밀이 과연 있었던 것은 아닐까?"는 문득 의문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변방에 있다는 감정과 진정성에 대한 두려움은 글을 쓰는 내내 그가 느꼈던 내적 혼란이었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작가는 어느 날엔가 그가 쓴 것들이 읽히고 이해될 거라는 믿음 때문에 글을 쓰며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방에 가둔다.  우리는 슬픔 혹은 분노에 이끌려 앉았던 책상에서 그 슬픔과 분노너머에 있는 아주 다른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오랜 여행 끝에 도착한 그 세계는 마치 오랜 항해 후 안개가 서서히 걷힐 때 온갖 색깔들로 우리 앞에 천천히 나타나는 섬처럼 경이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어쩌면 아버지도 이런 류의 행복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파묵은 22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하고 자신을 방에 가둔 4년 후에 첫 소설 <제브데트씨의 아들들>을 탈고했다. 그리고 타자로 친 원고 복사본을 아버지께 드리며 읽고 의견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두주일 후에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찾아와 얼싸안았다. 아들의 첫 소설에 대한 신뢰를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고는 어느 날엔가 오늘 이렇게 행복하게 수락한 이 상을 그가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떤 확신이나 목표를 바란 게 아니었다. 단지 아들을 지지하고 격려하기 위해, 그 후로도 오랜 세월 동안 만날 때마다 격려해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200212월에 돌아가셨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셨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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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11:02:52 *.252.144.139

좌선생님 글을 두 팔 벌려 열열히 환영합니다.

홍화백의 그림이 좌샘에게 에너지를 팍팍 쏘아줬나 보네요.

앞으로도의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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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23:11:25 *.201.99.195

재키야, 제동아

너는 참 부지런도 하구나.

열심히 글 올리고,  남의 글 댓글 달아 응원도 팍팍하고......여러가지로 땡큐다.

 

오늘 북악끝 말바위로 산책을 다녀 왔단다.

바람이 달라졌어,

언제 한번 다 모여서 탕춘대 능선으로 힐링 산책 가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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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 14:54:30 *.252.144.139

탕춘대 능선이 어딘지 모르지만 가고 싶어요.

작년 4월에 비오는 날 사부님과 북악산 간단 등반을 했었거든요.

힐링산책 가고 싶어요.

저도 꼭 끼워주세요,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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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6 22:26:22 *.201.99.195

재키야, 탕춘대 능선은 상명대에서 출발해서 북한산 향로봉까지 가는 길이란다.

우리 싸부가  날마다 산책을 하던 그 길이지.

꽃이 피면 꽃이 피었다고 쓰고, 새를 보면 칼럼에  새 한마리  짜잔~그려놓고,  숲의 향기는 은근하게

 칼럼에 , 마음편지에,  댓글에 담아 주었지.......

 

내가 벙개치면 버선발로 뛰어 나와라, 재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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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01:37:32 *.104.94.47

"작가라는 작업의 비밀은 뮤즈에게서 오는 영감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에 있다"

끈기와 인내.......저에게 절실히 필요한 단어들이네요

 

좋은 책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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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6 22:37:27 *.201.99.195

송암님."이 사람이 나를 그려준 화가야"...라며 칭구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임재범을 닮았답니다. ㅎㅎ  나는 임재범 팬이거든요.

이 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우선 오르한 파묵의 수상연설 전문을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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