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2013년 9월 9일 11시 06분 등록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퇴근 하려는데 허기가 느껴졌다. 그냥 갈까 먹고 갈까 고민하는데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입사한 학술부의 이상무였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회사 건물 지하의 삼계탕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의기투합했다. 부서가 달라서인지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때가 그와 처음 마주한 자리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3년 동안 의료봉사 활동을 해서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스와힐리어! 갑자기 내 입에서 하쿠나 마타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디즈니영화 라이온 킹에 나오는 말로 걱정하지마. 모든 게 잘 될 거야란 뜻) 또한 케냐에서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 내려고 구상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언어와 책!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보았다. 그 해 말 내가 회사를 떠날 때 그는 송별회에 참석하여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후 우리는 가끔 안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거나 1년에 한두 번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얼마 전 그에게 전화가 왔다. 고민이 있는데 조언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평일 저녁 조용한 한식당에서 마주앉고 보니 그는 조금 수척해 보인다. 그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다 제약업계로 들어와 회사에서 7년이 넘게 근무했다. 지금은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Medical Director(MD)로 일하고 있는데 그 일이 그리 즐겁지 않다. 상사들은 그에게 좀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주문했다. 또한 일정 사안에 대해서 신속, 정확하게 직관적인 결정을 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성이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그는 다소 유약한 리더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그는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작년부터 내부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원 의사를 밝히며 이동을 도모 했다. 한국 지사의 MD가 아니라 본사 소속의 전문가로 일할 수 있는 자리들이었다. 하지만 번번히 성사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직속 상사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그 때 마침 모 대형병원의 임상시험센터 부원장 자리를 제안 받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는 그 자리가 자신에게 꼭 맞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 직책으로 연봉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문가로 자리잡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병원 측과 입사 조건에 대한 협의가 마무리되어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터졌다. 병원 인사부서에서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입사 조건의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그는 조건도 조건이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그 자리에서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건이 무산된다면 다른 제약회사 MD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현재 회사에는 더 이상 머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련했다. 심성이 곱고 착한 사람은 조직에서는 결코 강력한 리더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이, 의학박사인 그 조차 조직을 떠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실이 서글펐다. 중고등학생 딸 둘을 두고 있는 그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에게 어떤 자리가 최선일까? 이 시점에서 그의 경력계발의 정석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경력계발을 할 때 더 큰 회사,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연봉을 추구한다.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큰 회사로 이직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 업무 영역을 넓히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 성공했다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행복할까?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인 로렌스 피터 교수는 1969피터의 법칙(The Peter Principle)라는 책을 발표했다. 피터의 법칙은 조직에서 모든 구성원은 무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조직에서 특정 분야의 일을 잘 해내면 그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게 되고 다른 분야까지 담당하게 되는데, 직위가 높아질수록 능률과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급기야 무능력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피터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거나 능력 이상의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자신의 능력과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저 자리에까지 올라갔을까 싶은 사람들이 있다. 왕년에 한 가닥 했던 사람들이 승진해 새로 맡은 업무에서는 실패하는 사례를 자주 본다. 그러니 무작정 승진하는 것이 최선은 아닌가 보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만약 병원의 임상시험센터 부원장 자리에 관한 추가 논의가 잘 되면 그곳으로 이동해라. 하지만 연봉이나 보수보다는 재량권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 잘 살펴서 결정해라. 그리고 어쩌면 지금은 그쪽으로 이동할 때가 아닐 수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지는 마라. 병원은 외국회사보다 더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자리가 자신에게 맞는 자리인지 심사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작은 제약회사의 MD 포지션을 제안했다. 그는 성향상 정치적인 조직에서 승부를 걸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아랫사람들에게는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평등한 위치에서 일하길 즐기지만, 윗사람들에게 아부할 줄은 모른다. 또한 큰 조직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끄는 리더보다는 작은 조직에서 자신의 일을 직접 하는 것을 더 즐긴다. 큰 회사의 높은 자리보다는 작은 회사라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가 그에게는 더 맞을 것이다.

 

경력 계발을 할 때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외부로 보이는 조건을 중요시하여 유명한 회사의 높은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것이 최선일까? 나는 그보다는 자신의 강점과 기질을 신중하게 고려해 결정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축구 황제 마라도나는 무능한 지도자였다. 화려했던 선수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선수에게 필요한 능력과 감독에게 필요한 역량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빨리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피터의 법칙의 한 사례가 될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현재를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염두에 두고 경력 계발을 위한 결정을 한다면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다.

 

나는 그가 자신의 기질에 맞는 자리에서 강점을 발휘하여 인정받으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지금의 자리 보다는 못한 곳일 수 있겠지만 그가 그 자리에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성공과 행복은 자기 만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경력 계발 또한 지위나 연봉에 기준을 두어서는 안 된다. 후회 없이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다면 이는 성공한 경력 계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필자재키제동은 15년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IP *.252.144.139

프로필 이미지
2013.09.11 07:54:11 *.201.99.195

하쿠타 마타타~  걱정 하지마  모든 일이 잘 될거야.....

내 주문 목록이 늘었다. 스와힐리어.....

타타타 하쿠마~ 이럼 헷갈리는거지?

근데 재키야,

경력계발하고 경력개발하고 그쪽 업계에서는 어케 정의하는거야?  궁금해.

 

 

프로필 이미지
2013.09.11 14:20:50 *.252.144.139

좌샘,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경력계발은 개인이 자기 경력의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하는 활동들이라고 봐야 할것 같아요.

우리 회사에서는 경력 가치라는 것으로 산정하는데 조직, 직무, 직급 경혐과 경력 전반을 통해 형성된 핵심 역량을 토대로 평가합니다.

예를 들면 영업을 하다가 마케팅으로 이동하면 경력 확장, 팀원으로 일하다가 팀장으로 승진하면 직급 확장이 잘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보통 작은 회사의 작은 업무에서 출발해 큰 회사로 이직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고 경력 확장을 도모했다면 경력 계발이 잘 되었다고 하지요. 대답이 되었나요? ㅎㅎ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