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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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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2일 22시 37분 등록

 

요즘엔 매주 ‘뭘 써야 하나?’ 하는 고민 빼곤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한동안 뭔가 할 말이 잔뜩 쌓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쌓아놓을 새 없이 다 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이제는 삶을 긍정하게 되었을까요. 마냥 좋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아등바등하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욕심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고 그다음은 망각하는 것, 하루살이로 살아가는 일상에 투정부리지 않는 것, 뭐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아마도.

 

‘무려 철학 박사’ 강신주의 다상담, 한 주 더 갑니다. 이번 주제는 ‘고독’인데 이것도 좋네요. 어른이 된다는 건 고독하다는 것이래요. 고독이란 몰입하지 않는 상태이고 몰입할 게 없다는 것이니 안타깝기도 하지요. 나를 잊을 만큼 뭔가에 빠지는 것,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 해보고 싶어요. 이번엔 누군가와 함께 말이지요. 욕심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까요. 나를 사랑하는 거, 그것도 좋았지만 이젠 설레지도 않고 별로예요. 다 기억했나 봐요. 나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

 

어떤 것에 몰입을 하다 보면 내가 빠져드는 이것이 단지 쾌락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이걸 진정한 몰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쾌락은 좋은 거예요. 쾌락에만 사로잡혀서 살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참 여러분도 갑갑해요. 몰입은 쾌락을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것에 몰입하는 거고요. 불쾌하면 그만 두라고 했잖아요. 머리 좀 쓰지 말아요. 선사들이 가르쳐 주잖아요. 잔머리 굴리지 말라고요. 예전에 배웠었던 알량한 가치관들로 여러분 행복을, 여러분이 느꼈던 걸 왜 억압해요? 국가가 해야 될 걸 왜 여러분이 해요? 검열은 국가가 하라고 내버려 둬요. ‘무엇을 할 수 있지?’, ‘나는 어디까지 행복할 수 있지?’, ‘난 무엇까지 해 볼 수 있지?’, ‘어디까지 꽃필 수 있지?’ 이것만 생각해도 시간이 없는데, 지금까지 쓸데없는 거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인생을 너무 많이 버렸잖아요. 젊은 시절을요. 사실 지금부터 뭐를 해도 늦을지 몰라요. 그런 고민을 왜 해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제가 너무 비생산적인 것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생산하지 말아요. 인생을 소비합시다. 우리가 소비하면 국가가 싫어해요.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내 인생을 소비하면 그 다음날 직장에 나가 일을 잘 못하죠. 다음날 작전이 있는데 군인 하나가 좋아하는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밤새도록 보고 해롱해롱거려요. 그러니 국가가 싫어하죠. 뭘 아껴요? 자본이나 국가가 쓰지 못하게 자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소비하세요. 물론 이렇게 다 소비하면 자본이나 국가는 여러분을 쓸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까 자꾸 여러분 보고 에너지를 아끼라고 말하죠. 자신들이 쓰려고 말이에요.

 

할게요. 강신주 박사님이 하라고 하시니까요.

 

‘강신주 박사님이 하라면 할게요’, 이거 위험해요. 여러분의 감정을 여러분이 안 지키면 누가 지켜 줄까요?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지켜야만 해요. 그만큼 여러분은 삶의 주인이 될 테니까요. 그게 주인 아닌가요?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거예요. 내가 즐거우면 즐거운 거고요. 내가 불쾌한 건 피해야 되죠. 불쾌한데도 억지로 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죠. 행복한데도 버려야 된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사실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비겁하잖아요. 내 감정을 지키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자신의 감정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는 하죠. 이렇게 비겁한 의식들 때문에 우리는 계속 힘들어지는 거예요.

 

간혹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보죠. “선생님은 그렇게 사시나요?” 저는 쿨하게 이야기해요. “못 살아요.” 제가 사랑을 강의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에 실패하면서 사랑이 어떻게 해야 옳은 건지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에요. 완벽하게 사는 저자가 있다면 왜 글을 쓰겠어요? 삶으로 보여 주면 되는 거죠. 저는 못 해요. 그래서 제가 사실 여러분에게 희망이란 말이에요. ‘잘 살지 못해도 저렇게 옳은 얘기를 해도 되는구나’라는 희망이요. 자신감을 얻으세요. 옳은 건 옳은 거예요. 대신 하나의 단서만 달게요. 옳은 거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는 것처럼만 하지 않으면 돼요. 그냥 못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는 하자고요. 지금 우리가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완벽하게 적용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발버둥이라도 쳐야죠. 그래야 눈감을 때쯤 되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남 눈치 보면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결정했고 후회도 내가 했다.’라고요.

 

저는 프랑수아즈 사강 Francoise Sagan의 얘기를 좋아해요. 사강이 코카인 소지 혐의로 법정에 피고로 갔을 때, 사람들도 변호사도 그랬죠. 작가의 고뇌도 있고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변호사는 사강을 옹호해야 되니까요. 사강의 글은 말랑말랑하고 순정 같은데, 삶 자체는 너무 독하거든요. 그런데 최종 변론에서 사강이 그렇게 얘기해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은 그럴 생각 있나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를 파괴할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안전하게 살았던 대로 사는 거예요. 감당하는 거예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 사람만이 나의 행복을 잡을 수 있는 힘도 있는 거예요. 이런 힘을 가지고 있나요?

 

좋아서 선택을 했는데, 두 달쯤 지나서 참혹한 선택이라는 걸 알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굉장히 힘들죠. 하지만 한 번, 두 번만 힘들어요. 다섯 번, 여섯 번만 하면 여러분의 감각과 여러분의 감정은 더 예리해져서 그런 실수를 안 할 거예요. 어린애라서 한 번도 내 감정을 지켜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실수를 하죠. ‘이건 뭐지? 사랑인가?’ 이럴 수도 있잖아요. ‘이건 사랑이다’라고 평가를 내렸으면 그 길로 가는 거예요. 아니면 접는 거고요. 사랑의 실패를 계속 반복할까요? 반복하지 않아요. 이제는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이 드는지, 나는 어떨 때 제일 행복한지 잘 아니까요. 그리고 어떤 감정에 내가 유혹이 되는지도 알게 되니까요. 그렇게 배우는 거예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건 그런 거예요.

 

어머니가 ‘너 그러다 망가지면 어떡하니?’라고 하면요. ‘엄마, 저는 저를 파괴할 권리가 있어요’ 이렇게 말하세요. 이건 강한 이야기예요.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죠. 내가 파괴하든 내가 말아먹든 내가 행복해지든 내가 감당하겠다는 거니까요. 파괴도 내가 감당하겠다는 거예요. 파괴됐다고 해서 엄마에게 징징거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요, 여러분을 파괴할 권리가 있어요. 어디서 누군가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면요, “안 되는지 알아요. 안 되는 거 해 보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 『강신주의 다상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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