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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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3일 09시 49분 등록

어느 날 쪽지함에서 새로운 쪽지 표시가 반짝였다. 열어 보니 전직장에 다니는 후배가 보낸 것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후배는 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을 애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고객인 산부인과의원 원장님 딸이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커리어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떠올라 쪽지를 보냈다고 했다. 요는 내가 자신의 고객 딸의 커리어 컨설팅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보냈다.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해주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상담실에서 마주한 그녀는 큰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시원한 아가씨였다. 의사 어머니를 두었지만 자신의 밥벌이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참 기특했다. 그녀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3학년까지 중국어를 전공했다. 그러다 미국에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고 외국 생활에 매력을 느껴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 최근 집안에 사정이 있어 귀국했다. 그녀의 나이는 벌써 서른 둘. 미국 병원에서의 근무 경력을 살리자니 한국 병원들의 상황은 미국과 너무 달랐고 신입사원으로 취업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녀는 진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3장의 종이를 나누어주고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1.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 5개를 기술하고 그 순서를 정하라.

2. 자신의 강점과 재능 5가지를 기술하라.

3. 자신의 관심과 흥미 5가지를 기술하라.

 

그녀는 막힘 없이 각 질문의 답을 술술 써내려 갔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온 사람인 듯 했다. 종합적으로 보니 그녀는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또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하며 도움을 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 한인방송국에서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할 정도로 무엇인가를 기획하여 만들어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을 때 이를 조화롭게 해결하면서 보람을 느꼈고 자신의 활동을 문서화하고 정리하는 것도 즐겼다. 하지만 사회적 성취나 금전적 보상을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는 그녀는 나누는 삶을 일구고 싶어했다.

 

나는 그녀에게 경력은 직종과 업종의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종(분야)을 먼저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녀는 의사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인지 헬스케어 산업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녀가 사회복지사로 병원에서 일한 것도 그 영향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직장을 잡는다면 제약회사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제약회사에 어떤 부서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이제 업종은 정했으니 직종(직업)을 정할 차례다. 나는 제약회사의 부서들을 소개했다. 간단히 정리해 보자. 인사팀, 총무팀, 재정팀, 영업팀, 마케팅팀, 홍보팀, 사업개발팀, 영업지원팀(영업사원 교육, 영업효율), 학술팀(임상, 의학정보), 약물등록팀(인허가, 약가, 보험 등), 품질관리팀, 대관팀 등. 나는 각 부서의 업무를 소개하며 관심이 가는 부서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녀는 인사팀, 영업팀, 홍보팀, 영업지원팀(교육업무)을 선택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당신이 뽑은 부서들은 당신의 성향 및 재능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자. 당신이 대학졸업반이라면 나는 제약회사의 영업직에 지원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제약회사에서는 영업을 경험해야 다른 지원부서로의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은 영업을 해도 잘 할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자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할 경우 서른 둘이면 대리급이다. 그런데 당신은 무경력자나 다름없는 경력에 나이가 많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약회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인사, 홍보, 교육 경력직으로 입사하면 된다. 당신의 외국대학의 학사와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니 외국계 업체를 공략하라. 또한 제약회사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하는 헬스케어 전문업체를 찾아라.’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본다. 인사 업무는 크게 둘로 나뉜다. HRM(인적자원관리)은 채용, 평가, 보상, 급여 업무를 의미하며 HRD(인적자원개발)는 주로 교육기획과 교육지원 업무를 말한다. HRM 업무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외국계 HR컨설팅업체를 공략하는 것이 좋다.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업체인 머서나 외국계 서치펌인 콘페리 인터내셔널, 하이드릭앤 스트러글스 등이 있다. HRD를 배우려면 외국계 교육업체를 찾아보자. 한국리더십센터나 카네기연구소 등이 있다. 홍보의 경우 헬스케어 전문 외국계 홍보대행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래시먼 힐러드, 에델만, 맥캔 헬스케어 등이 대표적인 회사다. 이런 회사들은 주로 외국계 제약회사의 관련업무를 대행해 주는 곳으로 이 곳에서 일하다 보면 업무 전문성과 업계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대행업체의 경우 외국계라 하더라도 박봉을 받으며 격무에 시달릴 수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바닥부터 단기간에 일을 제대로 배우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 조급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긴 인생으로 보면 방황과 모색의 시기 또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니 너무 지체하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덧붙였다. 열심히 구하고 찾으면 반드시 길이 보일 것이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길과 연결된 문을 열어줄 조력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름길을 찾아 조금 더 빨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삶에서 어둠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 빛은 더욱 반짝이니 더 수월하게 방향을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빛이 보이면 그 빛을 따라가면 된다. 쉬지 않고 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성실하게 길을 걷다 보면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깨달음은 그 동안의 방황의 이유를 알려줄 것이고 그 때가 바로 라는 퍼즐이 풀리는 순간이다.  

 

나는 그녀가 내가 전해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힌트로 삼아 자신이라는 퍼즐을 신나게 풀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에게서 자신의 길을 찾았노라고 승전보가 전해지길 고대한다.

 

살다 보면 힘든 때가 있다.

인생의 어둠, 그 어둠을 즐겨라.

언젠가 별이 되는 꿈을 가져라.  

언젠가 이 어둠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될 자신을 그려 보라 

비전 없는 곳에서 자신의 빛을 찾으라.

라는 퍼즐을 풀어라.

- 구본형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중에서

 

필자 재키제동은 15년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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