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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6일 10시 31분 등록

 

범해  좋은 사람들 6.

제주 올레 14-1 코스 

 

   오늘은 제주 올레걷기를 처음 시작했던 날들처럼 정직하게, 충실하게 14-1코스를 걸었다. 바닷가가 아닌 내륙으로 들어가서 곳자왈과 오름을 걸었다. 말똥을 밟지 않으려고 얌전하게 걸었다. 제주도의 말들은 참 순하게 생겼다. 색깔 또한 아름답고 윤이 난다. 내륙을 걸을 때는 말 목장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말들의 집을 우리가 침입하는 셈이다.  "말아 안녕, 우리가 좀 지나갈게 !" 말이 웃는다. "그러세요." 그러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참 신기한 말이다. 우리가 나가는 문은 디귿자처럼 만들어 놓은 출입문이다. 말이 나가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차가 14-1 코스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3명의 동행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정보가 많은 듯, 올레보다는 산을 타는 형식으로 루트를 조정했다. 나도 처음엔 14코스를 걸어 협재와 한림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을 따라 가기로 했다. 저지 오름으로 갔다. 보통 오름처럼 민둥 언덕이 아니라 나무가 빽빽했다. 둘레길과 분화구길이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흙길은 아름다웠다. 여자 4명이 나란히 걸었다. 3명은 완도에서 온 학교 선생님들 이었다. 선생님답게 무척 야무졌다. 그리고 간식, 아니 비상식도 야무지게 챙겨왔다. 넉살이 좋은 나는 떡을 한봉지 사서 내놓고 양갱과 견과와 사과를 얻어 먹었다. 칼로리 충만이다. 지루한 시멘트 포장길도 있었다. 초반에 이런 길이 좀 길어서 이 코스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지루하고 싫증나는 고비를 지나고 나니 드디어 올레의 진가 를 발휘하는 길들이 이어졌다. 원시림처럼, 나무가 우거져 있고 바닥엔 이끼 낀 바위와 솔잎이 깔린 폭신폭신한 길이 이어졌다. 즐겁게 일상을 나누며 마냥 걷다보니 차밭이 나오고 오 설록이 나왔다. 선생님들은 밥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미 두 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픈 나머지 전복 피짜, 전복 돈까스 등을 검색하며 점심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는 예전에 차를 타고 다니며 이 곳을  자세히 보았기에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들과 헤어져 남은 올레 14-1을 계속했다. 바닷가와는 달리 내륙은 여자 혼자 걷기엔 좀 무리가 있다. 깊은 원시림 골짜기에 홀홀단신으로 걷는건 간이 좀 커야 가능하다. 나는 오늘 후반부 5킬로는 혼자 걸었다. 저지 곶자왈이다.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라 한다. 마치 영화의 끝장면에 나오던  길처럼 아련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냥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가 간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아무 의식없이 그냥 무감각해지기도 했다 . 그 길에서 노루를 만났다. 노루는 소리나게 뛰어 가더니 뒤돌아서서 나를 바라본다. 이번에도 "노루야,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노루는 마주 바라보며 눈웃음으로 응답했다.

 

 조금 더 걷다보니 좀 웅장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크, 이번엔 곰 이었다. 떡 버티고 앉아서 나를 노려본다. 에그머니나 , 곰은 처음으로 실물을 보는지라 심장이 쫄아 들었다. 책에서 읽었던 바로는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면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이곳 나무들은 키가 작았다. 그럼, 그다음에는 꿀을 주라고 했던가? 머리속으로 휘리릭 온갖 방법들이 다 지나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곰은 생각 속에서 이미 무섭기 때문에 "곰아, 안녕?" 이번엔 이런 인사가 나오지 않았다. 뛰지 않고 그냥 걸었다. 조용히 마치 진짜 사람이 아닌 듯 ,나무 인형처럼 움직였다. 곰이 가만히 있었다. 살짝 뒤돌아 봤다. 아직도 그자리에 그냥 앉아 있다. 순간 곰의 식사시간을 생각해봤다. 오후 3, 곰님은 점심을 드셨을까? 어떤 책에서 배부른 호랑이는 인간을 봐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했다. 우히힛~ 곰은 점심을 이미 먹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곰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무시히 곳자왈 숲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맑은 태양아래 곶자왈 숲속을 걸었더니 몸은 한없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아주 편했다. 노루도 만나고 곰바위도 만나고 그 태고적 숲길을 다 걸어 나오니 정자가 하나 있었다. 마침 아무도 없길래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다리는 난간에 올려 놓은 채로, 오늘은 내 발이 잉어 양식장 위로 흔들거렸다. , 한숨이 나왔다. 먼 길을 걸어와 목적지에 다달았을 때의 그 충족한 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걷기에  지치고  또 지친 발바닥에 대한 공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참, 좋았다. 보기에도 좋았다.

 

  목이 무척 말랐다. 물병에 남은 한모금 까지 다 마셔버렸기에 삼다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사람도 상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집이나 들어가서 "물 호끔 줍서, " 이라고 말할 뻔 했다. 그러나 꾹 참고 묵묵히 걸었다. 배가 고팠다. 어디가서 성게 미역국이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했으나 음식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허기와 갈증을 안고 터덜터덜 걸으니 드디에 신작로가 나왔다. 새로 만든 길? 신작로, 옛스런 말이다. 어쨋든 찻길이 나왔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상점이 없다.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거지? 길을 건너서 차를 탈까 계속 걸을까 고민하다가 앞을 보았더니 웬일로 <무인카페>란 나무팻말이 보인다. 터덜터덜 찾아 들어갔더니 아름답게 가꿔놓은 정원에 음악이 흐르고 냉장고가 있다. 맥주를 꺼냈다. 시원하다, 천국이 따로 없다. 곱게 매어놓은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렸다. 몸이 흔들리자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빈속에 맥주가 쭈루룩 창자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끝내줬다.

 

  여기까지도 좋았다. 흔들흔들 음악은 계속 심금을 울리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어느덧 그 옛날 청춘으로 돌아갔다. 살아온 날들이 휘리릭 지나가며 애틋한 시간들이 되살아났다. 이렇게 좋은 시간엔 절제같은 걸 하지 말고 기분을 따라가야지...하며 한 캔, 또 한 캔 비워나갔다. 어느 순간 눈물이 났다. 내 인생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결혼 생활도 외로움의 극치더니 지금까지 외롭게 혼자 떠도는구나...하는 생각이 나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니 지금도 이렇게 외로우면 이제 점점 더 나쁜 시간들이 닥쳐올텐데 그때는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싶으니 눈물이 조금 더 흘렀다. 게다가 말이 잘 통하던 사람까지 빼앗아 가버리다니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나더니 울음에서 소리가 나왔다. 그래, 어디 한번 실컷 울어보자. 혼자서 크게 울었다. 챙이 넓은 모자는 울기에 좋았다. 그림자가 생기니 우는지 웃는지 다른사람들이 알게뭐람....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 다음에도 한 캔을 더 마셨다. 목이 마르고 외롭게 걸어온 시간에 대해 감회가 너무 컸다. 도대체 술은 입술까지는 너무 맛있는데 빈속에 거푸거푸 마신 술은 속을 다 뒤집어 놓았다. 흔들흔들 세상이 돌고 일어서서 바로 걸으려고 하는데 갈지자로 간다. 어쿠, 한쪽 구석에 가서 마신 술을  도로 다 내놨다. 머리가 아프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음악은 그래도 흐르고 흘러 "그 누가 청춘을~ 어쩌구 저쩌구~"하며 계속 들이댄다. 어디선가 주인이 나타나서 괜찮으세요?” 라고 묻는다. 손을 흔들어 보내버렸다. 조금만 혼자 두어주세요. 그리고 테이블에 엎드려 뻗었다. 말 그대로 뻗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모른다, 술이 조금 깬듯하니 챙피해졌다. 그래서 혼자 밖으로 나갔다. 석양이 빛나고 여전히 사람의 그림자가 없다.

 

  숨을 몇 번 크게 쉬다가 다시 그 집으로 되돌아가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안스러운지 노란 알약을 하나 준다. 빈속에 마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뭘 좀 먹어야 할텐데....하며 걱정을 해준다. 굶기도 외로움처럼 나의 운명인가보다. 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점점 더 청승을 부풀렸다. 이미 쪽은 다 팔렸고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되어 버렸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와서 다시 뻗었다. 결국은 이렇게 또 한사람이 낭만에 초를 쳐 먹고”  그만 뻗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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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 21:43:06 *.37.122.66

제주 여행에서 좌샘을 만날 수 있어서 신기하고 놀라웠지요.

두번째날 탄산온천에서 다시 만나 맥주를 소주잔으로 나눠 먹어 행복했지요.

그런데 노루와 곰을 만나고 허기에 지쳐 무인카페에서 맥주로 속을 달래다

뻗고 말으셨군요^^

이제 다시 생생하게 돌아오셨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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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04:17:06 *.201.99.195

자발적 가난이 멋있는 것 같아서 일일일식을 하다가...그만 골로 갈뻔 했어...ㅋㅋ

 

참, 미나하고 경수네 가족하고 다 만나서 함께 진짜 제주도 돼지를 저녁으로 먹다니 정말 신기했어.

변경연이 변경까지 널리 퍼진거지?

예쁜 민호엄마 만난 것도  민호 안아본 것도 신선하고  신기했어.. 참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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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10:14:40 *.252.144.139

우리 좌샘은 참 낭만적이야.

그런데 정말 조금 외롭고 쓸쓸하긴 하네요.

말이 통하는 사람도 금방 데려가 버리고.

저도 올레길 걷고 싶어요.

남편이랑 아이들이랑 같이 가도록 짬을 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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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8 19:08:22 *.201.99.195

낭만에 초 쳐먹고 , 상황 설명이 없으면 제목이 납득하기 어려운듯 해서 바꿨어. ㅋㅋ

낭만에 대하여는 .....도라지 위스키 한잔하고 말해야징 ㅋㅋ......

 

재키야,  책이 곧 나온다며?   애썼다.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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