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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7일 10시 12분 등록

일본의 운명학자 미즈노 남보쿠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 살 때부터 술과 도박, 싸움에 휘둘리다 열 여덟이 되던 해에는 결국 감옥에 갇혔다. 남보쿠는 감옥에 있으면서 죄수들의 생김새가 성공한 사람들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출옥 후 관상가를 찾아가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 관상가는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니 속히 출가하라고 했다. 남보쿠는 절에 들어가 출가를 청했으나 주지스님은 1년 동안 보리와 흰콩만으로 식사를 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남보쿠는 바닷가에서 짐꾼으로 일하면서 보리와 흰콩만 먹으며 술과 싸움을 멀리했다. 1년 후 죽음을 예언했던 관상가를 찾아간 남보쿠는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흰콩과 보리와 먹으며 식사를 절제한 덕에 큰 음덕을 쌓을 수 있었고 그것이 그를 구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남보쿠는 운명을 공부하기 위해 3년간은 미용사로 일하며 얼굴 모양을 연구하고, 그 후 3년은 목욕탕에서 일하며 사람의 벗은 몸을 연구하고, 마지막 3년은 화장터 인부로 일하며 죽은 사람의 골격을 연구했다. 이렇게 9년간의 연구 끝에 세상에 관상가로 알려지게 되었고 노년에는 저택에 큰 창고만 7동이 될 정도의 큰 부를 쌓았다. 이후 일본 조정에서는 그에게 대일본인이라는 파격적인 칭호를 내렸고 3천 명이 넘는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남보쿠는 상을 볼 때 의심쩍으면 옷을 벗기고 체상과 골격까지 감정하여 백발백중 틀리지 않았고 일부러 거친 음식을 대접하여 어떻게 대응하는지 관찰해 운명을 판단했다.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생김새와 몸짓,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종합해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회사와 구직자간에도 궁합이란 것이 있어 맞는 자리가 있고 맞지 않는 자리가 있으니 중간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이 서로를 제대로 파악해 소개해야 한다. 회사가 원하는 스펙과 인재상, 직무에 적합한 성격과 성향, 그리고 상사와의 궁합이 맞으면 남보쿠처럼 백발백중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예상은 가능하다. 대부분의 채용 절차는 서류 전형을 통해 경력과 전문성이 우수하다 판단되면 직접 만나 함께 일할 수 있는 인재인지를 검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두 명의 후보자 또한 나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다.

 

서류 상으로 만난 황부장은 황홀 그 자체였다. 우리 나라 최고학부의 학사, 석사, 박사학위 소지자로 대기업 연구소와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며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다. 그는 우연한 인연으로 얼마간 모 정당의 부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한 가정의 가장임을 인식하고 다시 구직 전선에 뛰어 들었다. 인터넷 기사에서 찾은 그의 사진은 구세대 엄친아의 표준답게 지적인 중년 남성의 포스를 폴폴 풍겼다. 나는 그를 모 제약회사의 전략기획팀장으로 추천했다. 그 회사는 제약업계를 벗어나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고 싶은 욕심을 가진 열린 곳이었다. 추천한지 얼마 안되어 회사에서도 그의 이력에 큰 관심을 보이며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마침내 인터뷰 룸에서 마주한 그는 예상대로 멋졌다. 수려한 그의 용모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환상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산이 조각났다. 세련된 외모와 달리 그의 말에는 전라도 억양이 묻어났고 비속어까지 섞어 있었다. 더욱이 그의 대답에는 경험과 전문성을 입증할 수 있는 컨텐츠가 없었다. 면접 자리에서 그가 답해야 할 예상 질문들, 예를 들면, 왜 이 직무에 지원했는지, 입사 후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국내외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제약산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고 회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두루뭉실한 대답들을 내놓았다. 그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그가 정말 최고 학부의 박사학위 소지자로 유수의 회사들에서 일해온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인터뷰를 끝내며 나는 그에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각각의 예상질문에 대해서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답변을 준비해 면접에 임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조언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이 예상한 그대로다. 그는 1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스펙은 화려하나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역량있는 전략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조차장은 그 반대였다. 그의 스펙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경기도에 위치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졸업한 그는 작은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그 회사가 유수의 다국적 제약회사에 합병되면서 그의 경력상의 브랜드는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서류상으로 보면 그는 강력한 후보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180도 바뀌었다. 카페에서 만난 그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리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절로 호감이 생겼다. 호감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탄으로 변해갔다. 마케팅 담당자인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제품이 속한 시장의 경쟁구도와 고객들의 성향, 제품의 성공을 위한 요소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원한 회사의 제품에 대해서도 이미 심층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입사를 하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명확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 사람이야말로 그 자리의 적임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그 회사가 인재의 스펙과 비주얼(?)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결과가 궁금한가?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현재 면접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가 스펙을 넘어선 활약을 보여줄 것을.

 

영화 <관상>에 등장하는 천재 관상가 김내경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속을 꿰뚫어보는 재주를 지녔다. 역적의 후손으로 비루하게 살던 그는 자신의 재주로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포부를 품고 상경하여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 끼게 된다. 단종을 지켜내려는 김종서 편에 서게 된 내경은 관상으로 역적을 찾아 내라는 왕명을 받들어 수양대군을 제거하려 고군분투했지만 실패하고 아들까지 잃고 만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그의 독백은 어쩐지 쓸쓸하다. ‘나는 사람의 얼굴만 볼 줄 알았지 시대를 볼 줄 몰랐소. 말하자면 수시로 바뀌는 파도만 본 격이지. 정작 파도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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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가들은 타고난 관상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허영만의 만화 <>의 감수자이자 작중인물인 관상가 신기원은 성형수술을 한다 해도 관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구직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학벌과 경력은 바꿀 수 없다. 학벌을 보강하려 대학원에 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학부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에서 제한된 업무를 담당한 이력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면접 현장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전문성, 직무에 대한 열정과 포부를 적극적으로 어필한다면 당락이 바뀔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관상이 좋지 않다고, 학벌과 경력이 보잘것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김구 선생도 자신의 관상이 천격, 빈격, 흉격인 것을 알고 비관하다가 다음 구절을 보고 용기를 얻어 내적 수양에 힘썼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도 기운 내라. 자신만의 필살기를 갈고 닦는다면 그대도 구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필자 재키제동은 15년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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