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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8일 10시 00분 등록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에는 채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나라 사람인 그는 벼슬 자리를 얻으려고 제후들을 찾아 다니며 유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다 진나라 응후를 찾아가 유세한 끝에 응후의 상객이 되어 진나라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어떤 이야기를 했길래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을까? 둘의 대화를 들어보자.

 

채택이 말하길 역경항룡유회(亢龍有悔-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신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응후가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나도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라고 들었소. 선생께서 다행히 나에게 말씀해 주셨으니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소.” 이에 채택을 저택 안으로 맞아들여 상객으로 대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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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무와 점심을 먹으며 나는 항룡유회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른 성공에 도취된 그는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몰랐다. 지금까지 그랬듯 그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번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그렇게 가다가는 높이 올라간 용처럼 뉘우칠 날이 머지 않을 듯싶었다.

 

송상무는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상무 자리까지 올랐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운 좋게 굴지의 대기업 S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다국적 헬스케어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고 현재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재무 및 인사 총괄 상무로 일하고 있다. 그는 주로 돈을 관리하는 재무 업무를 해왔지만 돈을 벌어들이는영업 및 마케팅 인력과도 긴밀하게 협조하며 일했다. 덕분에 돈 버는 사람들과 말이 통하는 재무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는 요즘 다음 단계를 구상 중이다. 그가 생각하는 카드는 두 가지. 하나는 현재 회사에서 도모할 수 있는 일로, 한국 지사를 벗어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CFO로 도약하는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승부를 걸어보는 일이다. 나머지 하나는 현재 회사를 떠나 조금 더 작은 조직의 CEO로 이동하는 것이다. 재무전문가의 타이틀을 버리고 조직의 최상위 리더로 도약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해당 산업은 성장의 시기를 지나 유지 및 관리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때야 말로 관리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다. 현재 몸 담고 있는 회사는 조직이 크지 않아 외국으로 나가 CFO가 된다고 해도 큰 기회를 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서유럽에 본사를 둔 현 회사에서 아시아 출신의 직원이 요직으로 진출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작은 조직의 CEO로의 이동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향후 4~5년간은 장기 불황의 시대일 것으로 전망되는데 조직이 CEO에게 관리만 요구할 리는 만무하다. 어려운 시기라도 1~2년 후에는 성과를 만들어 내고 조직을 성장시키길 원할 텐데 아무래도 상황이 희망적이지 않다. 잘못하다간 적당히 쓰이다 조직의 논리로 버려지거나, 실패한 CEO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데 손에 든 카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의 요지였다.

 

앞으로 그는 어떻게 될까? 최상무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최상무 역시 이른 나이에 상무의 자리까지 올랐다.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MBA를 마친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특히 외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서 그의 재능은 꽃을 피웠다. 고속 승진을 거듭하던 그는 40대 초반에 대규모 사업부를 총괄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항룡유회라 했던가? 높이 올라간 그에게도 후회의 날들이 다가왔다. 본사의 지시로 사장이 바뀌면서 그는 사장과 불화를 빚었다. 결국 조직을 나와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새로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화려한 부활을 알릴 정도의 자리를 찾다 보니 복귀의 시간은 점점 늦어 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조용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에게 예전의 영화를 돌려줄 자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신영복 교수는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했던 강의를 정리해 강의라는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그는 주역을 논하며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리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한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적당하다는 것이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창조적, 예술적으로 일할 수 있다. 반대로 70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 받는 자리에 있을 경우 부족한 30은 거짓이나 위선,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고 결국은 자기도 파괴되고 자리도 파탄이 난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는 생각이 주역의 사상이다. 그는 또한 『맹자』에서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이란 구절을 강조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첩경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도를 고집하라는 조언이다. 물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자랑하지 않는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채우고 나서야 흐른다. 그렇게 흐르다 보면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진다.

 

나는 송상무가 신영복 교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가 혹시 자신의 능력보다 큰 자리는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욕심이 과해 자신과 조직을 망칠 수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자리가 자신에게 진정 맞는 자리인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조금 더 겸손하게 따져보자. 그리고 자리를 정했으면 흐르는 물의 마음 가짐으로 준비에 임해야 한다. 혹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부족한 것을 어떻게 채울지 생각해 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넓어지고 깊어지면 어느 순간 넓은 바다에 이르러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조급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채택이 송상무를 만났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채택이 그에게 높이 올라간 용 이야기를 꺼냈다면 응후처럼 기꺼이 조언으로 받아들일까? 점심을 마치고 그와 헤어지며 나는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 궁금했다. 부디 그가 신영복 교수처럼 금과옥조 같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후회하는 용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이미지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masson&folder=148&list_id=8597088

 

필자 재키제동은 15년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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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10:39:31 *.124.106.136

새겨두어 기억하고 싶은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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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13:09:46 *.252.144.139

오, 몽필님. 댓글 감사합니다.

닉네임이 참 좋네요. 꿈을 그리는 붓이란 뜻인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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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4:19:06 *.124.106.136

ㅎ 해석이 다양하게 가능한데 본래는 '몽당연필'의 준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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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13:11:02 *.252.144.139

재키제동은 11/1-11/10 아껴두었던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그래서 11/4과 11/11 칼럼은 쉽니다.

휴가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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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16:24:35 *.216.38.13

글이 정말 맛깔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휴가 잘 다녀오세요^^

2주동안 이 맛깔나는 글을 어떻게 기다리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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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18:34:56 *.252.144.139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배님의 맛깔나는 글은 언제 읽을 수 있는건가요?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독자 여기 1인 있음을 기억해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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