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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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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9일 05시 44분 등록

 

온 몸과 영혼을 신께 내맡기는 결단과 실천의 성인

- 성녀 에디트 슈타인, 가톨릭 출판사 2012

 

J에게.

 

J.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가 함께 성가대를 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몰래 비밀 편지도 보내고, 공책의 한 페이지를 쭉 찢어 만든 쪽지도 수시로 교환했던 것 같은데, 이젠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버튼 하나로, 그리고 문자로 안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그래도 편지지에 연필을 곱게 깎아 무슨 내용을 보낼까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채워나가던 그 순수함이 아직도 그립다.

 

얼마 전, 너와 통화하던 중에 신앙서적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했던 적 있지? 오늘은 너에게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기억나니? 너와 내가 함께 다니던 개신교에서 내가 느닷없이 천주교로 개종하겠다고 했던 바로 그날. 너는 내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었지.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내가 천주교 예비자 교리를 받겠다고 했을 때, 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던 그 날 말이야. 내가 오늘 너에게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단다.

 

이후로 너는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고, 네가 학위를 받고 있는 동안 나누었던 몇 번의 국제 통화 중에 유럽 사람들은 가톨릭이 완전히 그들의 생활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했었지. 어느 날, 다급하게 전화를 건 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당시, 너는 바티칸에 여행을 갔는데, 마침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 수녀님을 성인으로 선포한 것을 목격했다며, 그게 무슨 의미이냐고 물어보았지. 그러면서, TV에서 성인으로 추대된 그 수녀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며, 특집 프로그램들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이야기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비싼 국제통화비를 감수하면서까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 성인에 대해서 물어 볼 정도였으니, 정말 커다란 사건이긴 한 것 같구나. 그때는 나도 그 성인이 누구인지 몰라 너의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너에게 그 성인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나는 그 성인이 바로 ‘에디트 슈타인’이라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바로 <성녀 에디트 슈타인>이라는 책을 통해서 말이야. 성인의 반열이 오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름 앞에 ‘성녀’라는 칭호를 붙여. 즉, ‘성녀 에디트 슈타인’이라고 말이야. 너는 유럽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잘 알겠지만, ‘슈타인’ 이라는 이름에서 뭐가 느껴지지 않니? 그래. 그 분은 바로 유대인이셔. 유대인으로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셨고, 가톨릭 성직자가 되셨으며, 나치의 희생양으로 가스실에서 생을 다하셨고, 결국 ‘성인’으로까지 추대 받으신 분이란다. 그분에 관한 서적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거야. 후에 너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기도 하겠지만, 먼저 성녀의 삶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려줄게.

 

성녀께서는 1891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목재상을 하던 유대인 집안에서 막내딸로 태어나셔서 유다교 전통 안에서 성장하셨단다. 그런데 그녀가 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열한 살 되던 해 숙부마저 돌아가시자, 그녀는 유다교 신앙을 과감히 버리는 ‘일탈’을 하기로 하셨단다. 그런데, 그런 ‘일탈’의 이유가 굉장히 비장하단다. 유다교 전통에서 성장한 성녀께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유다교 신앙’에서 찾고자 하였으나, 죽음의 의미를 그 속에서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어.

 

또한 성인께서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14살 때 학업을 중단하기도 하셨단다. 왜 그만두셨을까. ‘삶’과 ‘죽음’의 근원을 파헤치던 성인께 학교 교육마저도 해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지. 이러한 방황은 후에 그녀가 철학자로 성장하는데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고 고백하셔. 하지만 이러한 방황 끝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브레슬라우 대학교 철학부에 진학하게 되셨단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여자가 철학을 전공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근원적 문제를 파고들며 진리를 찾고자 하던 성인에게 있어서 ‘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하셨단다.

 

그러던 중 하느님께서는 성녀 에디트 슈타인께 철학 여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을 경험하도록 이끄신단다. 당시 독일에서 새로운 철학 사조를 형성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에드문드 후설 (Edmund Husserl, 1859-1938)의 저서 <논리학 연구 Logische Untersuchungen>를 접하게 한 것이야.

 

이 ‘우연’은 내면 깊숙한 곳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다. 정신, 관념론, 상대주의 등에 비판적인 세계에서 그녀의 지성은 갑자기 한줄기 빛을 보았다. 한마디 말이 그녀에게 떠올랐으니, 실재, 진리라는 단어를 감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그녀에게 용솟음친 것이다. 에디트는 이 빛을 향하여 영혼을 다해 투신했다. (p.52)

 

이 책을 통해 철학에 대한 새로운 열정에 불타오른 성녀께서는 그 길로 후설이 몸담고 있는 괴팅겐 대학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고, 후설이 제창한 현상학에 전념하며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셨단다. ‘우리는 왜 사는가’, ‘세상 모든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등 끊임없이 밀려오는 의문의 해답을 유다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던 성녀께서는 ‘철학’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고, 그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선입견 없이 파악하는 후설의 현상학에 빠져들었다고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또 다른 ‘죽음’을 마련해 두셨단다. 이미 아버지와 숙부의 죽음으로 오랜 방황을 통해 현상학을 만나게 하셨던 주님께서는, 성녀께 동료의 죽음을 접하게 하신거야.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동료 유대 철학자 아돌프 라이나흐(Adolf Reinach)의 전사 소식을 접한 성녀께서는 그의 부인을 위로하고자 직접 찾아간 일을 마련해 주셨어. 그런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인은 남편의 죽음에 슬퍼하기는커녕 그가 하느님의 품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굳게 믿는 모습을 접하게 된 거야. 이 책의 표현을 빌러 말하자면, 그녀는 ‘위로 받을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불굴의 신앙으로‘ 남편의 친구들에게 힘을 북돋워주었다’고 해.(p.70) 성녀께서 어렸을 적부터 지속적으로 알고자 했던 ‘삶의 의미’는 ‘철학’이 아니라 바로 ‘신앙’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죽음을 통해 체험하게 되셨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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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06.9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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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18:28:03 *.252.144.139

아흑, 선배님!!

칼럼 재개 축하드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써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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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3:08:13 *.216.38.13

개인적으로 일들이 있어 잠시 삶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만큼,

더 깊은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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