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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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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09시 07분 등록

온 몸과 영혼을 신께 내맡기는 결단과 실천의 성인

- 성녀 에디트 슈타인, 가톨릭 출판사 2012

 

(계속)

 

"그 순간 나의 무신론은 무너졌고, 유다이즘은 나의 눈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빛이 내 마음에서 동터 올라왔습니다. 십자가의 신비 안에서 깨닫게 된 그리스도의 광명이었습니다.” (p.71)

 

보고 싶은 친구, J.

 

그런데, 주님께서는 여기서 또 다른 길을 마련해 주셨어. 주님께서는 성녀로 하여금 신을 부정하던 삶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고, 수년간 투신했던 현상학과 결별하는 동시에, 후설 교수의 조교수직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 헤드비히 콘라트-마르티우스(Hedwig Conrad-Martius)의 집에 머물게 이끄셨단다. 이곳에서 우연히 <예수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읽는 길을 마련해 두신거야. 성녀께서는 후설의 <논리학>을 통해 현상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읽고 신앙의 모델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게 되셨던 거야.

 

밤이 끝났다.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도 마지막 장을 넘겼다. 아침이 되자 에디트 슈타인은 지체하지 않고 시내고 나가 소책자로 된 교리책과 미사 전례서를 샀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오래전부터 그녀가 기도로 청한 것을, 그리고 우리가 그녀에게 고대하던 것을 주셨다. 그녀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나의 유일한 기도였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p.88-89)

 

성녀께서 세례성사를 받는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어느 순간 개신교에서 가톨릭 신앙 안으로 들어오게 된 그날을 생각하게 되었다. 너와 함께 다니던 개신교 주일학교를 떠나 홀로 예비자 교리 반에 들어간 그 쓸쓸함을 떠올리며, 에디트 슈타인 성녀와 겹쳐졌다. 절대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임을 난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어. 가족들을 버리고 홀로 가톨릭에 입교하신 것이 얼마나 힘든 선택이라는 것을, 미천한 나의 경험에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단다.

 

가톨릭으로 입교하신 성녀의 마음속에는 온전히 하느님만 계셨단다. 신앙의 참 맛을 본 성녀께서는 1923년부터 8년간 가톨릭계 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며 교육자로, 철학자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되셨던 거야. 그러나 당시 독일은 히틀러 집권 시대로 접어들었지. 독일 나치 정부는 유다인 교수를 해직하고,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자 성녀께서도 교사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어. 가톨릭으로 귀의하시고, 신앙인으로 살았지만, 유다인 출신이라는 게 그 이유였던 거야. 성녀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서로를 증오하는 그리스도인과 유다인, 그리고 유다인을 박해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현실 속에 살게 되었던 거야.

 

서로 화해하고 일치하는 방법을 찾던 성녀께서는 독일에 대한 진정한 용서는 ‘주님의 십자가’밖에 없다고 확신하여, 결국,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하시기로 결정하셨다. 1934년. 성녀께서는 ‘에디트 슈타인’에서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수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어. 수도자의 길을 가시기로 결정 하신 후, 성녀께서는 학문적 재능을 살려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데레사 등 교회 사상가의 영성과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셨다고 하더구나. <성탄의 신비>, <유한한 존재와 영원한 존재>, <교회의 기도> 와 같은 수많은 저작물이 이 시기에 쓰인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 이 한 권만 접할 수 있어. 앞으로 성녀의 박사 졸업 논문을 비롯해, 성직자의 길을 가기 전의 많은 철학서 뿐 아니라, 수녀의 신분으로 저술한 많은 책들도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야. 하지만 결국, 독일의 반(反)유다인 정책이 거세지면서 성녀께서는 결국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단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몇 달 전부터 저는 마태오 복음서의 한 구절을 줄곧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태 10,23; 24, 33-34) (p.187)

 

J. 어렵게 유럽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에 왔지만, 임용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너에게, 나는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진지한 삶의 태도를 들려주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녀의 삶을 우리는 온전히 ‘진리에 대한 헌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유다인으로 성장했던 어린 시절부터 진리에 목말라했던 성녀께서는 세속적 학문, 철학에서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그 속에는 진리의 본질을 찾을 수 없었고, 한때 성녀께서 부인했던 '신앙' 속에 진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신 것을 말이야. 성녀께서는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셨지.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이상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으셨어. 바로 삶 속에서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신 거야. 성녀께서는 ‘온 몸과 영혼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결단과 실천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었어. 이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강한 영성이 아닐까 싶구나.

 

J.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주었단다. 먼저, 성녀께서 읽고 바로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먼저 읽어야겠어. 그리고 이제 성녀에 대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나왔다니까 한번 찾아 볼 생각이야. 그런데, 무엇보다도 개인 신앙 차원에서 기도하고, 내 삶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 참, 널 위해 기도하는 것, 잊지 않을게.

 

J. 유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부당하게 내몰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에 반항하거나 절망하지 않은 성녀의 삶을 한번 상상해 보자.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웠을까?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손길이자 사랑이며 섭리로 받아들인 성녀 에디트 슈타인. 세속적 가치와 욕망은 물론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내 속에서 비워내고 죽음마저 사랑으로 수용한 삶을 만나게 된 이 축복을, 고스란히 너에게 전하고 싶다.

 

안녕! 널 위해 기도한다.

 

2013년 11월,

너에게 예비자 교리 선물을 주고 싶은 친구

재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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