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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3일 13시 15분 등록

모 병원에서 계장으로 일하는 주연씨. 1년 반 넘게 계속되고 있는 야근과 주말 근무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다. 얼마 전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 진단까지 받았다. 사실 그녀만 이런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팀원들 모두 빨라야 9, 늦으면 11시 넘어서 퇴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한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간단히 말하면,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래 주연씨네 팀원은 8명이었다. 하지만 경비 절감을 위해 팀원을 5명으로 줄였다. 반대로 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회계팀의 특성상 타부서의 자료 요청과 평가 및 감사가 많은데 회사 재정이 악화되면서 일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마른 수건 짜듯 일하고 있는 처지. 주연씨는 최근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새벽 1시에 퇴근 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그녀는 아침 7시부터 퇴근할 때까지 어린 아들을 혼자 돌봐주시는 친정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번아웃 직전의 그녀는 남은 힘을 모아 더 버텨야 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직을 희망하는 직장인들의 상당수가 이렇게 일하다간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사실 이들은 워커홀릭은 아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초과 근무를 권하는 사회다. 가정과 개인의 삶을 내팽개치고 회사를 위해 올인하는 이들만이 피라미드의 끝을 향해 내달릴 수 있는 분위기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기업 직원들만 그럴까? 직업의 안정성이 높다는 공무원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 해 4명의 사회복지 공무원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었다. 최근 5년간 사망한 법원공무원은 52명인데 그 중 30% 16명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었다. 정말 야근하다 끝날 수 있는 것이 직장인의 인생이다.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마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롭게 하고 소중한 건강을 잃고 조직의 한 부품으로 소모되고 마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이 글에는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업무량이 물리적으로 많은 경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떼어주어 줄이는 것이다. 인사팀의 김과장은 지난 석 달간 단 하루도 정시퇴근을 한 날이 없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 외국에 있는 파트너와 전화 회의를 하고 주말에도 이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만들었다. 참다 못한 김과장은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새로 채용할 임원 비서에게 자신의 업무 중 일부를 넘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핵심업무인 채용, 급여, 보상, 조직 개발은 본인이 하고 회사 행사 기획이나 총무업무 등은 임원 비서에서 넘기는 것이 그녀의 전략이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임원 비서가 입사하니 그녀는 조금이나마 업무를 덜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팀의 배팀장은 효율적인 제품 홍보를 위해 홍보회사를 지정해 관련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그는 이제 야근에 주말근무로도 부족한 24시간이 조금은 여유로워지길 바라고 있다. 일에 깔려 죽을 것 같다면 조직에 죽는 소리(?)를 해야 한다. 조직은 묵묵히 일하는 사람은 묵묵히(!) 놔둔다. 그러니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야 한다. 충원이 어렵다면 업무를 조정하거나, 외부 업체에 아웃소싱을 하거나, 최소한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자.

 

하지만 조직은 이러한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다. 조직은 어려운 상황에서 헌신적으로 조직을 위해 일하고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직원들을 칭송한다. 그리고 죽는 소리를 하는 직원이 한 둘이 아니니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도 없다. 이런 경우 해야 할 일은 조금은 교활하게(!) 자기 실속을 차리는 것이다. 어차피 일을 줄이기 힘들다면 자신에게 영양가(?) 있는 일 위주로, 그리고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 위주로 업무를 재편하는 것이다. 영업지원팀 박팀장의 경험을 들어보자. 박팀장팀이 맡고 있는 업무는 영업 사원들이 현장에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영업 사원들에게 매출 목표를 나누어 주고 실적을 취합하고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의 핵심업무도 있지만 쓸데없는 잡무들도 많다. 예를 들면 영업 임원들이 하지 못하는 엑셀 작업을 대신 해준다거나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직원 설문조사 같은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박팀장이 마음을 굳게 먹고 칼을 빼 들었다. 팀의 업무를 과감히 태스크 중심으로 나누고 과외 업무에 대해서는 협조가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왜 이제야 이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팀원들도 핵심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예전의 잡무가 하나 둘 넘어오기 시작했다. 팀원들에게 시키기 미안해 박팀장은 새벽까지 자신이 직접 처리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박팀장은 퇴근 후 육아와 집안일을 끝낸 후 집에서 회사 일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버틴 박팀장. 그녀는 이제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박팀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고객은 영업사원들이라고 생각하고 일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든 지금, 자신의 직속 상사를 최우선 고객으로 여기고 일하기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그녀는 직속 상사의 요청은 최단시간 내에 대응하고 모든 업무는 그의 눈높이와 만족도를 기준으로 처리하기로 원칙을 바꿨다. ‘까짓 욕 좀 먹은들 어쩌랴. 내가 죽을 판인데.’ 그녀는 이렇게 되뇐다.

 

요한 페터 에커만은 만년에 접어든 괴테의 조력자이자 동료였다. 1823년부터 1832년까지 약 10년 동안 에커만은 괴테를 1,000번 가량 만났고 그때마다 대화를 기록에 두었다가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양서라고 평한 괴테와의 대화를 펴냈다. 에커만과 괴테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괴테를 사숙하던 에커만은 1823시학논고라는 원고를 괴테에게 보냈다. 이에 에커만의 자질을 알아본 괴테는 에커만을 바이마르로 초청해 자기 옆에 묶어 두었다. 에커만은 괴테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성장했는데 특히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는 세심한 조언을 들었다. 1824 12 3, 에커만의 기록을 살펴보자. 에커만은 영국의 한 잡지사로부터 매월 독일 문학의 최신 작품들에 대한 서평을 보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라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싶다고 괴테에서 말했다. 괴테는 심한 불쾌감이 도는 얼굴로 에커만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제안에 거절 답장을 보내게. 그건 자네의 길이 아니야. 어쨌거나 정력의 분산을 조심하고 힘을 집중하게. 만일 내가 서른 살 이전에 이만큼 현명했더라면 정말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네. (중략) 자신의 힘을 유용한 것에 집중하게. 그리고 자네에게 아무런 결실을 가져다 주지 않거나, 자네에게 맞지 않는 모든 일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게나.”

Goethe_(Stieler_1828).jpg  

나는 괴테와 같은 대문호는 아니지만 커리어 컨설턴트이자 헤드헌터로서 과중한 업무량으로 고생하는 직장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비슷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 

 

더 이상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세요. 쓸데없이 남의 눈치도 보지 마세요. 핵심업무에 집중하여 전문성을 키우고 실속을 챙기세요. 이기적이라 욕 먹어도 괜찮아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리하다가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이도저도 어렵다면 이직 하세요. 욕심을 줄이면 방법이 보입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을 지키세요.

 

필자 재키제동은 16년간의 직장 생활을 기반으로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이자 유수의 기업에 핵심인재를 추천하는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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