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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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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8일 09시 27분 등록

남한산성, 그 해 겨울과 봄

- 김훈의 <남한산성>, 2007

 

기병을 앞세운 청의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의 장병들이 집결한 안주安州1)를 그냥 지나쳐 그들은 다시 청천강을 건넜다. 조정의 신료들이 대동강이 얼었는지를 가늠하는 사이, 적들은 개성에 이르러 임진강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한겨울 대륙에서 몰아치는 북서풍은 그칠 줄 몰랐다. 개성에서 서울, 말로 달리면 고작 하루 길이었다. 대륙의 초원에서 가을동안 살이 오른 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모질게 불어 닥치는 바람 앞에 강물은 흐름을 멈춘 채, 소리죽여 엎드렸다. 그들은 깊숙이 들어왔다. 강화도로 향하던 어가행렬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도성의 수구문을 빠져나간 임금은 송파나루를 건너 남한산성으로 올랐다. 이틀 뒤, 용골태의 병사들도 송파강을 건넜다. 삼전도 들녘에 하얀 눈 먼지가 일었다. 십만 아니 십오만 이라고도 했다. 멀리서는 병사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겁에 질린 두려움은 땅이 흔들리는 소리를 더욱 크게 들었다. 짓밟히고 있었다. 그 해 겨울은 일찍 찾아와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강물은 꼼짝없이 얼어붙었고, 경계는 소리도 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2)

 

<남한산성>을 시작하며, 김훈은 이렇게 역사를 회고했다. 역사는 작가의 손에서 다시 쓰였지만,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은 역사로서 평가될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할만한 것들이 새로 걸러지고, 외면의 풍경이 내면의 상처 속에서 기억을 불러내는 작업이 그의 글쓰기다. 창작이 고통스럽다는 말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늘 외로움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한다. 그 길 위에 김훈은 특유의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로 짙은 허무를 드리운다. 때문에 양지를 지향하는 박물관의 승전보보다는 음지에 웅크린 고통들을 쫓아가는 그의 소설은 아프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성이지만, 지키려는 자들을 가두는 성이기도 했다. 그해 겨울, 이곳 남한산성에는 가야하는 길 위에 갈 수 없는 길이 하나로 포개져 있었다.

 

길은 이어졌다. 1636년 병자년의 겨울, 인조의 어가가 산성으로 올랐던 길은 청량산의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오르막이었다. 산성역에서 십리 길이었다.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드는 길은 막힘이 없었다.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피난길에 황망한 행렬을 맞이했던 남문은 이제 소란스러운 큰길에서 한 발짝 빗겨 서 있다. 아래쪽 산을 뚫어 이은 터널로 지나치는 자동차들은 무심했다. 성안으로 들어서고 처음 만난 로터리에서 길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서남북의 사대문으로 연결되는 성의 중심이다. 성안마을은 사방으로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오목한 분지 위에 앉아 있다. 청량산에 기댄 서문 쪽에서 동문 방향으로 흐르는 개천을 따라 길이 이어졌고, 군사훈련을 주로 하던 연무관 앞에까지 이러저러한 음식점과 상가들이 붙어있다. 주민들이 ‘종로’라고 부르는 이 교차로에는 예전에 산성 안의 시간을 알리던 종이 있었다고 한다. 해가 오후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산성 안의 명암이 엇갈렸다. 임금의 처소였던 행궁은 바로 저만치에서 청량산의 그늘 속으로 이제 막 파묻히고 있었다. 그 해,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상헌은 급한 전갈을 받고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다그쳤다. 송파강에 이르러 해가 저물었다. 강은 얼어서 두어 척의 나룻배는 강가에 묶여 있었다. 청병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소문이 먼저 닿아 있었다. 송파 나루에 사공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라가 망해가는 살얼음판 위에서도 살 길은 있었다. 사공이 강을 건넸다. 지난밤에 임금의 행렬도 그 길을 찾아 강을 건넜었다. 사공은 피난을 떠나지도, 김상헌을 따라 산성에 오르지도 않았다. 청병 또한 얼어붙은 송파강을 건너야 할 것이었다. 사공은 그 길에서 목숨을 연명할 궁리를 찾고자 했지만, 살아서 강을 되돌아갈 수 없었다. 사공의 목이 뒤돌아서던 김상헌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김상헌의 칼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사공이 어찌 자기죽음의 까닭을 짐작했겠는가. 그래도 사공의 몸은 김상헌의 칼을 저항 없이 받았다. 삶에 이유를 묻지 않았듯이 죽음을 맞던 그는 몸부림치지 않았다. 성으로 오르는 눈길 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았다.

 

성안의 시간은 빛과 그림자에 실려 있었다. 아침에는 서장대 뒤쪽 소나무 숲이 밝았고, 저녁에는 동장대 쪽 성벽이 붉었다. 빛들은 차갑고 가벼웠다. 아침에는 소나무 껍질의 고랑 속이 맑아 보였고, 저녁에는 성벽에 낀 얼음이 노을에 번쩍였다. 해가 중천에서 기울기 시작하면 밝음의 자리와 어둠의 자리가 엇갈리면서 북장대 쪽 골짜기에 어둠이 고였다. 행궁 마당에는 생선가시 같은 비질 자국이 선명했고, 저녁의 빛들이 가시 무늬 속에서 사위었다. 오목한 성 안은 시간의 그림자가 자, 축, 인, 묘의 눈금을 따라가다가 하지에 짧아지고 동지에 길어지는 해시계처럼 보였다. 동지 언저리의 그림자는 길었다. 저녁이면 늙은 신료들이 긴 그림자를 끌면서 행궁마당을 지나 처소로 돌아갔다.3)

 

텅 빈 묘당에 말들이 남았다. 말들은 내행전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린 대신들의 등 위에서 부딪혔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길을 말하면, 예조판서 김상헌은 그 길에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 있음을 말했고, 영의정 김류의 말은 시종일관 두리뭉실하고 갈팡질팡했다. 묘당 안에서 늙은 신료들의 말은 살점이 없는 뼈다귀들처럼 부딪치며 울었고, 울다가 부러졌고, 산산조각이 나서 길을 잃곤 했다. 길을 잃어버린 말들이 행궁 아래 마을로 내려오면, 백성들의 입에서 떠돌다가 얼어붙은 성벽에 부딪혀 갈래갈래 찢겼다. 더러는 관리들의 입을 타고 가파른 산등성이에 붙은 성첩으로 오르기도 했다. 서장대 밖 멀리 삼전도에서 불어온 매서운 바람으로 군병들의 몸이 바싹 얼었지만, 메마르고 갈라진 말들은 병졸들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굳게 닫힌 성안에서 바짝 움츠려든 나라의 운명은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말 속에서 진물이 터지고, 고름이 흘렀다. 겨울 산성은 골바람 속에서 유난히 떨었고, 동지를 지낸 겨울밤은 짧아질 줄 몰랐다. 원병은 오지 않았다. 임금은 구원의 발길조차 미치지 못하는 남한산성에 있었다.

 

행궁을 돌아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 제법 가파른 청량산 자락에 붙어 소나무들은 단단히 땅을 움켜쥐고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성첩에 오르자 성벽은 가파른 능선을 따라 산성의 서문까지 굽이졌다. 성루에서는 송파나루가 있었던 삼전도가 원경 속에서 한 눈에 잡혀들었다. 저 땅을 가득 매웠던 청군들의 막사와 창날에 부딪쳐 날카롭게 찔러들던 빛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열을 받듯 겹겹이 줄을 맞춰 도열해 있는 아파트들과 빌딩들의 유리창에서 되돌아오는 빛들로 펼쳐진 풍경은 가슴이 시렸다. 강 건너는 서울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물길은 건너온 길과 건너가지 못하는 길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지만, 그것은 또한 사선의 경계였다. 물길은 역사 속의 송파강으로 흐르지 않았다.

 

인조의 피난행렬이 건넜던 송파나루, 청태종을 엎드려 건넸던 물길은 사라졌다. 지난 1971년 ‘한강공유수면매립사업’이 추진되면서 잠실과 송파 일대의 땅은 뒤집어졌다. 송파강은 매립됐고, 끊긴 물줄기는 두 개의 호수로 남아 ‘석촌호수’로 불리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한강에 ‘뜬섬’이었던 부리도浮里島도 당시에 함께 없어졌는데, 물길의 본류였던 송파강은 섬의 남쪽으로 흘렀고, 섬의 북쪽으로는 여의도 샛강 같은 물길이 이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물길이 사라지고, 땅을 매립한다고 해서 치욕의 역사가 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삼전도비는 마법의 성이 지어진 그 호수공원 어디쯤에서 초라한 역사를 기억하며 세월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서문의 홍예는 좁고 낮았다. 수행을 거느릴 수 없을 만큼 좁았고, 말을 탈 수 없을 만치 낮았다. 새벽 일찍 행궁을 나선 인조의 행렬은 가파른 청량산을 올라 산성의 서문으로 빠졌다. 깃발도 어가도 없었다. 나팔을 부는 취타수도 보이지 않았고, 낮은 울음들이 뒤를 따랐다. 산성의 성벽은 강건했어도,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울음들은 메마르고 가벼웠다. 성에 남겨진 군병들과 백성들은 모두 엎드려 그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임금도 돌아보지 않았다. 강화가 함락되었다고 했다. 함께 떠나보냈던 종묘와 사직도 불에 타고 짓밟혔을 테다. 운명의 길은 급한 내리막이었다. 서문 밖에서 삼전도로 나가는 길은 느리게 그러면서도 질기게 달라붙어 걸음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삼전도에 이르러 조선의 임금은 아홉 단으로 쌓은 청의 황제 앞에 엎드렸다. 엎드려 술을 받고, 세 번을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었다. 세자가 뒤를 따랐다.

 

또 다시 겨울이다. 강을 건너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동북공정4)을 앞세운 청의 후예들이 역사를 다시 쓰려하고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기억이 묻힌 땅을 헤집으며, 그들은 시간과 공간의 영토를 확장해가고 있다. 삼전도비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옛날 송파나루 자리, 석촌 호수 한 모퉁이를 겨우 차지하고 청태종의 단이 높이 쌓였던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다. 거북이 모양으로 조각된 받침 위에 비문은 사람의 키를 훨씬 넘겨서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몸돌은 치욕을 잊으려고 몸부림을 친 듯 바람에 닳았고, 상처를 씻으려 강물에 잠긴 탓에 비에 새겨졌던 글씨는 온전히 알아볼 수 없었다. 돌에는 강물의 흔적이 깊이 배였고, 글을 쓰고 글자를 새겼던 이름들과 함께 오명으로 기억되었다. 비석은 청일전쟁 직후, 청의 힘이 약해지자 강물에 버려졌다가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워졌지만, 1956년 또 다시 땅에 묻혔다. 그런데 1963년 홍수로 모습을 다시 드러내면서, 제101호 사적으로 지정되어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한때 젊은 사학자의 울분에 훼손되기도 했지만, 강에 버리고 땅에 묻히고서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역사였다. 한강의 강물은 이제 삼전도 옛 송파나루에서 비껴 흐르고 있지만, 돌에 새긴 오욕보다 뼈에 새겨진 아픔은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 아니던가. 죽음보다 더 오래 삶이 이어지고, 그 삶 속에 핏줄처럼 흘러가는 것이 역사가 아니던가.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5)

 

봄이 오고 있었다. 어김없이 봄은 다시 오고 있었다. 송파강의 얼음이 녹으면서 강물이 풀렸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 인조는 도성으로 환궁했다. 건너왔던 강들을 건너 제 나라로 돌아가는 청태종과 인질로 끌려가는 세자를 임금은 배웅했다. 목을 맸던 김상헌은 죽지 못했다. 얼음에 갇혔던 강물이 버려진 주검들을 삼켰고, 망가진 달구지들과 화포들이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성안의 대장간 화덕에도 불이 지펴졌다. 임금의 교지를 품고 멀리 삼도를 돌았던 대장장이가 돌아온 것이다. 날쇠는 뒷마당에 묻어 두었던 장독의 똥물을 건져 밭에 뿌렸다. 난리 통에도 똥물은 잘 곰삭아 있었다. 얼음 위로 어가행렬을 건네고, 김상헌의 칼을 맞았던 사공의 주검이 겨우내 하얀 눈을 봉분으로 뒤집어쓰고 있다가 풀린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김상헌의 부탁으로 사공의 딸은 날쇠가 거두었다. 성으로 다시 들어오던 그날, 사공의 딸 나루가 초경을 했다. 먼 상류 쪽에서 강물은 산자락을 돌아서 흘러오고 있었다.

 

‘남한산성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을 그렇게 썼다가 지웠다.

 

    

 

 

 

 

 

 

1) 조선시대 평안북도 병영(兵營)의 소재지(所在地)

2) 김훈, <남한산성> ‘하는 말’ 중에서

3) 김훈, <남한산성> 중에서

4) 東北工程,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해석하여 역사왜곡의 논란을 빚고 있음. (두산백과)

5) 김훈, <남한산성> ‘하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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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0 17:41:06 *.236.10.20

지나는 나무마다 감이 주렁주렁 하더니 니도 감 잡았구나.

떨림을 설렘을 머금은 먹감.^^

 

김훈의 소설이 江이라면,

네 에세이는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같은 것이리라.

겨울과 봄,

그림자와 빛,

건너온 길과 건너가지 못하는 길을 잇는 이정표,

또는 어김없는 시간의 유린을 피해

중년의 도성에 들어선  피난 백성

 

강의 주인은 너

김훈은, 남한산성은 사공이니

그림자가 주인행세를 하기 전에

도륙을 내라

 

네가  겨울 송파강을 건넌 이유는 뭐니

그 이야기를 듣고 잡다

그림자는 되었으니 몸통을 내놔라.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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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0 17:55:16 *.186.58.134

매~롱.. 나 잡아봐라...

나 잡으면 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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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1 07:20:46 *.186.58.134

손목을 내놓았으니, 어디 한번 잡아보아라. ㅎ

그래야 연애가 되지.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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