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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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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5일 18시 48분 등록

아픔만큼 깊은 호수, 파로호

- 오정희의 <파로호>, 1989

 

지난 밤 하늘은 바다를 꿈꾸었다. 새벽이 어둠을 걷어내는 시간, 구름은 파란 하늘 위에 파도의 흔적을 남겼다. 계절이 그리움으로 깊어가고 있다. 여름내 신록의 그림자를 품었던 물빛은 지금, 하늘보다 더 푸른빛이다. 푸르다 못한 빛깔이 진저리가 처질 듯이 퍼렇다. 호수는 바다만큼이나 깊어 보인다. 근원을 향한 그리움, 호수는 지금 가을의 막바지에서 바다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과 어울린 물빛은 마치 붉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막 나들이라도 나설 차림이다. 걸음은 산들에 둘러싸인 호수의 물결만큼이나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혜순은 지금 ‘파로호破虜湖’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평화의 댐 기초공사를 위해 물을 뺀 퇴수지退水地에서 선사시대 문화층이 발견되었다는 지방 신문의 기사와 함께 게재된 흑백사진―바닥을 드러낸 거대한 호수의 황량한 모습, 그 호수 뒤켠의 멀고 흐린 산의 능선―에 몹시 마음이 끌렸다.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이를테면 ‘텅 빈 충만함’이라고나 해야 할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 ‘고대사 규명의 귀중한 자료’라든가 ‘한강 문화 뿌리의 재조명’ ‘국내 최대의 구석기 유적’ 등등 학계와 저널리즘의 관심사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갈증이었다. 1)

 

혜순이 미국 생활에서 겨우 돌아온 것은 지난 늦봄이었다. 혼자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기어이 돌아가겠다던 혜순에게 남편은 그 무슨 재판처럼 6개월을 선고했다. 단순한 ‘부적응증’이라고 하기에는 정도를 넘어선 혜순의 히스테리를 남편은 ‘허위의식’ 때문이라고 짚어 말했다. 낮에는 생선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힘들게 적응해가던 남편이었지만, 마흔을 앞두고 혜순에게 들이닥친 불안과 우울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돌아가서 무엇을 할거냐는 물음에 문득 소설을 쓰겠노라고 뱉어낸 그녀의 대답을 남편은 냉소했다. 왜 그 순간에 하필 그런 말이 터졌나왔는지 스스로도 놀랄 따름이었다. 혜순 또한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먹고 살기 위해 짐승 같은 본능과 불안에 시달려 왔다. 평일에는 시간제 파출부 일을 다녔고, 주말에는 그들을 찾아온 교포들의 술자리 뒤치다꺼리가 힘든 건 분명했지만 그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혜순은 그저 늘 자신을 괴롭히는, 깊은 밑바닥의 꿈틀거리는 그 어떤 존재를 감지할 뿐이었다. 그것은 막연했다.

 

얼핏 작가의 경험담처럼 들린다. 교환교수로 간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2년을 보내고 돌아온 그녀였다. 암울한 80년대가 꺾어지던 중반, 오정희도 힘겹게 마흔을 넘기고 있었다. 당시 교민사회는 광주항쟁이나 한국 정부에 대한 입장 차이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떠나 있으면서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조국처럼 신음했고, 그리움과 외로움이 섞이지 못하고 겉돌았다. 서로를 믿지 못한 사람들이 남도 아닌 사람들을 할퀴면서 아파했다. 입은 있었지만 진실은 없었고, 귀는 열렸어도 사실을 듣지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 머릿속에 끊임없이 들끓던 말들이 화석처럼 굳어갔고, 소통할 수 없는 존재는 단절과 고독 속에서 차츰 소멸되어 갔다. 86년 귀국을 하고서도 그녀는 한 동안 소설을 다시 쓸 수 없었다. 대학시절 자신에게 재능과 광기가 없음을 괴로워했던 시절과는 또 다른 절망의 바닥이었다. 때 마침 화천댐의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파로호’의 ‘그 텅 빈 충만감’, 혼란스럽던 한 시대를 겪어낸 마흔의 성장통, 소설 <파로호>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래서 소설 속에 비친 혜순은 자꾸만 오정희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유달리 이 작품에 애정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텅 빈 호수의 충만감을 따라 가는 길, 혜순의 곁에는 향토사를 연구한다는 남편의 친구가 동행하고 있다. 그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만에 드러낸 호수의 밑바닥에서 돌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에 비하면 혜순은 자신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아직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를 주문처럼 계속해서 묻는다. 혜순은 세월에 닳아버린 풍경의 조각들과 띄엄띄엄 이어지는 기억의 편린들에 이끌리며 시간의 경계를 막힘없이 넘나든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해직된 남편을 따라 낚시를 왔던 7년 전, 지난 4년 동안 진절머리가 나던 미국 생활 그리고 미국에서 막 돌아왔던 지난 늦봄의 시간들이 길 위에 포개져 있다. 때문에 그녀의 뒤를 쫓아가는 독자들은 길을 잃지 않으려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그러나 오정희의 문체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면, 어렵지 않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돌을 찾아 나선 김선생과의 동행,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물을 마셔대던 혜순의 버릇, 지하철 즉석 사진 촬영소에서 찍은 두 가지 표정의 같은 얼굴, 수몰된 집터를 찾은 노인의 손에 들렸던 발아된 목화씨앗, 그리고 혜순이 죽였던 살찐 고양이와 마침내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가 찾게 되는 ‘여인의 얼굴’까지. 작가는 일행보다 파로호를 한 발 앞서가며 구석구석 상징적 장치들을 배치하고, 섬세한 암시들을 숨겨두었다. 그것은 직관을 따라가야 하는 이정표다.

 

길은 구만리 선착장 앞에서 끊겼다. 그 옛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길은 물밑에 잠겨 있다. 뱃길이 호수에 잠긴 옛길 위로 물길을 갈랐지만, 최근에는 수위가 낮아져 배도 운항을 멈추고 있었다. 주말과 공휴일에만 10여명 정원의 작은 배가 하루 한 차례 오갈 뿐이었다. 돌아가야 했다. 막다른 길에 부딪쳤을 때 자기를 속이는 가장 비겁한 방법, 사람들은 흔히 이곳 아닌 저곳,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은 기대를 심어두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에 미래가 있다고 믿는 것이 이런 순간, 얼마나 편한 일이던가. 혜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따라 머나 먼 낯선 땅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었다. 그렇지만 그 땅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 길이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기에 4년은 너무 충분하고도 이미 넘치는 시간이었다.

 

흉흉한 소문들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한국의 근현대 역사는 교포들 사이에서도 이어졌다. 혜순은 몇 해를 두고 끈질기게 떠돌던 소문의 실체를 한 퀘이커교도들이 개최한 인권모임에서 보았다. 화면은 몹시 흔들렸고 사람과 차량의 윤곽을 겨우 구별할 정도였지만 그녀는 남도의 한 도시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목쉰 합창과 짧은 외침들, 횃불의 행렬과 불타는 건물, 어지러운 총소리, 얼굴을 난자당한 시체들 그리고 흰 천으로 덮인 관들 위로 토해지던 오열, 통곡, 비탄과 분노……. 참혹한 장면들은 여러 번을 반복해가며 그녀의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난지도의 쓰레기장 사람들과 도동의 장님촌, 신림동의 달동네, 588 창녀촌과 기지촌 풍경들이 차례로 비쳐졌다. 올림픽이라는 국제 행사를 준비하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외치던 조국의 또 다른 현실이었다. 외면할 수 없었지만, 혜순이 나눠가진 슬픔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유학생 사회에도 프락치가 있었다. 한국 정부의 촉수는 교포 사회 깊숙이 뻗쳐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딱 짚어 말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분명했다. 배가 지난 자리에 물살이 갈리듯 편이 나뉘어, 의견이 부딪치고, 다툼이 일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몰렸고, 드러난 자의 말은 드러내지 않은 자의 음모에 걸려 넘어졌다. 같은 민족의 피도 조상들의 출신성분에 따라 구분 지어져, 하나의 사실도 다르게 해석되곤 했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와 독립군의 후예들의 갈등은 80년대 중반, 머나 먼 이국땅에서조차 되풀이 되고 있었다. 혜순의 집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던 날도 그랬다. 흰 벽에 패대기쳐진 된장찌개며 김칫국물, 카펫 위로 깔린 음식과 깨진 사기그릇들, 엎질러진 술병. 그들이 남기고 돌아간 것들 사이에서 그녀의 자리는 좁고 위태로웠다. 혜순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불안이 아이들을 향한 폭력으로 치달았고, 혼자서도 자주 중얼거리곤 했다. 급기야 옛 주인을 찾아 기어든 늙고, 병든 고양이를 살해하고 말았다. 나무에 매달린 자루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사체가 악취를 풍기고 썩어갔다. 그 숲에서 혜순은 자기 안의 낯선 잔인함과 대면했다.

 

선착장을 뒤돌아 나가는 길에서 얼핏 뭔가 스쳐갔다. 들어올 때 미처 보지 못했던 탑과 전시관이었다. ‘자유수호탑’, ‘파로호 안보전시관’. 그때서야 문득 이 땅의 현실과 호수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일제 강점기 말에 수력발전용으로 지어진 화천댐, 그때 생긴 호수는 봉황처럼 생겼다 해서 ‘대붕호’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화천지구는 38선보다 높고 휴전선보다 아래에 놓여 있었다. 밀고 밀리던 전쟁이 계속되면서, 민가라곤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화천군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 그 와중에 북한강을 거슬러 퇴각하던 중공군 3개 사단이 국군 제6사단에 의해 참패를 당했다. 중공군 1만7천명이 사살되고, 2천명이 포로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승리에 한껏 고무되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내렸다. 호수의 이름 뒤에는 피로 물든 전쟁의 아픔이 새겨져 있었다.

 

분단의 현실이 빚어낸 사생아는 하나 더 있었다. 소설 속에서 ‘바람소리에 섞여 아득히 쿵쿵 폭파음의 반향’을 일으키며 태어난 ‘평화의 댐’. 지금 이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될 이름 역시 아이러니했다.

86년 10월 21일, 임남댐(금강산댐)을 건설하겠다는 북한 측의 발표를 남한 정부는 ‘북한 괴뢰집단의 수공(水攻)의 음모’로 읽었다. 어떤 전문가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겨냥한 테러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서울은 물바다로 변했다. 한강의 모든 교량들이 잠기고 뚜껑만을 남겨놓은 국회의사당과 허리까지 잠긴 63빌딩. 연일 신문과 뉴스에 실리던 충격적인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는 아물어가던 상처를 헤집고, 시간의 저편에서 잊혀져가던 악몽과 두려움을 불러왔다. 곧이어 전국적인 관제데모집회가 앞 다투어 열렸고, 벽돌 한 장, 시멘트 한 삽을 마련하기 위한 국민성금들이 모아졌다. 그해 11월 말, 남한 정부는 서둘러 대응댐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이듬해 2월말 착공식을 가졌다. 세상은 마치 일사 분란한 군사작전처럼 움직였다. 다른 목소리가 존재할 수 없었다.

 

호수 안쪽 깊숙이 들어갈수록 혜순은 카메라 렌즈를 조작할 때처럼 뭔가 불투명하고 불분명한 것들이 분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황폐함과 황량함을 글로 쓸 수 있으리라. 그러나 또한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은 얼마나 오래 전부터의 일인가. 간경변 환자가 간이 굳어감을 느끼듯 혜순은 굳어가는 말들을 느낄 수 있었다. 세쪽이처럼 시조새처럼 화석이 되어버린, 그리고 태어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말들. 2)

 

돌 위에 새겨진 것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단순히 갸름한 흰 돌 위에 새겨진 세 개의 구멍 뿐인 돌은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표정으로 비쳤다. 혜순이 염치 불구하고, 단장에게 다가서며 손을 내밀었다. 혜순은 돌을 손바닥에 얹고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바라보듯 그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 바람이 불어왔다. 물이 빠진 자리를 호수는 바람으로 채웠다. 다시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했다. 호수는 선문답 같은 화두를 던지며,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펜을 들었다.

 

단애의 끝에 호수가 있다. 산을 깎아낸 길 아래, 가파른 벼랑 끝의 호수는 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하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지는 잎들이 깊고 푸른 물 위에 ……

 

빈 원고지를 채워가며 이어지는 작가 오정희의 고백이 잔잔하다.

“시대상황이 이런데도 한 여자의 무력감이나 외로움 같은 걸 써나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귀국해서도 고민이 여전했지요. 어느 날 평화의 댐을 짓기 위해 파로호의 물을 비우자 선사시대의 유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떤 텅 빈 듯한 이미지, 그게 글을 쓰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곧장 여길 찾았지요.”

 

 

 

 

 

 

1) 오정희, <파로호> 중에서

2)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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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9 09:04:49 *.211.91.147

늘 유려한 문장으로 현실을 투영하는 작품을 쓰시는 오정희 선생님이시지만  '파로호'는 아주 선명히 그 주제가 드러났던 작품이었던 듯.   진철씨 바라 보는 시선이 늦가을 정취처럼 깊네요.  건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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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9 17:21:24 *.186.58.134

고맙습니다. 한 주일동안 혼자 집보느라... 적적했는데, 글이 올라오니 반갑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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