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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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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2일 22시 38분 등록

흐르지 않는 섬, 남이섬

- 전상국의 <남이섬>, 2011

 

비자가 발급됐다. 입국수속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나미나라 공화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도장 찍는 소리만큼이나 시원시원했다. 수수료는 섬으로 들어가는 왕복 배편 요금도 포함된 비용이었다. 섬은 대한민국 지도 위에 뿌리박고 있었지만 지난 2006년 3월 엄연히 독립을 선언한 나라였다. 가평과 춘천의 도계를 가르며 북한강이 흘렀다. 비록 총을 멘 군인이나 순찰견 그리고 검문소와 가시달린 철조망은 없었지만, 육지와 섬은 강을 경계삼아 공존했다. 초록색 섬 위에 그려진 초승달과 나침반처럼 보이는 별이 새겨진 깃발은 만국기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평일이어도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성수기 때는 대형버스가 쉰대도 넘게 찾아든다고 했다. 나루터 주변의 식당이며 모텔 그리고 훨씬 넓은 땅을 차지한 주차장이 한류의 후폭풍을 짐작케 했다. 한때 강변가요제가 열리던 유원지는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바람을 탔다. 바다를 건너온 일본인 아줌마 부대들의 습격을 받았던 공화국에 지금은 대만과 중국의 인해전술로 바람 잘 날이 없어보였다. 이따금씩 웨딩포토를 찍으러 온 중국인 신랑신부들이 눈에 띄었고, 간혹 동남아시아에서도 영화촬영차 다녀갔다. 배가 선창으로 다가오자 삼삼오오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부산하게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나루터에서 뒷걸음질을 치던 배가 역한 기름 냄새를 품었다. 방향을 트는가 싶더니 속도가 붙자 바람이 물살을 갈랐다. 섬은 천천히 다가왔다. 추억이 많은 섬이었다. 수도권에서 다녀가기에 적당한 하루거리였지만, 일찍 떠나버리던 막배 때문에 섬은 젊은 청춘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꿈같던 하루 이틀이 아예 지루한 한평생으로 연장될 줄 생각이나 했을까. 뱃전에 나란히 기대선 젊은 남녀의 뒷모습에서 혹시나 싶을 그네 부모들의 추억을 훔쳐내자니 멋쩍은 웃음이 흘렀다. 옆에 섰던 여자의 허겁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건 그때였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쫓아가던 시선이 반쯤 물에 잠긴 여자에게 닿았다. 긴 머리를 가진 여자는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섬으로 다가서는 배를 응시하고 있었다. 놀라는 기척도 없었다. 순간, 번뜩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소문으로 들었던 나미?

 

섬의 서북쪽, 경기도 가평 사람 김덕만 씨의 나미에 대한 추억담은 좀 거칠다.

“내가 징역 살고 나온 쌍팔 년까지도 그 기집이 거기 그대로 살고 있었디야.”

쌍팔 년은 단기 4288년, 서기로 1955년 그때까지도 그네가 남이섬에 살고 있었다는 증언의 신빙성은 높다. 그러나 그는 나를 처음 만난 20년 전에도 여전히 섬 주변에서 나미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엊그제 비가 많이 왔어야. 그날두 기집이 그 빗속에 서 있더라니까.”

이런 황당한 주장과 달리 남이섬 동쪽, 춘천 땅 방하리 사람 이상호 씨는 다소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지요. 물고기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 원래 그랬으니까요.”

맹신의 무지가 그러쥐고 있는 집착은 끈질겼다.

“아무튼 나미가 섬을 떠나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 여기 말고 다른 데선 도저히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니까요.”1)

 

남이섬에 난데없이 미친년 소동이라니…….

다분히 악의마저 의심되는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한 때 <감자바위>라는 지방 월간지 기자로 칼럼을 쓰기도 했던 ‘나’는 북한강 강섬들에 관한 원고청탁을 받자마자, 2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칼럼은 주로 별난 삶을 사는 괴짜 인생들을 담고 있었다. 토종벌을 50통이나 치고 사는 장님이라든가 30년간 물가에서 낚시만 하고 사는 사람이나 아내가 죽자 장모와 정식으로 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사는 그런 엽기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다루어졌다. 그때 누군가의 제보로 만난 사람들이 바로 김덕만 씨와 이상호 씨였다. 남이섬에 살았다는 ‘나미’라고 불리던 여자(?)에 관한 이야기도 그들에게서 들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그것을 여자라고 믿었다.

 

2011년 5월, 전상국은 중편소설 <남이섬>을 세상에 내놓았다. 등단한 지 48년 만에 엮어낸 열 번째 소설집의 표제소설이기도 한 <남이섬>은 본래 그의 관심사인 ‘전쟁과 분단, 그리고 근원을 잃어버린 삶들의 그리움’을 찾아 돌아온 걸음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잡지사 기자로 등장하는 ‘나’는 전생에 무슨 빚이라도 진 사람처럼 ‘나미’에게 끌려 다니며, 시·공간의 경계를 오간다. 춘천 인근의 강섬인 ‘고슴도치섬’을 지키며, 카페를 운영하는 후배와 그 후배의 마음을 홀린 어떤 여자에 관한 현재는 ‘남이섬’에서 죽을 뻔 했던 두 노인과 그들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나미의 과거와 함께 전개된다. 두 개의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중심을 가진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린 듯하다 겉돌기를 반복하는데, 북한강 위에 뜬 강섬들이 공간적 중심이다. 그리고 존재의 실체가 의심되는 나미와 그것의 환생 같은 ‘어떤 여자’가 묘하게 겹쳐져 있다. 전상국 작가의 키워드인 ‘전쟁의 상처와 치유’는 이 소설에서도 이어지는데, 바로 험한 시절을 살아냈던 두 노인과 나미, 그리고 남이섬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말들이 제각각이어서 나미의 존재는 뿌연 물안개에 가려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가을은 한 걸음 먼저 닿아 있었다. 욕심 많은 은행나무에 붙잡혀 있던 햇볕이 사람들의 소란에 힘없이 부서져 내렸고, 녹음이 짙던 메타세콰이어 길도 해성해져 쉽게 바람이 지났다. 섬의 곳곳으로 연결된 길 위에서 계절은 풍요의 허위로 위장했던 나무들을 벗겨내고 있었다. 불붙은 단풍나무에서 계절이 마지막 남은 시간을 사르고 있을 때, 사람들의 발길은 추억을 더듬거나 새로운 길을 내며 걸었다. ‘섬을 찾기에 어느 때가 가장 좋냐.’는 물음은 우문이었다. 남이섬은 지금이 딱 좋았다. 고혹한 풍경에 파전과 막걸리가 어울릴지 몰랐지만, 시각은 후각만큼 본능적이지 못했다. 뭔가를 찾아 막연하던 걸음은 냄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테이블이 마련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식탁을 행주로 훔치던 심통 아줌마가 껴들었다.

“괴물이 아니구, 귀신이어유. 내가 열여섯에 홍천 내면서 저 건너 방하리루 시집을 오니까 모두들 그러데유. 남이섬하구 중국섬2)에서 전쟁 때 사람들이 엄청 죽었다구. 비 오는 날이나 안개 낀 날은 나두 귀신 우는 소릴 여러 번 들은걸유. 우리 시아버이두 스물셋 나이에 중국섬에서 죽었다는데, 그 제삿날이면 제사상을 방하리 물가에 차려놓고 지내데유.” 3)

 

1950년 7월 18일, 그날 밤도 그랬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인공치하였던 그 시절, 강 건너 춘천 방하리 일대의 반공 산악대가 섬을 습격한 일이 있었다. 섬에는 집이 겨우 세 채뿐이었고, 밤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섬의 둘레로 갈대가 숲을 이루어 거의 무인도나 다름없었다고 했다.4) 그런데도 굳이 섬이 공격당한 이유는 섬에 살던 진 군수라 불리던 사람이 북에 연고를 가진 이였고, 세상이 뒤집히자 근방의 빨갱이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섬이 그들의 소굴로 여겨진 탓이었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전선을 따라 빨갱이들이 죽고 반동들이 몰살당했다. 그러나 실상은 강 건너 방하리 사람이 가평마을 사람을 쏘았고, 다시 이화리 사람들이 방하리 쪽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나중에는 낙동강 전선에서 밀린 인민군들의 시신과 유엔군의 폭격에 불탄 중공군들의 주검들이 뒤섞여 떠내려 왔다. 얼굴도 없는 시신들은 자라섬에도 걸리고 남이섬에서도 보였다. 청평댐이 북한강을 막아선 언저리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흐르지 않는 강물에 머물던 죽음들이 부패해가던 섬의 몰골은 참혹했다.

 

붕어섬, 고슴도치섬, 중도, 자라섬 그리고 남이섬. 북한강에는 유난히 섬들이 많았다. 섬들은 저마다 생긴 모양대로 불리기도 하고, 나름의 사연을 지닌 이름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섬들이 생겨난 배경에는 댐들이 한 몫을 했다. 40년대 일제 강점기에는 청평댐과 화천댐이 강물을 막아섰고, 60~70년대 국토개발이 한창이던 때는 의암댐과 춘천댐, 소양강댐이 세워졌다. 그리고 상류로 더 거슬러 올라가 ‘평화의 댐’과 흔히 금강산댐으로 알려진 ‘임남댐’이 80년대에 지어졌다. 댐이 들어서면서 풍경들은 새롭게 빚어졌다. 골짜기의 산허리까지 잠긴 호수들은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떠올렸고, 계절이 바뀔 적마다 물안개를 짙게 피워 올리곤 했다. 강이 품은 섬들은 마치 흐름을 멈춘 듯 안개 속에서 잊혀졌다가도 돌연 실체를 드러내며, 갖가지 상상과 이야기들을 불러내곤 했다. 남이섬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남이섬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비단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는 논란 때문도, 눈길을 사로잡던 영화 속 겨울연인들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은 집요하게 ‘나미’의 존재를 쫓아가며 물고 늘어진다.

 

도대체 ‘나미’는 누구일까. 김덕만 씨와 이상호 씨의 주장대로 발가벗은 여인일까. 한 사람은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 발정난 암캐… 천년 묵은 구미호 같다고 했고, 또 한사람은 대체로 맑은 날씨…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절반은 인어의 몸을 가졌다고 기억했다. 그렇게 덮어두고 믿어버리기엔 서로의 진술은 너무 달랐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의 말처럼 ‘신이 내리다 말아 반쯤 미쳐버린 여자’나 식당 아주머니의 말처럼 ‘귀신’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수달이나 잉어를 그렇게 착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멱살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실체에 대한 궁금증은 그저 허상일 수도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의 실마리에 ‘존재를 찾아가는 열쇠’ 하나를 숨겨두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시간은 거슬러 간다. 한국전쟁과 남이섬이라는 역사의 같은 시공간에 묶여 있으면서, 서로 다른 쪽의 편에 서 있던 덕만 씨와 상호 씨. 둘은 모두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서 가까스로 ‘나미’에 의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기억을 되씹고, 하루 왼 종일을 섬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장수고개에서 보내기도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난 사람에게 남겨진 당연한 후유증이었다. 제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세월, 혼자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고통은 치유가 불가피했다. 강은, 그리고 수몰의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은 섬은, 자신들의 운명과 일치하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강물은 시간이고 역사이며, 치유자로서 함께 했다. 실체는 존재보다 중요하지 않다. 강물이 댐에 막혀 흐름을 멈추었듯이 두 노인들도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순간 각기 다른 실체들은 하나의 본질 앞에 놓이게 된다. 닮은 것이 또 다른 닮은 것을 찾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의 본능이다. 살기위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 합일의 순간에 시간과 공간의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삶은 자신과 닮은 삶을 보듬어 끌어안고 몸부림칠 따름이다. 작가는 굳이 말의 힘을 빌지 않고서도, 북한강과 남이섬 그리고 안개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던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를 꿰뚫어 내고 말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빚을 덜어낸 것처럼 홀가분해졌다. 하룻밤을 묵은 섬의 아침풍경은 지난밤과는 달리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고슴도치 섬에서 열리기로 한 음악회는 취소되었다. 소식을 전하는 후배의 목소리는 맥이 풀려 있었다. 섬은 어느 돈 많은 사람에게 팔렸단다. 그리고…… 후배의 마음을 훔쳤던 그녀, 다소 애매한 죽음이었다. 그것은 소문 속의 ‘나미’처럼 인과관계가 모호했지만, 글을 쓰는 ‘나’는 여인의 죽음이 두 노인의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고 직감했다. 죽음과 함께 고통도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뱃전에서 나누는 ‘천박남’과 ‘경박녀’의 대화 속에서 섬은 너무 쉽고 가볍다. 그리고 섬을 빠져 나오는 ‘나’의 뒷전에 떠 있는 섬은 여전히 무겁다. 그 섬 뒤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섬이 하나 가라앉고 있었다. 섬을 들어오면서 봤던 여인의 그림자도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1) 전상국, <남이섬> 중에서

2) 현재 자라섬의 옛 이름. 해방 전까지 중국 사람들이 들어와 농사를 지었다고 함.

3) 전상국, <남이섬> 중에서

4) 가평향토문화추진협의회, <가평반공투쟁사> 78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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