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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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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22시 36분 등록

청계천 사람들

- 박태원의 <천변풍경>, 1936

 

비로소 숨이 트일 듯싶다. 지하철 계단을 굽어 돌면서 하늘이 비쳤다. 빼곡하게 들어찬 빌딩 사이에 갇힌 하늘이었지만, 세상으로 나서는 계단 끝에서는 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바람을 타고 몰려드는 매미소리는 한참 계절을 몰아가고 있었다. 마치 죽은 것과 산 것이 맞부딪쳐 백병전이라도 벌이듯 자동차와 매미 소리가 뒤엉킨 도시의 소란은 한동안 더 숨통을 조여 왔다. 아스팔트 위에서 달궈진 공기는 아직 후덥지근했지만,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찾아든 하늘빛은 맑았다. 한 계절을 넘기며 초록이 깊어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따라 광교 쪽으로 나서자, 이내 청계천이다. 무수한 발길들이 물을 건너고, 무심한 물길은 빌딩숲 그늘에서 더 깊고 좁은 수로를 따라 가로질렀다. 다리 아래에서 물은 스스로 흐른다기보다 반듯한 길을 따라 흘려보내지고 있었다.

 

가운데 다방골 안에 자택을 가지고 있는 그는, 바로 지척 사이인 광교 모퉁이 큰길거리에서 포목전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침에 점에 나왔다가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신사는, 언제고, 골목에서 나와 배다리를 지나 북쪽 천변을 광교에까지 이르는 노차를 택하였다. 까닭에, 광교와 배다리 사이 북쪽 천변에 있는 이발소 창으로, 소년은 언제든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조석으로 대한다. 그리고 대할 때마다 은근한 기쁨을 갖는다. ……

소년의 관찰에 의하면, 그의 중산모는 그의 머리 둘레에 비하여 크도 작도 않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신사는, 결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깊이 쓰는 일이 없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그것을 머리 위에 사뿐 얹어놓은 채 걸어 다녔다. 어느 때고 갑자기 바람이라도 세차게 분다면, …… 1)

 

이발소 소년, 재봉은 손님들의 담배심부름이나 잔돈을 바꿔 오는 허드렛일로 하루를 보낸다. 틈만 나면 창밖을 내다보며 천변을 오가는 행인들에게 눈길을 팔고 있다. 한 귀로는 손님들이 주고받는 잡담들을 주어 들으며, 눈길은 이제 막 제방 위로 올라선 거지 둘째대장의 행보를 가늠해보거나 방금처럼 포목전 주인의 찰리 채플린 모자가 바람에 날리기를 소망하는 재미로 지낸다. 깍정이2)들은 광교 다리 아래 모여 지냈고, 그 아래쪽 빨래터에서는 점룡이 어머니를 끼고 동네 아낙네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잘 닦아놓은 유리창은 개천 건너 한약국 사랑방까지 다 들여다보여 나들이를 나가는 그 집 젊은 아들내외의 표정이며, 드나드는 손님들의 옷차림까지도 살필 수가 있었다. 귀돌어멈이 배다리 근처 반찬가게로 나서는 저녁나절 즈음이면, 전매국3) 공장도 파하여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처녀들 걸음이 겹쳐진다. 종로가 가깝다고는 하지만 한 물 간 술집인 평화카페에 불이 켜지면, 더러 요란한 방울소리를 내며 어느 잔치에 불려가는 기생을 태운 인력거가 지나는 풍경, 그렇다. 지금은 1930년대 서울, 이곳은 청계천이다.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는 그때 그 시절, 청계천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계천을 끼고 이발소와 빨래터, 카페, 한약국 그리고 신발가게와 여관, 담배 가게와 술집들이 엉겨있고 일상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간들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이야기들을 엮어간다. 딱히 드러나는 주인공은 없지만, 청계천의 풍경은 이발소 소년 재봉이와 빨래터에서 제법 목소리가 큰 점룡이 어머니 그리고 이따금씩 끼어드는 서술자에 의해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던 서울살이 그러나 여기 모여든 사람들은 그 시절의 주류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이자 금광의 열풍이 불던 시절이고, 최초의 백화점이라 알려진 화신상회가 멀지 않고, 무성영화와 서부활극을 상영하는 우민관이 가까이 있지만 소설 속 청계천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흐름들로부터 다소 멀리 떨어져 있다. 서울 말씨와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 마작 노름판에서 쓰이는 은어들과 술집 여급들의 일본이름들이나 욕지거리들이 마구 뒤섞인 <천변풍경>은 근대화가 시작되던 시절, 서울이란 도시의 밑바닥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달픈 삶과 비루한 욕망이 뒤엉킨 도시의 한 가운데를 ‘시커먼 똥물이 뚝뚝 떨어지던’ 개천, 청계천이 흘러가고 있다.

 

물은 맑았다. 청계광장 끝에서 작은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는 물은 보기에도 후련했다. 예닐곱 개 남짓한 징검돌 사이를 지난 물살이 세찬 바람소리를 내며 흐르고, 예쁘게 앉힌 자연석들 사이에서 키 작은 버드나무들은 적당히 어울렸다. 제법 무릎만큼이나 깊은 물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가장자리로 떼를 지은 물고기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스커피 대롱을 입에 물고, 발을 담근 젊은 커플의 눈길이 언제까지나 정겨울 것만 같다.

복원된 청계천은 하늘 높이 솟은 주변 빌딩들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때 콘크리트로 덮였던 하수구였다는 과거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니 더 멀리 빈민촌 판자집들로 둘러싸여있던 흑백사진의 모습은 다 잊혀진 듯이 눈앞의 청계천은 세련되고 깔끔하다. 2003년 7월에 시작해 2005년 9월까지, 27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복원된 공사 때문이었다. 지금의 청계광장이 있는 태평로에서부터 신답철교까지 5.8km 구간의 청계고가도로와 삼일고가도로가 차례로 뜯기고, 하천을 덮었던 콘크리트 구조물들도 마저 헐렸다. 물은 지하수와 한강 물을 품어 올려 하루 4만 톤을 흘렸다. 물길이 다시 열리면서 스물두개의 다리가 이름을 되찾거나 새로 얻었다. 광교는 예전에 있던 자리에서 약간 상류 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수표교는 숱한 논란 끝에도 여전히 장충단 공원에 그대로 남겨진 채 공사는 마무리됐다. 3천8백억쯤 되는 공사비는 그렇다 치고 유지관리비용이 연간 80억 이상이 든다고 했다. 물을 끌어오는 전기세만도 한 해 18억 원이다. 서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여느 지방도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다.

 

서울시가 청계천의 생태계가 복원되었다고 발표한 것은 2010년이었다. 공사 직전이었던 2003년에 4종에 불과했던 물고기는 복원 후 이듬해인 2006년에 23종이었다가 2009년에는 29종으로 늘었다. 누가 보아도 확연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특히 조사된 물고기 중에는 오염에 약해서 맑은 물에만 살 수 있다는 갈겨니와 참갈겨니4) 같은 어류도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가히 ‘기적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청계천은 평범한 도시 하천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을 흐르는 물길이었다. 서울시 관계자 또한 이러한 결과에 한껏 고무되었고, 이미 새롭게 변화한 청계천을 다녀간 수많은 인파들의 입소문과 국내외 언론들의 찬사 속에서 ‘복개천의 복원성공’은 하나의 성공신화로 거듭나게 되었다. ‘청계천 효과’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는 아예 자신의 호도 ‘청계淸溪’라고 지어 부르며,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대통령에 오른 그는 청계천의 성공을 전국의 4대강으로 확대시키려는 꿈을 소명으로 믿었다.

 

그런데 일은 이상하게 뒤틀렸다. 어느 인터넷 신문의 기자이면서 처음부터 그런 신화를 믿지 않았던 최병성 목사의 끈질긴 취재와 환경운동연합의 조사로 가히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한강에서 중랑천을 통해 청계천으로 거슬러 왔다던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의 조사결과, 갈겨니는 섬진강 수계에서 서식하는 어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몇 해 전부터 서울시가 물고기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방류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5) 스스로 방류행사를 홍보했던 서울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풀어준 것’일지 모르겠다는 모호한 발뺌을 했다가 결국 여러 방송매체에 의해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서울시의 발표사실은 거짓이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그것은 청계천 또한 도시하천이라는 점이다. 도시하천은 일반 자연 상태의 여느 하천과는 다른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도시하천에서 가장 우점하는 종은 ‘사람’이다. 그들은 최상위의 먹이사슬에 위치해 있기도 하지만, 개체 수에 관계없이 하천환경을 단숨에 뒤집어엎을 수 있고, 물고기들을 떼죽음을 시킬 수도 있었다. 비단 청계천만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도시의 강과 하천들의 지난 역사가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강과 하천을 새롭게 복원한다는 것의 의미는 ‘강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어야 했다. 지나온 청계천의 풍경을 다시 되돌아보는 일은 그런 노력 속에서 올곧이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아직 그 속에 담겨있다. 풍경 속 ‘청계천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거에 흘러간 소설 속 인물들이 아니다. ‘땀 냄새 가득하던 거리에서 덮쳐오던 가난의 풍경과 칠흑 같았던 밤,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조차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질기고 위대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던6)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의 삶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2003년 복원사업이 시작될 때, 청계천 상인들은 기대보다 우려를 해야 했다. 48년의 세월 위에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뿌리박은 상권이 복원사업과 함께 무너지게 될 것을 걱정했었다. 집회가 시위로 이어졌고, 수습에 나섰던 서울시는 대체상가로의 분양을 약속했었다. 상인들의 양보를 얻어낸 철거 사업은 급물살을 타고 추진되었지만, 뿌리 뽑힌 청계천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떠돌고 있다. 예상치의 7~8배를 웃도는 높은 ‘분양가’와 청계천 상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가든 파이브’는 신청을 해놓고도 감히 입주할 엄두를 낼 수 있는 터전이 아니었다. ‘여인숙 잠을 자던 사람들에게 호텔에서 자라면 잠이 오겠냐’는 상인들의 한탄 속에 상가는 개장을 해놓고도 여전히 스산한 바람을 맞고 있다. 어렵게 입주한 상인들도 장사가 안 되어, 밀린 임대료 때문에 다시 쫓겨나고 있는 판이었다. 아직 청계천 근처에 남아 있는 이들의 속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창 시절 매상과 비교해볼 때 겨우 20퍼센트 정도 수준이라고들 입을 모으고 있다. 시장 경기가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이 복원되지 않고서, 도시하천의 생태계가 청계천이 복원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면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과거의 공공정책과 무엇이 다를까. 그것이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왜 청계천을 복원하려고 했던 것일까.

뭐가 달라도 다른 청계천의 삶을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순진한 바람일까. 작고하신 원로작가 박경리7)의 목소리도 함께 묻히고 마는 걸까. 다행히도 청계천의 복원을 새롭게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어느 날, 그는 개천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난데없이 “아하하하” 웃고 떠드는 소리에 놀라,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개천 속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등 뒤에 …… 그렇게도 그가 벼르고 기다리던 포목전 주인의 중산모가 끝끝내 바람에 날아 떨어진 것이다. 그 불운한 중산모는 하필 고르디 골라, 새벽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막 풀린 개천물 속에 빠졌다.

상판대기에 불에다 덴 자국이 있는 깍정이 놈이 다리 밑에서 뛰어나와 얼른 건졌으나, 시커먼 똥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코에 다 갖다 대보지 않더라도 우선 냄새가 대단할 듯싶다.

포목전 주인은 잠깐 망살거리는 모양이었으나, 마침내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그 사이에 모여든 구경꾼들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에 얼굴을 붉히고, 다음에 손상된 위신을 회복하려고 엄숙한 표정으로, 연래 애용해오던 모자를 개천 속에 남겨둔 채, 큰기침과 함께, 그는 그 자리를 떠나 자택으로 향하였다.8)

 

높은 빌딩들 틈에서 더 깊어진 물길 위로 햇살이 겨우 비쳐들었다. 삭막한 회색의 군집, 그 좁은 틈 사이로 이어지는 바람을 쫓아 계절이 바뀌고 있다. 처서를 앞둔 바람 끝에서 가을 냄새가 희미하다.

 

 

 

 

 

 

 

1) 박태원, <천변풍경>중에서

2) 거지 또는 되먹지 못한 비열한 사람을 일컫는 말

3) 일제강점기 조선에 설치된 조선총독부 소속의 관청. 담배, 소금, 인삼, 아편, 마약(모르핀)류의 전매 사무를 관장하였다. (위키백과사전)

4) ‘갈겨니’와 ‘참갈겨니’는 모양새와 서식지가 확연히 달라 논란이 있어오다가, 2005년 가을 한국어류학회에서 별개의 종으로 구분키로 학자들 간의 의견이 모아짐.

5) 최병성, 4대강서 반복될 청계천 복원신화의 실체, 오마이뉴스, 2010.5.23

6) 천지인 1집 <청계천 8가>

7) 박경리 작가는 이명박 서울시장당선자에게 청계천 복원을 제안했었으나, 사업의 추진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8) 박태원, <천변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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