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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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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7일 07시 53분 등록

잊혀가는 물길, 난지도 샛江

- 이정환 <샛江>, 1976

 

“좀 오래된 책이네요. 많이 기다리셨죠?”

“아뇨. 네, 76년에 발표된 소설이니, 40년이 좀 못되긴 했죠.”

얼떨결에 뛰쳐나간 대답을 얼버무리는 사이, 젊은 사서는 두 권의 책을 올려놓았다. 묵은 책에서 쾌쾌한 냄새가 묻어왔다. 표지는 얼핏 보기에도 낡았다.

‘李貞桓 長篇小說 샛江(上)… 創作과批評社’

궁서체의 한자가 섞인 제목하며, 큼지막한 글씨들이 유행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세월의 거리를 가늠케 했다. 바랜 올리브색으로 테를 두른 표지에는 산비탈에 달라붙은 달동네와 강물 그리고 다리가 멀찌감치 판화로 새겨져 있다.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제2열람실에 있더군요.”

“제2열람실요?”

“소장도서가 10만권이 넘다보니, 모두 전시할 수도 없고, 매주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형편이어서……. 낡은 책들은 따로 보관합니다. 이해해주세요.”

바코드를 찍는 젊은 사서의 뒤에서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직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말이 열람실이지 개방되는 공간은 아니었다. 오래된 책이나 잘 찾지 않는 책들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절차를 거쳐 폐기한다고 했다.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책들에겐 일종의 호스피스 병동 같은 서고였다.

 

‘샛강’의 의미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체로 ‘강의 본류로 흘러드는 비교적 적은 강’ 즉, ‘지류支流’나 ‘지천支川’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큰 강줄기에서 갈라져 나와 중간에 섬을 이루다가 아래쪽에서 다시 본류로 흘러드는 강’이다. 말의 의미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변화에는 90년대 어느 언론사가 앞장섰던 ‘샛강살리기’ 캠페인이 한 몫을 했으리라고 본다. 이정환의 소설 <샛江>도 비슷한 처지인 듯싶다. 1976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발표할 당시만도 문단의 관심을 모았던 화제작이었다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도 그럴듯한 작품해설이나 서평도 달려 있지 않다. 그의 소설은 웬만한 도서관에서도 찾기 힘들고, 출판사에서도 절판 된지 오래다. 세월과 함께 묻혀가는 것이다. 난지도 샛강 언저리에 모여 살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도 잊혀져가고 있다.

 

강물은 썩어 있었다. 샛강이라 했다. 조그만 목선(木船)을 타고 건너면 한강 본류(本流)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곳은 난지도(蘭之島)의 저쪽에 있었다. 썩은 물에서는 시큼한 시금내가 섞여 구린내 같은 악취가 났다. 날이 흐린 때문일까. 악취는 어젯밤 잠을 못잔 종혁의 비위를 긁었다. 1)

 

종혁은 어제도 밤을 지센 모양이다. 소설은 세수하러 마당에 나선 종혁이 코피를 쏟는 아침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일을 종혁은 ‘떡을 친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매일 밤, 떡을 치며 살아야 했다. 가산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이곳 난지도 근처에서 겨우 살아가는 여덟 식구의 끼니가 그에게 달렸다. 비단 종혁네 식구들만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네가 세 들어 사는 이 집, 정확하게 말해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상암동 1통 9반’에 속해 있는 이 집에는 다섯 세대가 살았다. 주인 격인 연섭과 그의 형 운섭 그리고 각각 딸린 식솔들, 판쇠네 부부와 그의 누이동생이 살고, 전라도 어디에서 올라왔다는 늘그막의 곽씨와 그의 부인까지 스물 가까운 뜨내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지냈다. 당연히 아침마다 화장실 쓰는 일을 전쟁 치르듯 해야 하고, 수돗가 한 번 차지하려면 눈치를 봐야했다. 그래도 소위 서울 사람이라고 보리밥을 먹지는 않았다. 난지도에 아직 쓰레기들이 모여들기 이전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쌀 말고도 딸기나 시금치 같은 채소를 재배했고, 샛강 모래밭에서는 땅콩과 수수가 자랐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구름다리를 넘자 계단은 곧바로 하늘에 닿아 있었다. 사면을 따라 이백아흔 한 걸음이 지그재그로 올라붙었다. 얼마쯤에서 숲을 이루던 나무들 키 너머로 월드컵 경기장 지붕과 성산대교의 붉은 아치교각들이 보이자 숨이 차올랐다. 좀 더 멀리까지 하늘이 열리면서, 시선은 군데군데 바위를 드러낸 북한산까지 뻗어갔고, 서울타워가 솟은 남산도 보였다. 한강으로 흘러내리듯 이어진 몇 개의 산자락들과 그 틈바구니에 콩나물이 자라듯 고층빌딩들은 빼곡했다. 좀 더 오르자, 다리 위로 다리 하나가 더 얹히면서 강물 위로 선유도가 떠올랐다. 강 건너 양천구 쪽으로 한강을 점점이 짚어 건너는 교각들이 박히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새로 생길 모양이다.

 

운이 좋았다. 가을 하늘 가까이 하늘공원 꼭대기에서는 억새가 한창이었다. 하얀 꽃대를 싱싱하게 뽑아 올린 억새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걷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연휴를 앞둔 평일이어서 그런지 젊은 연인들이 많았다. 바람이 일자 가벼운 웃음꽃들은 흔들리며 피었다. 한창 시절 난과 지초가 자랐다던 난지도蘭芝島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 일이다. 난지도는 이제 섬도 아니다. 소설 <샛江>이 발표될 시절만 해도 난지 샛강은 홍제천이 끝나는 망원정 부근에서 본류와 갈라져 행주산성 즈음에서 다시 한강과 합쳐지던 물줄기였다. 소설이 발표된 이듬해 제방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해 봄부터 서울 사람들의 온갖 쓰레기를 매립하더니 올림픽이 열리던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포화가 되고 말았다. 침출수에서 풍기는 악취와 쓰레기에서 생겨난 먼지는 심각한 상태였다. 병든 몸으로 세기 말을 맞던 난지도는 2002년 월드컵대회를 치르며 비로소 새 단장을 했다. 침출수를 막는 공사와 함께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생기는 가스를 모아 경기장과 상암동 일대 아파트들의 난방을 했다. 두 개의 쓰레기 봉우리 사이에 번듯하게 자리한 ‘자원회수시설’과 ‘지역난방공사’가 그런 시설들이다. 축구전용 경기장과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 상암동을 배경으로 한강을 끼고 ‘하늘’과 ‘노을’이라는 공원이름들은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폐품 수집원들이 모여 살았던 자리에는 ‘난지천’이라는 작은 개울 하나가 겨우 샛강의 명맥을 잇고 있다. 주변에는 ‘평화의 공원’과 캠핑장 그리고 요트시설까지 마련되어 있다. 높은 곳에서는 더 멀리까지 보인다. 그러나 발밑에 딛고선 쓰레기들이 남겨지던 시간 속에 머물던 삶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난지도와 샛강, 지난 어두운 세월이 묻은 그 이름 위로 지금은 공원이 들어 선 것이다. ‘쓰레기 매립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섬의 과거도 이름과 함께 묻혔다.

 

아흐레째 비가 내리더니 샛강에 둑이 터졌다. 그 새벽에 난리가 났다. 제법 큰물이 마을로 덮쳐든 것이다. 낮은 터에 자리 잡은 집들은 이미 절반도 넘게 수마에 삼켜졌고, 급한 마음에 아이들을 들쳐 매고 솥단지며 이불을 챙겨 뒷산으로 오른 걸음들은 물에서 황망한 시선들을 떼지 못했다. 똥물이 흘러들었다. 망원정 부근에서부터 똥들은 본류 대신 무너진 둑을 타고 넘어 샛강 사람들의 마을로 파고들었다. 똥물과 흙탕물에 뒤죽박죽 잠겼던 집들은 비가 그치고도 이틀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밑바닥을 드러냈다. 종혁네가 세 들어 살던 집은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 난리통에 하반신 불구였던 연섭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남자구실도 못하던 자신을 늘 비관해오던 연섭이었다. 태어나서 겨우 열이틀을 살다간 종혁네 갓난아이를 수습했던 곽씨가 이번에도 시신을 거두었다. 그래도 살아남은 목숨들은 살아야 했다. 종혁의 처는 이재민들이 모여 있던 학교에서 여섯 번째 아이를 낳았다. 다섯 가구에 스무 명 남짓이나 사는 집은 지금 아수라장이다. 안채에서는 초상을 치르고, 구석방에서는 산모가 몸을 풀고, 그 와중에 삐닥하게 기운 집을 수리하고 있고, 죽은 연섭의 형 운섭이 어디서 훔쳐왔는지 모를 개를 잡아 문상 온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소주병을 비워냈다. 샛강 사람들의 삶은 본능이었다. 죽음으로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려는 몸부림은 하룻밤도 거를 줄 몰랐다. 질퍽한 성욕이 소설 속 밑바닥을 끈적하게 흘러 다녔다. 남편의 초상을 치르는 연섭의 처가 영권이 총각 앞에서 연신 엉덩이를 실룩거렸고, 술에 취한 운섭은 아침이 눈을 뜨기 전에 서둘러 곰보마누라를 끌어안았다. 가난한 이들에겐 부끄럼조차 가릴 허세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똥푸기와 매음녀, 과부와 노점상, 탈영 전과자와 상이군인, 그리고 벙어리와 시인, 노점상과 소설가, 38따라지 같은 인생들 모두가 가난이라는 인연으로 엮인 한 지붕 아래 살았다. 서울의 변두리, 온갖 배설물들의 비린내와 구린내를 풍기던 난지도 샛강은 그런 가떼미 인생들에게 딱 어울리는 배경일지 몰랐다.

 

서울하고도 한강, 한강 하고도 난지도를 중심으로 계집년의 사타구니처럼 찢어져 허옇게 얼어붙은 샛강, 그 샛강을 눈이 내리는 속에 무연히 서서 바라다보는 사람은 고봉수였다. 고봉수는 아까부터 난지도를 꼭 여자의 성기 같다고 생각한다. 그 성기 위에 여름에 무성했던 이태리 포플라며 개나리 무궁화 참죽나무들이 앙상하니 눈이 내린 난지도의 음모(陰毛) 같다. 난지도 저쪽의 한강 본류와 이쪽 샛강은 갈데없는 여자의 허연 허벅지다. 2)

 

‘가떼미’, 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분명 미군부대 뒷골목에서 흘러나왔을 게다. 굳이 짚어보자면, ‘잡년, 잡놈 또는 남녀의 성기를 상스럽게 이르는 말’ 정도로 만져진다.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작가 이정환의 빈민체험기에 가까운 <샛江>(上)권은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종혁이네 ‘아리랑 식솔’들의 이야기와 ‘가떼미들의 잔치’로 짜여있다. <샛江>이야기는 (下)권으로 넘어가면서 종혁네는 ‘벙어리 마을’로 이사를 한다. 다소 뜬금없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는가 싶더니, 화제도 전환이 된다. ‘휴전선’이란 시를 남긴 ‘박봉우’로 확실시되는 벙어리 마을의 ‘고봉수 시인’이 자주 등장하고, ‘신고산이 우르르릉....’을 웅얼거리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신고산이’가 새로 등장을 한다. 종혁의 둘째 동생인 성대가 결혼을 하면서 미숙이 한 집에서 살면서 식구가 늘었지만, 남의 집 개나 집어오던 운섭은 라디오를 훔치다가 꼬리를 잡히더니 결국 시계방을 털다가 아예 ‘큰집’에 들어앉고 말았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 이사를 했어도 샛강마을은 기껏해야 버스 정류장 한두 개쯤 거리 안에 머물러 있다.

 

가떼미들의 삶은 가벼웠다. 그들의 마음은 라디오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뉴스에 쉽게 들떴고, ‘삐라’로 뿌려진 회담소식에 몸이 먼저 달아올랐다. 밀고 당기던 서로의 관계들은 정세변화에 따라 급물살을 탔다. 남북통일은 과부가 된 연섭이 처에게는 영권 총각과 살을 섞는 일이었고, 영권을 짝사랑하던 복순에게는 맘도 없던 곰배팔이에게 인심 쓰듯 몸을 내주는 것이었다. 회담대표들이 자주 휴전선을 넘나들 때마다, 마치 기념우표에 도장을 찍듯 교접을 했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회담은 흐지부지 고착상태에 빠져 들었고, 통일은 철 지난 유행가처럼 저만치 임진강을 건너 돌아오지 않았다. 흥분은 쉽게 가라앉았지만, 뿌려졌던 씨앗들은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들을 빵간으로 보내고, 과부 아닌 생과부 신세가 되어버린 아낙들이 집을 청산하고, 가산을 정리해서 남은 밑천으로 샛강 옆에 주막을 차렸다. 성냥과 초, 하이타이, 미원, 설탕, 거울 따위를 들고 온 가떼미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술주정들 속에서 푸념도 같고 기도 같기도 한 바람이 흘렀다.

“샛강 물이 죄 우리집 술이 되게 하소서. 푸지고, 돈 벌게 하소서.”

 

어느덧 한강은 가양대교 밑을 지나고 있었다. 낮은 데로, 낮은 곳으로만 찾아 흘러온 강물. 한강은 이제 바다에 닿기 전 임진강을 만나 몸을 섞을 것이다. 퇴근 길 차들의 행렬은 끊임이 없었고, 소음은 강 건너까지 이어졌다. 삶이 버린 불편한 흔적들을 마주 대하기는 먼발치가 좀 나았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던 배설물들의 무덤은 어쩌면 강을 바라보는 높이 90여 미터의 쌍둥이 산봉우리 같다는 착각도 일었다. 저녁 햇살이 느긋해진 노을공원 쪽에서 두어 마리 갈매기가 다리 위를 지났다. 시선이 멀리 강물을 따라 저물어가는 해를 쫓아갔고, 기웃기웃 김포공항 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강물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얼어 죽은 신고산이의 장례로 마무리 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이 그의 혼백을 태웠고, 장작더미를 돌며 춤을 추었다. 뜨겁고 붉은 춤사위였다. 홀가분해진 삶의 껍질이 휘발유가 더해질 때마다 하늘로 솟구치며 흔들렸다. 검은 연기가 일었다. 1974년의 정월 초하루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 이정환, <샛江> 중에서

2)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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