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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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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2일 21시 15분 등록

욕망을 부르는 이름, 완장

- 윤흥길의 <완장>, 1983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봄의 절정을 탐내던 아카시 향내도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고, 마을을 지나는 길목마다 눈에 걸리는 뽕나무에서는 검게 익은 오디가 떨어져 무심히 밟혔다.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을거라던 기상대 예보는 아무래도 빗나간 듯싶었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자 기다렸다 싶게 후덕지근한 공기가 달려들며 숨을 가로챘다. 밤꽃 향기가 범벅이 된 6월 초순의 햇볕은 머릿속까지 파고들었다. 어지러웠다. 아까부터 뒤를 쫓던 멧비둘기 울음소리는 두악산 관망대 가까이에 이르자 뻐꾸기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한적한 길이었지만, 오르막이라고 부르기에는 머쓱할 만큼 걸음에서 소나무 숲 사이로 관망대가 비쳐들었다.

 

눈길 아래로 백산저수지는 뿌연 풍경 속에서 흐릿하게나마 윤곽을 가늠할 뿐이었다. 몇몇 식당들이 자리한 왼편 제방은 완만한 곡선으로 굽어져 마치 저수지를 감싸듯 했지만, 오른편으로는 들쭉날쭉한 경계가 멀리 마을까지 뻗었다. 때문에 저수지의 한쪽은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험한 꼴을 하고 있다. 모내기가 한참인 탓에 수변은 허연 속살이 드러났고, 저수지는 제방 쪽으로 바짝 움츠리고 있었다. 주변을 삥 둘러봐도 그다지 산이라 부를만한 위세를 가진 높은 봉우리는 없었다. 그저 야트막한 둔덕들에 둘러싸인 저수지는 사방으로 트여 널찍한 하늘이 그대로 담겼다. 물속에 뿌리를 박은 등대모양의 수조탑을 경계로 제방 건너 마을 쪽으로는 제법 굵은 혈관 같은 수로가 농경지사이를 가로 질러갔다. 저 물은 가까운 백산면과 공덕면 그리고 멀리 청하면까지 흘러가 만경평야의 목을 적실 것이다. 모를 내던 사람들 대신 붉은 이앙기 한 대가 진즉부터 물이 채워진 논을 바삐 오가고 있다. 흐릿한 원경 속에서도 기계가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이 땅이 아직 살아있음을 상기시켰다. 관망대 맨 꼭대기조차 바람은 쉽게 닿지 않았다. 시간이 멎은 듯 풍경은 흐릿한 박무 속을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앞에서 눈앞의 현실과 보이지 않는 소설의 경계는 쉽사리 구별할 수 없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했던가. 본시 이 땅은 평야를 거의 가지지 못했고, 고작 나지막한 야산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1966년 9월 ‘호남지구 야산개발사업’이 착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주로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거나 더러 과수를 심어 먹고 살았다. 식량증산을 통해 보릿고개를 넘자는 구호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야산개발사업은 마을뿐 아니라 백산면 일대의 모습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그러나 이 땅은 젖줄이 되어줄 물줄기를 만들어줄만한 산과 골짜기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야트막한 산들은 평평하게 깎여 농경지로 탈바꿈했고, 인근 농토에 물을 댈 자리가 필요해지자 뽕나무를 키웠던 산들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산들이 뽑혀 나간 빈자리를 채울 물은 산을 넘겨 끌어왔다. 노령산맥의 줄기 묵방산 너머에 1965년 섬진강댐을 막아 생긴 옥정호에서 취수한 물이 도수터널을 통해 동진강 유역까지 넘어왔다. 산을 넘어온 물은 김제용수간선 인공수로를 타고 백산면까지 이어졌고, 한때 뽕나무밭이었던 백산저수지는 박정희의 친필 현판이 아직도 붙어 있다는 호남양수장(김제시 검산동 소재)에서 품어 올린 물로 채워졌다. 바다만큼은 아니지만, 감히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개벽천지가 열린 것이다.

 

“종술이.”

“니알모레 글피면은 우리 양어장도 끝장일세.”

그 순간 종술의 입이 딱 벌어졌다. 익삼 씨는 종술의 입과 눈에서 시작된 단단한 놀라움의 덩어리가 전신을 타고 떽데구루루 굴러 떨어지는 모양을 낱낱이 지켜보면서 마치 칼끝으로 저미듯이 또박또박 뒷말을 덧붙였다.

“저수지를 바닥내기로 결정을 보았다네. 그 일로 솜리1)서 사장님을 만나고 오는 챔이지. 사장님이 요런 말씸을 허시도만, 양어장이 날러가는 이 판국에 앞으로 감시원이 무신 소용이냐고.”

빳빳이 굳어 있던 종술의 몸이 갑자기 허물어지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변했다.2)

 

이리시裡里市 근처에서 한때 농사를 짓던 최사장은 때마침 불어 닥친 부동산 바람을 타고 사업가로 변신한다. 집안의 숙질관계인 이곡리 이장, 최익삼의 권유로 최사장은 판금저수지의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알아주는 건달인 종술에게 관리를 맡긴다. 적은 급료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솔깃해진 종술은 관리인으로 취직하게 되고, 완장의 위세를 통해 권력의 단맛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저수지에 몰려온 낚시꾼을 기합주기도 하고, 몰래 그물질을 하던 건너 마을 친구에게 주먹다짐을 놓기도 했다. 종술은 저수지를 순시할 때만이 아니라 읍내 실비주점으로 외출할 때도 반드시 완장을 챙겼다. 완장은 마력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술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완장의 위세에 한껏 기고만장해진 종술이 최사장 일행의 낚시나들이 자리에서 오기를 부려, 그만 최사장의 체면을 구겨버린 것이다. 종술은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완장에 집착하며 발버둥을 친다. 갈등은 오랜 가뭄으로 더는 모내기철을 늦출 수 없는 마을사람들과 양어장을 통해 한 몫 쥐려던 마을 이장과 최사장 사이에 놓여 있지만, 끝내 완장을 놓지 못하는 종술의 망나니 같은 행보로 더욱 뒤틀리고 복잡하게 꼬여간다. 저수지의 물을 빼기로 했다는 익삼씨의 통보를 전해 듣고, 이제 참말로 완장을 잃게 된 종술은 붉게 충혈 된 눈발을 치켜들고 밤새도록 마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누구라도 시비를 걸어 분풀이를 해댈 기세다. 결국 신고를 받고 달려온 순경마저 때려눕힌 종술은 쫓기는 몸을 저수지 한가운데 뗏목에 겨우 의지한 채로 밤을 지냈다. 한편으로는 종술의 뒤에서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완장’의 내력을 몸으로 겪어내는 운암댁이 있고, 읍내 실비주점의 작부인 부월과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마지막까지 소설의 흐름을 쥐고 간다.

 

1983년 발표된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완장’으로 상징되는 권의주의 시대의 폭력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이 발표되면서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89년에 MBC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공중파를 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조형기가 주인공 임종술 역을 맡고, 김영옥과 한애경이 각각 운암댁과 부월역으로 출연했었다. 작가는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겨진 소설 <완장>의 힘이 해학에 있다고 말한다. 소설이 재출간되면서 그는 머리말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마땅한 것이다. 사실성이나 풍자성이 지닌 예리한 식칼로 대상을 토막 쳐 공격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해학성의 두루뭉술한 그릇에 담아 대상을 원천적으로 수용해 버리는 웃음의 처리는 때로 더욱 유효한 공격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비판 방식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남겨진 뒷이야기들도 있다. 소설의 발단이 되었던 실제의 이야기는 ‘김제 백산저수지’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널금방죽’이라고도 부르던 ‘판금저수지’는 바로 이곳 백산저수지가 모델이 되었다. 근처에서 과수원을 하던 친구 집에 놀러갔던 작가는 우연히 완장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5.16 혁명 정권 시절의 이야기는 5.18 계엄 정권 시절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방죽은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농사를 지어먹어야 하는 땅이면, 어느 마을이든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방죽은 산자락이 마을로 내려오는 경계에 자리하기도 하고, 마을을 빠져 나간 내가 강에 이르기 전에 머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물을 방죽에서 끌어다 썼고, 가뭄이 깊을 때는 먹는 물로, 혹시 어느 집에 불이라도 나면 소방용수로도 썼다. 더러는 말 못할 한을 품고 현실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동네 처자의 마지막 탈출구가 되기도 했지만 삶은 죽음보다 우선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이 담긴 방죽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절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때문에 방죽의 유지와 관리는 공동체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설사 그 땅이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마을사람들 공공의 이해보다 우선할 수 없었다.

물론 갈등이 없지 않았다. ‘물꼬 싸움은 형제간도 몰라본다.’는 말처럼 수로에서 가까운 논과 멀리 떨어진 논의 처지가 다르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혈연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늘 다툼이 따르게 마련이다. 묵은 감정은 쌓이기 전에 풀어야 했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한숨 돌릴 때가 되면, 날을 잡아 방죽의 물을 뺐다. 마을 청년들은 일손을 놓고, 시들은 수초들을 베어냈고, 물이 빠진 자리에서 씨알 굵은 붕어나 가물치를 건졌다. 동네 아낙들 손으로 잘 차려진 붕어찜은 마을 어른들을 배부르게 했고, 지혜로운 노인들은 너그러운 웃음으로 술잔을 채워가며 물꼬 싸움으로 소원해졌던 청년들을 달랬다. 이른 봄부터 여름 내내 쌓였던 묵은 감정들처럼 방죽 바닥에 쌓인 개흙들은 이듬해 봄에 객토로 썼다. 말끔하게 비워진 물그릇은 다시 예전처럼 넉넉하게 물을 담았다. 욕망이 그렇게 관리되면서 마을은 건강할 수 있었다. 부족했지만 풍요롭던 시절은 소위 ‘완장’이 끼어들면서 뒤틀리곤 했다.

 

풍요는 그 풍요로움 때문에 탐욕의 대상이 된다. 욕망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비틀어 왜곡시켰다. 그 뒤틀린 틈을 비집고 탐욕이 뿌리를 내리며 더러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는다. 권력은 착취와 수탈을 먹고 자랐다. 지극히 억지스러운 그 관계가 필요한 권력이 사람들의 눈앞에 완장을 내세웠다. 완장은 끄나풀이다. 불쌍한 ‘하빠리’들의 욕망을 낚는 미끼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그 욕망이 담긴 저수지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뒤틀린 삶들의 이면을 풀어내고 있다.

 

세상은 또 한 번 뒤집어지고 있다. 제 어미의 젖줄이 닿지 않던 자식, 강물의 맛을 알지 못했던 땅은 이제 풍요롭다. 물은 부족하지 않고, 쌀은 넘쳐나고 있다. 수요를 넘어버린 공급이 더는 배고픔도 목마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라에서조차 농사를 짓지 말라고 권하는 시절이 오고 말았다. 저수지 너머 마을 뒤편에서는 또 다시 그 무슨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백산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차 보이던 관망대를 내려오며, 소설 <완장>은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저수지의 물을 빼기로 한 날이다. 운암댁의 방문을 받고, 종술을 찾아 나선 부월은 마침내 저수지 한가운데 뗏목 위에서 그를 발견했다.

 

“나도 알어!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3)

 

마을을 벗어나는 귓전에 부월의 마지막 말이 저수지를 빠져나가지 못한 완장처럼 맴돌았다. 동네 사람들의 돌팔매처럼 경멸에 찬 눈초리, 깔깔거리는 웃음에 흠뻑 젖어버린 완장이었다. 완장을 벗어버린 종술과 운암댁의 당부대로 마을을 떠난 부월은 어찌되었을까.

밤꽃향기가 코를 찌르며 덤벼들었다.

 

 

 

 

1) 지금의 익산, 예전 이리의 옛 지명

2) 윤흥길, <완장> 중에서

3)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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