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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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사이
- 신경숙 <전설>
신경숙의 소설에는 늘 고즈넉함이 배어있습니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를 먹먹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 아련함과 먹먹함은 장편보다는 단편과 중편 소설에서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신경숙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된 것은 1992년 이상문학상 수상집 <숨은 꽃>에 실린 단편 <풍금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 책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아니었지만, 수상작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배어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오히려 처음 만나는 작가가 준 아름다움과 신선함이 단숨에 저의 눈을 잡아끌었습니다. 이 작품과 만난 이후로 저는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시간 나는대로 찾아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그녀의 단편 소설 <전설>이 우리나라 누리꾼들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일본의 극우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표절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이응준이 허핑턴 포스트에 올린 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이 발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에 더욱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글이 발표 된 후 작가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이런 논란에도 신경숙 작가가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 단위로 실시간 검색이 바뀌는 우리나라 누리꾼들의 성향을 볼 때, 이런 작가의 무반응은 누리꾼들을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윽고 화살은 출판사인 <창작과 비평사(창비)>와 신경숙 작품을 출간했던 <문학동네>로 향했습니다. 이 두 출판사는 신경숙 작가가 소위 말하는, ‘유명작가‘이면서 ’잘 팔리는 작가‘ 이기 때문에 이 작가의 표절 사실을 알고도 침묵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서로가 침묵을 하기로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누리꾼들의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고, 이 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까지도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저 또한 문제작 <전설>과 <우국>을 읽어보았습니다. 특히, <우국>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치밀한 묘사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어찌 보면, 그닥 관련 없어 보이는 작품을 함께 읽다보니 이런 ‘표절 사건’이 아니라면 굳이 비교할 만한 여지가 없는 훌륭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다소 지난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비교적 덤덤하게 두 작품에 대해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 <전설>은 그런 '표절 작품'이라고만 하기에는 조금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사직동의 한 집을 보고는 그 집에 얽힌 전설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재구성한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전설이란 말 그대로 사실에 입각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인기 TV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을 보면, 화자가 극의 앞, 또는 마지막에 등장해서 '이 전설의 배경은 무엇 무엇이며, 이는 그 지방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라고 이야기 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구전되는 '전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이 소설을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막 결혼한 부부가 헤어져야 했던 아련함과 살아남은 자가 지녀야 할 슬픔과 그리움이 전설이 된 이야기를 신경숙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필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많은 누리꾼들이 더 격분했던 것은 왜 하필 일본의 '우익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위대 훈련에도 직접 참여하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부활하자는 논리가 좌절되자 할복 자살을 한 미시마 유키오. 이 참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들을 다 읽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후에 다른 칼럼에서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문장을 보면,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스쳐지나갈 정도로 미미한 부분이 동일합니다. 몇 개의 문장과 단어들이 '표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치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 부분들이 작품 전체의 플롯이나 결정적인 한 방을 드러내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서는 자살을 앞둔 부부의 신혼부부를 설명하는 부분이고, <전설>에서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부부의 애틋함을 드려내는 정도로 평이하고 사소한 부분입니다. 평소 신경숙 작가는 작품의 풀롯보다는 분위기와 인상을 중요시 여겨서 이 또한 '결정적인 표절' 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개인적으로는 표절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작가는 전설을 읇기 앞서서 나레이션처럼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합니다.
나는 말을 찾아다니는 사람. 그 좁은 뜰의 아름드리 사과나무가 내 메마른 삶 속으로 생수처럼 흘러들어와 사과꽃을 떨어뜨렸다. 꽃이 다 지기 전에 그 사과나무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찾아내 전하기로 했다.
저는 이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 신경숙 작가의 창작에 혹시나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껏 이루어 왔던 작가의 모든 문학적 성취가 한 순간에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본 독자로서 ‘표절’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신경숙 소설이 나올 때마다 몰래 찾아보고는 다른 사람과 절대 공유하지 않았던 ‘나만의 비밀’과도 같은 작품이 ‘표절 문학’이라는 오명을 안은 채 찢어지고, 분해되어 비교, 대조 되는 모습은 참기 힘들었습니다.
누리꾼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표절의 심판을 받고는 다시 일어서라.’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표절을 바라보는 엄격함의 도가 지나쳐서 이 소설이 지닌 문학성을 폄하하는 삐딱한 시선에 있습니다. 이는 ‘그래, 당신 이번에 걸렸으니 이 참에 한방에 나가 떨어져라’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표절 또한 문학이 지니고 있는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표절은, 그 행위를 해서도, 또 옹호해서는 안되지만, 표절을 표절 그대로 놓아두고 그것 이외에 쌓아진 다른 문학적 성취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넓은 아량이 아쉽습니다.
이 칼럼을 위해 조사를 좀 해보니, 이 작품 이외에도 신경숙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표절’이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을 읽어본 저로서는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예, 이참에 싹 정리하고 모든 것이 없던 <풍금이 있던 자리> 그 시절의 패기 넘치던 '신인 작가 신경숙’을 만나게 될 것 같아 기쁘기도 했습니다. 작가로서 치명적 불명예인 ‘표절’이라는 이름표가 이젠 보란 듯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탈바꿈 될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문제가 된 이응준의 글은 이곳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
* 이 단편소설은 창비사에서 출간한 <감자먹는 사람들>에 실린 8편의 단편소설 중, 다섯 번째 소설입니다. (1996년에 발간된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의 개정판입니다)
* 이미지 차용 http://www.yes24.com/24/goods/1525761?scode=032&OzSran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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