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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7일 19시 53분 등록


책은 좋아서 읽는 것이니 정해져 있는 읽는 법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자기 스타일로 읽다보면 요령이 생기고 그럭저럭 그 장단점을 알게 되겠지요. 참고로 간략하게 선인들이 책읽는 법 한가지를 내게 맞게 각색한 것을 소개할까 합니다. 전에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에서 썼던 것이지요. 참고하세요.

또 한가지. 읽는 것이 먼저지만 역시 정리가 중요해요. 나처럼 책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읽고 곧 잊어 버리면 답답하니까요. 간단한 나의 요령이 있어요.

- 난 줄을 쳐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줄을 쳐 두지요. 나중에
줄 친 것을 컴퓨터에 옮겨 적어두지요. 그 때 한번 더 보게 되는 셈이지요. 그러면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아요. 잊고 있다가도 관련된 주제나 단어가 나오면 생각나요.

- 정말 좋은 것은 주제 별로 다시 모아두지요. 그 주제가 나중에 책으로 쓰여질 테니까요. 같은 주제 내의 다양항 인용들이 모여 있게 되면 그것들 끼리 서로 치고 받고 응원하면서 내용을 명쾌하고 풍요롭게 하지요. 후에 나는 그것들을 연결하고 재해석하고 내 의견을 더하고 빼면서 책쓰기로 데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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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네권의 책을 읽어라

사람에게서 묵향이 나면 좋다. 묵향은 선비의 향기이다. 그리고 선비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옛날의 서책에서는 은은한 묵향이 흘렀으나 지금 우리는 인쇄된 책에서 그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게되었다. 우리는 선비의 나라였지만 이제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정보와 지식의 시대에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살아 날 수 있는 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맹자는 책을 읽는 것을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자는 ‘도리란 이미 자기 자신 속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밖에서 첨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독서의 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자기 속에 이미 있었으나 잃어 버린 마음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거두어 들이지 못한다면 책을 읽어 무엇을 하겠는가 ?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은 늘 ‘두번 째’의 일이 된다. 책을 읽는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목적은 ‘잃어 버린 마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어 이해하게 되면 이를 통해 원래의 마음을 찾게된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다. 책은 자신의 절실하고도 긴요한 곳에서 이해되어야한다.

선인들이 알려준 독서의 방법 * (주) 에 나름대로의 경험을 더하여 소개한다. 익혀서 실천하면 평생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많이 읽어라. 젊은 사람들은 특히 많이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일년에 100권 정도 읽으면 아주 많이 읽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독서광이다. 50권 정도 읽으면 일주일에 한권을 읽는 것이니 꽤 많이 읽는 편이다. 24권 정도 읽으면 2주일에 한권을 읽는 것이니 적당하다. 보통 사람도 그 정도는 읽을 수 있다. 12권을 읽으면 적게 읽는 편이고, 그보다 더 적게 읽는 사람이 있다면 배우는 데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얻을 것이 없다.

둘째, 책의 전체를 처음부터 다 읽어야할 의무는 없다. 책은 사람과 같다. 좋은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매력이 있다. 책을 많이 읽다보면 좋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을 구별할 수 있다. 좋은 책을 구별해 내는 것은 일종의 지혜이다. 읽다보면 알게된다. 잘못 고른 책에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니 끝까지 다 보아야할 이유가 없다. 그냥 덮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두어 페이지 다시 훑어 보고 그래도 마음을 휘감지 못하면 버려라. 쓰레기는 공간을 차지한다. 마음의 공간이 비지 못하면 좋은 것이 들어와 머물 수 없다. 쓰레기는 그러므로 버리는 것이 좋다.

셋째, 천천히 읽어라. 책은 음식과 같다. 천천히 씹으면 그 맛이 오래 가지만 대강 씹어 삼키면 끝내 그 맛을 알 수 없다. 공자는 “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라고 말했다.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생각하고 다시 읽는 것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다. 명심하라. 생각할 것이 없는 책은 책이 아니다. 그대의 시간을 죽이고 돈을 죽인다. 가장 나쁜 투자이다.

넷째, 좋은 책을 고르면 투철해져라. 조금 읽고 많이 숙고해야한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책을 읽을 때 많이 읽는 것 보다 조금씩 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젊은 시절은 기억력이 좋고 정신의 활력이 왕성한 때이다. 되도록 많이 읽는 것이 좋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기억력은 많이 떨어진다. 반면 이해의 폭과 깊이는 넓고 깊어진다. 그러므로 중년 이후의 독서는 한 두 단락을 보더라도, 마음을 여유있게 풀어 놓아야지 많이 읽으려고 탐내서는 안된다.

좋은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 속에 들어가 한바탕 맹렬히 뒤섞여야한다. 마치 앞 뒤의 글이 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처럼 되어야 한다. 투철해져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공부할 양은 작게하고 공력은 많이 기울여야한다. 물을 잘 주는 농부는 채소와 과일 하나 하나에 물을 준다. 물을 잘주지 못하는 농부는 급하고 바쁘게 일을 처리한다. 한지게의 물을 지고 와서 농장의 모든 채소에 한꺼번에 물을 준다. 남들은 그가 농장을 가꾸는 것으로 볼 것이지만 작물은 충분히 적셔진 적이 없다. 우리의 정신도 이와 같다.

다섯째, 배우는 사람이 늘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예전에 받아들인 가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에는 우선 의심이 일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의심을 없애야한다. 책을 읽다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이르면 '엣 견해를 씻어 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얻어'야한다. 이렇게 되면 크게 나아질 수 있다.

여섯째, 글을 볼 때 이해한 곳에서 다시 읽어 나가면 더욱 오묘해진다. 작가의 언어는 꽃밭과 같다. 멀리서 바라 보면 모두 좋게 보인다. 분명하게 좋은 것은 실제로 보아야 한다. 반드시 힘들여서 자세히 보아야한다. 공부는 자세히 보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책을 읽는 것에 지름 길은 없다. 지름길은 사람을 속이는 깊은 구덩이이다. 껍질을 벗겨야 살이 보이고 살을 한겹 다시 벗겨내야 비로소 뼈가 보인다. 뼈를 깍아 내야 비로소 골수가 보인다.

일곱째,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에게 절실해야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한걸음 물러나 생각하는 것이다. 한걸음 물러 난다는 것은 공부하며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책을 볼 때 먼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저자의 말을 끌어다가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넣는다. 이것은 저자를 읽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미루어 넓히는 것이다. 한 걸음 물러 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을 지어내지 말고 저자의 말을 앞에 놓고 그들의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 지 보는 것이다. 즉 자신의 생각을 저자의 뜻에 꿰맞추지 말고 저자의 뜻을 붙잡으려 해야한다. 저자의 생각을 알면 크게 진보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를 없애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여덟째, 체득하여 실천하라. 약을 조제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약을 보기만 해서는 효험을 볼 수 없다. 책도 그렇다. 글은 보기만 해서는 안된다. 이해한 것을 몸으로 체득한다면 이해하기도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화공은 자신이 그린 사람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그림 속의 실제 인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림이 곧 그 사람일 수는 없다. 이해한다는 것과 체득한다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사물에 따라 사물을 보라. 자기를 통해 사물을 보지 말라.

아홉째, 책을 보고도 진전이 없으면 조주화상이 한 말을 기억하라 “ 이 노승의 대가리를 잘라 버려라”

나는 꽤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여러 번 읽어 아끼고 싶은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그 책들은 평생 볼 것이다. 책 한 권을 천천히 여러번 여러 시기에 걸쳐 평생 읽게 되면 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면 나 또한 알 수 있다.

생각할 것 없는 쉬운 독서와 킬링 타임의 통속성 속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배움과 독서의 향기를 선사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다 읽고 버리는 책이 아니다. 평생을 곁에 두고 보아야한다. 분명한 것은 좋은 책이란 마음이 떨어진 낙엽처럼 바스러질 때, 혹은 바람에 날려 어디로 날아 갔는 지 조차 알지 못할 때, 책상에 앉아 몇 페이지 보면 차원이 다른 청량함을 맛 볼 수 있다. 이런 책은 책이라기 보다는 향기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마치 붉고 정정한 적송(赤松)들이 즐비한 오솔길을 산책하는 듯하고 대숲이 우거진 암자에 앉아 바람을 쐬는 것 같다. 천천히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상쾌하고 시원하다. 그것은 깊은 여행이다. 그와 나 혹은 그녀와 나만의 매우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여행이다. 여행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함께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주) 남송 때 여정덕이 주희와 그 제자들의 대화와 강론을 주제별로 엮은 ‘주자어류’ 속에 독서에 관한 방법론이 들어있다. 여기에 소개된 내용은 이 방법론을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간략히 정리 소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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