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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일 09시 54분 등록
일과 개인생활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법
삼성에세이, 2005 년 5월 두 번째

조화와 균형은 좋은 말이다. ‘훌륭한 직원’으로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은 개념적으로 서로 배타적인 목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직업인’이며 동시에 ‘훌륭한 개인적 삶을 즐기는 사람’ 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 그림이다. 그러나 개념적으로는 훌륭하고 얼마든지 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상호 배타적이며 상충하는 목표라는 것을 살다 보면 누구나 깨달게 된다. 이 모두를 잘 해보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두 목표 사이를 넘나드는 위험한 곡예를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여성 직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여성들에게 가정은 또 하나의 직장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다 잘해 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신기한 것은 한국인들이 조화와 균형이라고 개념으로 부르고 있는 것들이 서양인들에게는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향이 많다는 점이다. 그들이 균형 balance, 조화 harmony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현실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실질적 방식이 ‘모두를 다 잘해 낼 수 있다’ 는 개념보다는 ‘어느 하나를 우선적으로 잘하려면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한다’는 입장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선택과 선택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포기’ 라는 이분법논리 구조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면 일과 생활의 균형 (work - life balance) 는 실제로 ‘교환’ (swap or trade off) 혹은 ‘선택과 선택되지 않는 것들의 포기’ ( select or give up if not selected) 로 정의되는 예를 많이 본다.

예를 들어 20세기 가장 훌륭한 경영자로 존경받는 잭 웰치는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개념이 발전되고 확장되어 왔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생활을 관리하고 우리의 시간을 분배할 것이냐의 문제다. 즉 우선 순위와 가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은 우리가 일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비중을 둘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다.... 어느 균형을 선택했던 당신은 어느 한 쪽은 조금 양보해야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한 가지는 조금 포기해야한다.... (만일) 첫 번 째 우선 순위로 일에서의 성공을 꼽는 사람들은 아이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는 포기해야한다. 일과 생활의 균형은 교환(swap)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스스로 나누는 것이다. ”

잭 웰치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호주의 멜버른에서 있었던 기업체 임원들을 위한 강연의 ‘질의 응답’ ( Q & A ) 시간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이 강연에서 사회를 맡았던 사람은 호주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뉴스캐스터 중에 한 사람인 맥신 맥큐( Maxine McKew)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직장생활과 다른 일상의 희생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여성들은 무엇인가를 포기합니다. 그것이 생활입니다. 저는 캐리어를 원했습니다. 그래
서 아이를 갖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마 아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경력을 함께 키워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25년 전에 방송계에 입문 했을 때는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의 높은 단계를 성취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아이를 원했지만 저는 제 경력을 쌓는 것을 최우선으로 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인한 나의 행복과 부족함에 대해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맥신 맥큐가 개인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그녀가 그 선택의 결과로 감수해야했던 결과는 그녀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그것은 개인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단어는 없고 선택과 선택에 따른 포기만이 있었다. 틀림없이 선택을 통해 하나를 고르는 방법 그리하여 선택되지 않은 다른 것(들)을 버리는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다. 그러나 선택이 문제를 푸는 한 방법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조화와 균형이 이르는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조화와 균형에 다가서야하는 매일의 고민의 진원지를 싹뚝 거세해 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버린 셈이다. 일과 아이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가지를 선택한 경우에는 이 두 문제 사이의 고민은 없어진다. 조화 시켜야 할 것도 없고 균형을 잡아야 할 내면의 모순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저 한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개를 모두 끌어안고 그 둘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잡아 보려 애를 쓴다. 이것이 실제다. 그들은 매일 이 두 가지 문제를 잘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 이 고민과 노력이 중요하다. 일과 가족, 직장에서의 캐리어와 개인적 삶의 자유는 어느 것이 선택되고 어느 것은 버려져야하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기는 하지만 함께 어우러져야하고 함께 지켜져야한다. 따라서 이 균형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부등켜 안아야 하는 모순적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공존해야하고 상생해야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조화와 균형’ 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 좋은 방법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이다.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보자.

첫째는 일 속에서 돈과 캐리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 속에서 취미와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게 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일을 해 내게 되면 일 보다 훌륭한 놀이는 없게 된다. 굳이 외부에서 다른 개인적 활동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줄게 된다는 뜻이다. 일과 개인 생활이 공통분모를 많이 가짐으로써 일 자체가 놀이와 의미와 삶의 수단으로 회통해 들어가게 되면 일과 삶의 질 사이의 내면적 모순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모순 사이에 벽을 쌓아 두었던 울타리를 허물고 서로 왕래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방식이다. 일과 취미의 공유면적을 넓혀줌으로써 일이 취미와 흡사하고 취미가 일과 별로 다를 것이 없게 하는 것이다. 돈과 캐리어는 이런 몰입과 집중의 결과로 자연히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두 번 째는 일의 초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회사 내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부가가치 측면에서 그 수준이 다르다. 중요한 일도 있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덜 한 일들도 있다. 중요한 일에 초점을 맞추고 우선적으로 시간과 관심을 집중하면 중요한 영역에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다음은 중요도는 좀 떨어지지만 급한 일들에게 그 다음 우선순위를 주면 급한 부분에서도 크게 실수 하지 않는다. 나머지 사소하지만 늘 반복되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좋다. 회사차원에서 단순반복적인 것들을 자동 취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내면 많은 직원들이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적 처리 원칙을 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신의 프로세스를 정해 일괄 처리하게 되면 사소한 일에 시간이 많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 줄 수 있다. 결국 일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일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며, 필요 이상의 시간을 투입하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세 번 째는 일과 가정 같이 시간의 분배를 요구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구사항을 다루게 될 때는 시간의 양적 배분이 아니라 시간의 공유 방식을 달리해 주는 것이 좋다. 양적 배분만 가지고 고민하면 균형과 조화의 문제가 아니라 교환과 선택의 문제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즉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 가정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이때는 시간의 배분 방식을 달리해 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아직 잠자고 있는 아침에는 내가 필요치 않다. 일에 대한 투입량을 늘여야할 경우가 생겨나면 아침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 시간에 맞추어 퇴근할 수 있다. 일에 투입되는 시간의 절대량을 늘여야한다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공유 시간대를 피해 아침 시간대에서 시간을 더 빼내게 되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저녁 시간은 여전히 확보 될 수 있다.

네 번째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적절할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라고 말하는 것은 쓸데없이 얽히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풀어준다. 어디서든 ‘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한 가지 점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좋다. 그것은 먼저 ‘성과가 높은 직원’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훌륭한 성과를 내게 되면 권리 역시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선택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일과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과 가족에게 쓰이는 시간을 넉넉히 확보하기 위하여 다른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일상적인 술자리, TV 시청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중요한 것을 택하는 것이다. 조화와 균형은 중요한 것들 사이에서 둘 다 버리지 않고 둘 사이의 모순적 관계를 상생시키는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 예를 들어 일, 가정, 친구, 배움등은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삶을 받치고 있는 기둥같은 것들이어서 버려지는 순간, 삶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이윽고 전체적 삶의 궤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IP *.229.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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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영
2005.07.28 10:49:55 *.218.223.16
우연히 지인으 소개로 홈피에 들어왔는데..

아침마다 조금씩 읽으니 힘이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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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0:36:01 *.72.83.150

삶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

균형의 문제, 정답은 없겠지요.

마치 매일매일 조율해야하는 기타의 튜닝처럼, 무수한 시행 착오의 연속이겠지요.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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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10:37:50 *.212.217.154

선택, 그리고 조화와 균형

마치 춘추전국시대에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와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의 사상처럼 대비됩니다.


하지만, 그 두가지것도 서로 조화로울수 있지 않을까요?

평소에는 조화와 균형(회사와 삶의 조화)를 꾀하고,

하지만 종종 선택(퇴사, 이직, 전직)을 행하는 것이지요.


세상은 어느 하나의 생각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느낍니다.

좌 우의 날개로 새는 날아간다고 했던 고 리영희 선생의 말씀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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