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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4일 20시 05분 등록
‘창조적 부적응자’들을 위하여, 10월 24일, success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일찌기 ‘창조적 부적응자’라고 불렀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물방울 같아 바위 위로 자신의 몸을 부딪힌 인물들이다. 바위를 뚫어 깨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늘 ‘부적응자’로 불려졌다. 그러나 결국 세상은 그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 왔다. 그래서 그들을 ‘창조적’이라고 부른다.

창조적 부적응자 중의 한 사람을 고대의 중국에서 한 번 찾아보라면 나는 먼저 맹자를 들고 싶다. 그렇다. 바로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그 맹자다. 어려서부터 어미 속을 꽤 썪인 인물인 모양이다.

맹자는 공자가 죽은 후 100년 정도 지난 다음 태어났다. 세상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 가고 군왕들은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부국양병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진나라는 상앙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화했다. 초나라는 오기를 등용하여 싸우면 늘 이겼다. 제나라는 손빈을 등용하여 제후들을 누르고 그들의 조공을 받았다. 천하는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을 현명하다 여기는 시대였다. 공자의 인(仁) 은 힘을 잃고 천하는 이익을 다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맹자’의 제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대략의 요지를 옮겨보자.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왕이 말했다. “선생께서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 오셨겠지요 ? ” 맹자가 대답했다.

“ 왕께서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내 영지에 이익이 될까 만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민들 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서 서로 다투어 이익을 추구하면 나라가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만승의 천자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제후일 것이고 , 천승의 제후를 시해하는 자는 필시 백승의 대부 중에서 나올 것입니다. 만약 의를 경시하고 이를 중시한다면 남의 것을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진 자로서 자기 부모를 버린 자가 없고, 의로운 자로서 그 임금을 무시한자가 없습니다. 왕께서 오직 인과 의를 말씀하실 것이지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 ”

결국 양혜왕은 맹자로부터 원하던 대답을 얻지 못했다. 맹자의 사상과 정책은 이익을 따라 패권을 추구하던 군주들에 의해 채용되지 못했다. 부국강병을 국가적 목표로 삼고 있던 군주들에게 ‘평화적 정의’란 멀고 이상적인 공허한 변설이었을 뿐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안팎으로 여전히 싸움 중이다. 군부 독재의 억압과 인종간의 혈전과 종교의 대리전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자본의 무차별 공격을 보라. 세계 대전과 인종 청소로 얼룩진 ‘피의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폭력은 계승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선(善)을 믿기 어려운 시대에 그래도 몇몇의 창조적 부적응자들이 인생을 걸고 자신의 사상과 정책을 설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쉽게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이익을 다툼으로 시작하게 되는 싸움의 시대에 평화적 정의를 주장하던 맹자와 비슷하게 평화를 주장하는 창조적 부적응자들 몇 명을 만나 보자.

120 만명의 티베트인을 학살한 중국에 맞서 비폭력의 정신으로 맞서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우리는 중국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언젠가 서로 존경하며 돕게 될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는 평화가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요원한 것이라는 현실론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평화를 짓밟는 자들도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평화는 내면적인 성취’라고 말한다. “평화란 자비, 즉 염려하고 돌본다는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고통을 보면서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폭력이 아니다. 반면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심한 말을 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에게 비폭력은 굴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에 간섭하는 ‘적극적인 평화’인 것이다.

미얀마인들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고 있는 아웅산 수지는 달라이 라마를 무척 존경한다. 그녀는 “폭력이란 한동안 효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14년이나 되는 가택연금의 고통과 그 와중에 남편과 사별하는 슬픔을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얼굴에 흐르는 불가사의한 침착함을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평화는 단순히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적인 고요함입니다. 폭력도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 그것이 평화입니다.”

‘캄보디아의 간디’로 불리는 승려 마하 고사난다는 자신의 온 가족을 살해한 자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보내고 행동으로 평화를 실천한다. “미움은 미움으로 평정될 수 없다. 사랑을 통해서만 미움은 평정된다. 마음의 전쟁이 총으로 하는 전쟁보다 끝내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법이다”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평화를 실천하는 일은 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걸음을 잊으면 넘어지게 된다.”

코스타리카를 군대 없는 나라로 만든 오스카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도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중앙정보국(CIA)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국내 미군 기지를 폐쇄시켰다.

그도 평화란 일종의 ‘태도’라고 설명한다. “많은 땅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많은 결정의 결과로부터 문제가 만들어 진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철저하게 나뉘어 있는 세계에서는 진정한 평화는 없다. 평화는 하나의 태도이고 문제를 풀고 갈등을 해소하는 생활 방식이다. 평화는 우리에게 함께 살고 함께 일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그의 믿음이다.

지난 50여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공존을 주장해온 유대인 우리 아브네리는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을 처분해버릴 수 없고, 그들도 우리를 없애버릴 수 없다. 결국 함께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침팬지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제인 구달은 인간 정신 속에 잠재된 공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인간들은 공격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등하게 인간이 그런 공격성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인간의 진화는 육체적인 것에서 문화 도덕 정신적인 진화로 진행되어 왔다.”

폭력적 현실에서도 미래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평화의 미래’의 저자인 스코트 헌트는 평화를 원한다면 철저한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과 선한 마음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진 낭만주의자 말이다.

그는 이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자비는 생생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곳곳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절제와 친절과 선한 행동들이 실천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만한 것이다.”

이 믿음 없이는 냉혹한 현실에서 내면의 평화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인간의 선의를 믿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엘라 간디는 ‘평화가 없이는 행복도 없고, 평화가 없이는 정의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인류가 존속을 위해 택해야하는 절박한 선택인 것이다.

나는 다시 양혜왕과 마주 앉아 있는 맹자를 떠올린다.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맹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 아무 곳에도 쓰이지 못하는 생각과 정책을 껴안고 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의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 당시와 다를 것 없이 이로움을 좆아 편승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혼란과 피의 현실 속에서 평화는 지난한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 없이 살 수 있는 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아마 평화의 경영이 필요한 것일 것이다.
IP *.229.1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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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섭
2005.11.21 11:07:06 *.96.112.253
새로운 소식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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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2005.11.28 11:04:46 *.79.169.168
좀 어렵습니다. 쉽게 빨리 읽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럼에도... 진하게 와 닿는 단어가 있네요. 평화의 경영...
고맙습니다. 겨울의 길목에서 편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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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2005.12.19 12:21:54 *.143.240.202
인간으로써 영원히 풀지 못 할 숙제인것 같네요,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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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기
2006.01.13 13:45:23 *.253.124.36
조직 내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보려는 사람은 어쩔수 없이 고독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고독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성찰할 수 있다면 마음의 평화를 느낄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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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0:59:50 *.212.217.154

시대를 뛰어넘어,

세상에 이해되지 못하는 

창조적 부적응자가 되는것은

어느시대에나 쉽지 않은일이겠지요.


창조적 부적응을 현실에 땅 디딜수 있다면,

또 다른 기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도약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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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9 23:03:43 *.212.217.154

평화란, 그것을 지킬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때 유지할수 있을것입니다.


한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지여사가,

지금에서는 자국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의 말살정책을 묵인하고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요?

사실 인간 본성을 넘어선 다수의 원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직 평화만을 외친다면 그것은 헛된 구호일수 있습니다.

한손에는 부드러운 실크장갑이 있다면

다른 한 손에는 무시무시한 몽둥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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