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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6일 23시 20분 등록
천천히 그러나 탁월하게, 다카하시 슌스케, 토네이도 (이코노믹 리뷰 서평)

슬로우 거리어 - 우연을 필연으로 바꿔라 (이코노믹 리뷰)

이 책은 일본인이 쓴 책 중에서 꽤 좋은 책이다. 일본인들은 여러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업적과 성과를 남겼지만 신기하게도 자기계발과 경영서로 괜찮은 책은 거의 전무하다. 전에 나는 필요해서 수 백권의 일본 경영서를 훑어 본 적이 있다. 그 중에 딱 한 권 좋은 책이 있었다. 마사아키 이마이가 쓴 ‘카이젠’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내용이 매우 충실해서 그 당시 나를 감탄하게 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변화 경영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일본의 성과를 모니터링 해야 했기 때문에 주요한 저서들을 훑어보았지만 매번 나를 실망시켰다. 대체로 일본인들의 경영서는 이론이 정치하지 못하고, 뻔한 상투어로 점철되어 있고, 방법론이 치졸하다. 글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성이 엉성하고 내용조차 부실한 주제에 대하여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랜만에 주목해야할 일본 저자의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직장인들의 경력 관리를 위한 매우 유효한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힘은 저자가 일본인으로 미국의 컨설팅업계의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일본과 미국 모두를 아울러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저자 나름의 혜안을 얻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통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

우선 저자는 직장인들이 지나치게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인 선택에 내몰리며, ‘ 이 세상은 경쟁 사회며 서두르지 않으면 패배자가 될 것이다’라는 잘못된 가정 위에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한 상승 의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몰아 붙여 성공에 질식하도록 만들었고, 서둘러 상승 가도를 달려올라 간다. 그들은 자신이 늦을까봐 항상 초조하다.

반대로 똑같이 인생은 승자와 패자로 나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찌감치 출발선상에서 이미 자신은 승자가 될 수 없다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에 5 % 수준이었던 일본의 청년 실업자의 비율은 10년이 지난 2004년에 들어 25% 까지 증가했다. 그들은 정규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로 부가가치가 별로 없는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리는 프리터 freeter 가 되었다. 모두 적절한 경력관리의 모형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가지고 훌륭한 경력 관리를 하려면 모두 스스로의 재능을 발굴해 낼 수 있는 쉬링크 shrink 가 되어야 한다. 마치 정신과 의사처럼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잠재 의식 속에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 지, 그리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어떤 방법론을 쓸 것인지를 치밀하게 연구해야한다. 이때 자신을 재료로 과거의 경험을 연장하는 대신 미래를 보다 자유롭게 디자인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만일 자신이 상승지향성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활용하면 좋다. 이들은 경영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타입이다. 상승지향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력 관리의 대표적인 원칙이 바로 컨설팅 업체에서 일반적으로 운영되는 ‘up or out' 이다. 적정한 직책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승진하지 못하면 나가야 하는 불문율이다. 정년 직급제 역시 이런 유형으로 상승의지를 부추기고 경쟁의식 속에 조직의 구성원을 몰아넣는다.

상승지향이 강한 사람들은 대략 3가지의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상승지향이 강하지만 매사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자율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사내 승진을 통해 상승 지향성을 만족 시키는 길을 걷는다. 한편 상승지향은 강하면서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통해 지위를 높혀 가는 잡 호퍼 job hopper의 길을 걷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상승지향과 자율성이 모두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주는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가 창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상승의욕이 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살고 싶어 한다.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의욕에 불타며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다. 자신의 의욕과 재능에 맞게 경력을 관리해 가는 것을 저자는 슬로우 커리어라고 부른다, 아마 패스트 푸드에 대한 반대말이 슬로우 푸드이며, 좋은 음식이라는 뉴앙스를 차용해 오고 싶었던 모양이다.

슬로우 커리어를 위한 가장 그럴 듯한 방법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슬로우 커리어의 핵심이다. '계획된 우연 이론‘ planned happentance theory 은 원래 스탠포드 대학의 존 크럼볼츠가 제안한 것인데 대략 다음과 같다.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은 지나치게 목표 중심적인 사람들을 양산해 냄으로써 스트레스를 가중 시켜 왔다. 특히 미국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결국 당신을 조정할 것’이라는 사회적 강압이 심한 나라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일반 직장인들의 커리어 중 80% 는 우연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결국 계획적으로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 것 보다는 우연히 주어진 일이 자신의 경력이 된 경우가 태반인 셈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연을 즐거운 필연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좋은 우연이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평소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예를 들어 평소에 기회를 부르는 행동을 꾸준히 할 것, 직감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단 실행에 옮겨 볼 것,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인성을 닦아 둘 것등을 권장한다. 뿐만 아니라 커리어를 전환 할 때는 미래를 절대로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구축하지 말아야 한다. 무리하게 과거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커리어만을 고집하지 말고 마음의 흐름을 따라 과감하게 자신의 기질과 욕망에 따라 도전해 보라고 권고한다.

특히 새로운 전직과 이직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회사는 피하라고 말한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회사, 경영자가 지나치게 지배욕이 강한 회사, 직원 상승지향성만 부추기는 회사 그리고 직원의 현장에서의 판단보다는 매뉴얼에 따라 일하기를 바라는 회사는 슬로우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대신 조금 둘러가는 느낌이 들더라도 다음과 같은 회사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서열을 중시하지 않고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회사,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에 대하여 집착과 고집이 있는 회사, 직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회사, 개인의 가치관과 비전을 물어주고 권장해 주는 회사, 그리고 자율적이고 개인적 기질에 맞는 자율적 커리어를 지원해 주는 회사를 찾으라는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어른이 되면 포기하게 되는 비현실적 상상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정보에 의한 판단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상을 통해 직감력을 강화해 보라고 권장한다. 체 게바라의 유명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항상 불가능에 대한 꿈을 꾸자” 여전히 내용의 부실에 아쉬움이 남지만 통찰력이 강한 얇고 쉬운 책이다. 놓치면 아까운 책이다.
IP *.128.2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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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구
2007.05.17 13:13:57 *.90.26.2
개인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회사, 지구언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회사, 개인의 가치관과 비전을 권장하는 회사 .... 아, 그런회사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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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
2007.09.02 23:46:58 *.127.163.84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이 슬로비족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자율적 커리어를 인정해 주는 회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율적인 커리어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개인의 역량 또한 필요한 부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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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0 14:16:26 *.212.217.154

제가 만들려는 조직의 핵심을 콕 짚어주었네요^^

세계 어디서나 좋은것에 대한 요구는 통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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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6 18:38:03 *.212.217.154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의 유명한 문구가 떠오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지요?

수평적이고 조직원들 개개인을 놓치지 않는그런조직.

제가 만들고 있는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함께 오래할 수 있는 회사.

그런 조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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