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구본형

개인과

/

/

  • 구본형
  • 조회 수 7297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8년 1월 23일 13시 56분 등록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친해지는 법, 2007년 1 월

자기계발의 전문가들은 성공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그래’ 라고 동의한다. 그러다가 이내 어두운 얼굴로 다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은 그 일이 아니야.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차 잘 모르겠어. 분명한 것은 그 일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아니라는 것이야” 이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일은 품삯에 지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은 사라지고, 우리의 미래 역시 공사를 중단한 건물처럼 흉물스러워진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답답해하는 일이지만 뾰죽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친해지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방법을 알면 일이 스스로의 비밀을 털어 놓게 만들 수 있다. 사람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듯이 일도 역시 우리가 조금씩 길들여 가야 하는 것이다.

일과 친해지는 첫 번 째 단계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신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맡은 일이 시시한 일이라도 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빨리 이 일을 벗어나는 지름길이라는 역동적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종종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위대한 스승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들여 주기를 원하지만 몇 년 간 부엌데기나 불목하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세월을 참지 못하면 비법을 전수 받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의 냉정함에 화를 내고 떠나지만 주인공은 참을 수 있을 때 까지 묵묵히 참는다. 그 때 돌연 스승은 은혜를 베풀어 그를 진정한 제자로 맞아들이게 된다. 영웅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패턴이다. 성실은 위대한 사람으로 가는 분명한 자질이기 때문에 스승은 제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지 시험한다.

휼렛 패커드 최초의 여성 회장이었던 칼리 피오리나의 첫 번 째 직장은 중개사무소였다. 그녀는 거기서 서류를 작성하는 행정 타이피스트였고,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주기도 하는 잡무를 했다. 그녀는 그 일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하나의 확실한 목표를 세웠다. ‘지금 이 일을 아주 잘하리라. 누구보다도 먼저 이 사무실에 나올 것이고 누구보다도 늦게 사무실을 떠날 것이다. 부지런함에 있어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를 뽑은 사람이 정말 잘 뽑았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바로 이 자세가 역설적으로 그녀를 잡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일이 주어지는 모습을 보면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나를 밟아야 다음으로 오르게 되어있는 구조 말이다. 지금 단계의 계단을 밟지 않고는 다음 층으로 오를 수 없다. 계단은 도약을 허용하지 않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천천히 한발 한발’ 이라는 성실함은 모든 비상과 도약의 기본적 토대다.

두 번 째 단계는 지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방식을 나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바꾸어 줌으로써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을 그저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우직한 자세만으로는 부족하다. 현명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나답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그 방법을 찾는다면 스스로 동기 부여도 될 것이고, 단순한 책임 의식에서 일을 처리했던 지루함에서 일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어떤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김남희씨는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IBM, HP, 모터롤러등의 외국계기업에서 비서와 인사담당자의 경력을 거쳐 왔다. 한국 최초로 외국계 회사의 인사 담당 임원이 된 그녀의 성장 비결은 복사의 기술에 있었다고 말한다. 복사할 때 그녀는 먼저 복사기의 유리판을 잘 닦았다. 그리고 종이를 가지런히 놓고 복사를 한다. 그녀는 복사의 달인이 되었다. 그녀의 복사는 깨끗하기로 유명한 복사였다. 복사한 상태만 보아도 그녀의 복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상사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복사지 한 장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 지를 읽어 내게 된다. 복사 한 장도 이렇게 잘 해낼 사람이면 더 큰일을 맡겨 볼만하다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작은 일을 유추하여 큰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게 된다. 일을 시켜보고 그 일의 결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보다 확실한 검증의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세 번 째 일과 친해지는 단계는 일의 과정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통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게 되었다. 경영의 혁신과 업무 개선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변화의 요구가 치열하여 경영자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때는 그럭저럭 버텨나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경영자의 지원을 얻어 내기 어려운 때는 수없는 난관에 부딪히는 업무였다. 그래서 스스로 전문성으로 자신을 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그것은 업무라기보다는 연구였다. 실험실에서의 연구가 아니라 연구의 결과를 현장에서 실험하고, 실험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고 더 좋은 개선안을 찾아내야하는 실제 상황의 실험이었다.

연구과 실험은 내게 잘 어울렸다. 만일 내가 그때 경영혁신의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 만족했다면 그저 오랜 동안 이 분야에 근무한 행정가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퇴직하여 별로 할 것 없는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연구와 실험과 기록은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게 했다. 그 당시 근무할 때는 잘 몰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약간의 글쓰기 재능이 16년 동안의 혁신 경험과 만나는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변화경영분야의 전문 작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었다. 과거의 경험은 미래의 잠재력과 가장 창조적인 형태로 결합되었다. 나는 일과 친해지면 일이 그 비밀을 털어 놓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사실이 그렇다. 지금하고 있는 일에 애정을 가지고 밀착하면, 그 속에서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요소들과 부가가치가 높은 빛나는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작고 단순하고 하찮은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그런 일만 하며 살지는 않는다. 작은 일들은 큰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시시한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다. 지루하고 작은 일들은 훌륭한 수련의 도구들이다. 이 일을 내 방식으로 차별적으로 잘해내면 조직의 훌륭한 눈들이 그 사실을 반드시 알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에게 합당한 일을 맡기게 된다. 설사 그들이 몰라준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일의 비밀의 문을 열고 자신의 전문 분야로 입문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지게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미래로 가는 가장 안전한 티켓이다.


IP *.128.229.81

프로필 이미지
김하늘
2008.04.28 08:17:51 *.132.78.25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잘한다는것은 중요하다.
복사를 아주 잘해서 인정을 받아 복사를 한것만 보아도 누가했는지
알수있다고 한 대목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도 아주 평범한 일을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야무지고,똑부러지게
해서 인정을 받아야 해야겠다.
프로필 이미지
2016.02.07 15:56:35 *.212.217.154

한잔의 커피라도, 진심과 정성을 담아 감동받을수 있게 노력하기.

초심을 지키기는 것이 힘들지만, 결국 모든것의 시작이겠지요.

스스로에게 신실할 수 있다면, 

그 진심이 결국 타인에게도 전해질 수 있음을 믿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7.09.02 19:59:02 *.197.4.219

내가만약,

예전 직장생활 할 때 이 글을 읽었더라면,

'과연 그렇군!'이라 수긍하면서 글을 읽었을까?

회사를 저주하고, 내 일을 혐호하는 일을 마치 마법처럼 바꿀수 있었을까?

'견디는'일 또한 중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듯,

나와 맞지않는 직장을 걷어 차 버리는 용기 또한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 삼년전 (통쾌하게)걷어 차버린 직장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서.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