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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3일 14시 18분 등록
‘주역’,(초아 서대원 역해), 추천사 2007년 1월 4일

(초아 선생의 '주역'이 곧 을유출판사에서 재출간됩니다. 그 책의 추천사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권고가 있어 즐겨 한마디 쓰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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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중반,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나 역시 길을 잃고 두려움 속에 있었다. 아니다아니다 하며 남의 길을 따라간 지 20년이 넘어서야 그 길을 버리고, 길 없는 길을 찾아나서야 내 길이 된다고 우겨 내 길을 걷게 되었다. 마흔 살 10년은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반전이 만들어진 시기였다. 나는 내 길을 찾은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네가 살고 싶은 바로 그 삶이냐 ?" 이렇게 물으면 나는 이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춤추듯 이 길을 아주 멀리 끝까지 가고 싶다.

쉰 살이 지나 나는 주역이 보고 싶어졌다. 아마 내 길이 어디까지 닿게 될 것인지 그것이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젊어서 방황하던 불확실한 인생의 한 가운데서 그 불안을 줄여보고자 주역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몇 가지의 점치는 법을 익혀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이 책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수 십 년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이 책이 읽고 싶어 한달음에 책방으로 달려갔다. 이 어려운 책에 대한 버전은 아주 많다. 정평이 나있는 몇 권의 책들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주해한 책도 발견하였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골라 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략 훑어보다가 나는 이 책을 책 바구니에 골라 넣었다.

책을 고를 때 나는 까다로운 편이다. 저녁밥은 아무것이나 먹어도 책은 아무 책이나 고르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다. 그것은 젊었을 때의 가난이 가지고 싶은 여러 책들 중에서 꼭 한권 밖에는 고르지 못하게 한 탓이기도 하고, 아무 책이나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정신적 타락으로 여겼던 일종의 지적 허영이기도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거의 아무 책이나 사들고 들어오는 수준이다, 그래도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까다로운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내가 저자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책을 골라 넣은 까닭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의 49번 째 궤를 펴들었다. 그것은 ‘혁,革’궤였다. 평생을 변화경영전문가로 살아오면서 나는 이 단어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그래서 도대체 주역은 이 단어에 대하여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지 알고 싶었다. 그 부분을 뒤적이다 ‘혁언삼취유부’(革言三就有孚)라는 글귀에 눈이 머물렀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해 두었다.

“혁언은 세 번 성취되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혁언은 혁명과 개혁에 대한 논의와 공약이다. 이런 혁언은 세 번 거듭 성취되어야 비로소 백성과 민중의 신망이 쌓인다는 말이니,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서 성취해야하는 것이 혁명이요 개혁이라는 의미다”

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뼈 속까지 겪어 본 사람이다. 혁명과 개혁은 성과 없이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념으로 시작하지만 성과 없이는 금방 무너져 내리는 것이 바로 혁명과 개혁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수를 무수히 반복하는 것이 바로 혁명과 개혁인 것이다. 이 어려운 책이 종종 무릎을 치게 하는 이유는 어쩌다 알아들은 몇 마디가 이렇게 사무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책도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해 둔 책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후 우연찮게 나는 제자들과 함께 부산으로 저자를 찾아 갔다. 30년간 역술인으로 살았던 저자는 이 책이 정통 주역학자로부터 어떻게 평가받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하였다. 책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요청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인가 나쁜 책인가는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이 판명할 것이다. 그러니 오직 독자에게 물어 보는 것이 옳은 길이라 말했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이 책이 어느 주역 책도 가지지 못한 장점은 쉽게 풀어 써 나같이 이 분야에 무지한 사람도 끝까지 읽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무릎을 쳤다. 주역의 힘인지 주역을 해석한 저자의 힘인지 나는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볼 때 보다 이 책을 볼 때 무릎을 친 일이 더 많았으니 주해자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폼을 잡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혼자 깨달은 척하는 위선이 없다. 아는 것을 아는 만큼 표현해 두었기 때문에 이 책에는 감춤이 없다. 학문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감추지 않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주역의 역해서가 주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이 보다 더 쉬울 수 없다. 주역에 관심이 있다면 가장 처음 보아야할 입문서가 아닐 수 없다.

- 구본형 -


* 초아 선생이 나를 처음 만난 날, 선생은 내게 '日山' 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 호가 너무 커서 즐겨 쓰지 못했다. 내 집의 아침은 늘 동쪽 산 넘어에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시작하니 그 보다 더 적합한 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작은 사람이라 이 호를 쓰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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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1.30 05:06:20 *.70.72.121
사부님의 저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절절히 녹여 흐물흐물 흠모함이 마치 연애편지처럼 깊사옵니다.

한사람의 생애가 다시 진흙 속의 연꽃을 피워올릴 것만 같습니다. 제가 다 엎드린 감사를 전하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어찌 읽지 않고 배기리이까. 부족해도 사부님의 사랑을 따라 배우도록 힘껏 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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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8.02.06 19:10:03 *.18.196.38
솔직히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이미 다른 분이 주해한 주역을 한번 읽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책을 서대원선생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읽고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점은 을유출판사에서 나오는 날로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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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7 15:52:24 *.32.9.56

오늘에서야 선생님의 호를 알게 되었네요!

일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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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4 12:33:38 *.143.63.210

흔히들 점과 운의 해석으로 알고있는 주역을

철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본다니 새롭습니다.

주문하여 차분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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