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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일 12시 01분 등록


[......]


여자가 여자에게 이르노니 타인이 당신에게 원하는 대로 되지 말아라.
그 중에서 당신도 원하는 것만 취하기를 바란다.
아니면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정신병자가 되리라.


부모는 딸에게 착한 애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너무 착하면 미련하다고 한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고 너그럽기를 바란다. 예쁘기를 바라고 점잖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보다 더 잘난 사내를 만나서 여왕처럼 대접받기를 바란다. 이만하면 벌써 미친 여자 만들기 첩경 아닌가? 당신의 부모는 어떠신지 ...


직장에선 당신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기 바란다. 동시에 창의력이 있기를 바란다. 돈을 조금 받아도 신경쓰지 않기를 바란다. 일은 아무리 많아도 불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필요 없을 때에 나가 주기를 바란다. 바보와 현자를 접붙여도 그런 사람은 안 나온다.


남편은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의 결함만은 모르기를 바란다.
유능한 일꾼이기를 바란다. 동시에 나서지 말기를 바란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여자이기를 바란다.
허나 돈 얘기는 할 줄 모르기를 바란다. 그가 아프거나 마음 상했을 때에 위무의 손길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당신 자신은 아프지도 말고 우울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건 유난히 이기적인 남자의 소망이 아니다. 보통 남자의 당연한(?) 소망이다.


시부모는 당신이 효부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당신이 효녀를 겸하면 그닥 즐겁지 않다.
당신이 남편에게 극진하기를 원하며 남편은 당신에게 무심하기를 바란다.


그 모든 고비를 넘거나 피하거나 아무튼 지나고 나면 가장 큰 고비가 또 있다.


아이들은 당신이 밥이기를 원하고 법이기를 원한다.
먹기 싫으면 버릴 수도 있는 밥이고 불편하면 깔아 뭉갤 수도 있는 법. 뭐든지 다 알되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라야 한다. 필요할 때에는 항상 옆에 있어야 하고 어떤 때에는 아는 척 안 해도 되는 엄마.


그 모든 장단에 다 놀아난다면 당신은 여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이 아닌 한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의 요구는 다 정당하되 당신 사정에 따라서 묵살하는 당신이 더 정당하다. 단언하건대 그들 누구건 당신이 정녕 그들의 취향대로 살을 깎아 당신을 번형시킨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을 경멸할 것이다. 왜? 그들의 주문대로 나온 제품은 실상 괴물밖에 더 있겠는가.


바람이 당신더러 풀이 되라 한들 당신이 소나무라면 안 된다. 꺾일지언정 풀이 되어 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부모가 원하는 딸, 남자가 원하는 여자,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 ... 그 모두에 함정이 있으니 사람의 바람이란 결국 바라는 사람의 꿈일 뿐이다.
그들로 하여금 꿈꾸게 하고 당신은 당신의 꿈을 꾸기 바란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


- 윤명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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