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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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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7일 08시 38분 등록

봄비가 옵니다. 봄비에는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습니다. 서서히 조금씩 은밀하게 스며드는, 마치 ‘절대로 넘치지 않고 스미리라’는 의지가 돋보이는 비지요. 간혹 이 느림을 참지 못하고 진중치 못하게 쏟아지는 때도 있긴 해요. 그때는 화난 사람 같습니다.

작년에 우리 집 처마 끝에 물받이를 달아 두었습니다. 전에 살던 주인은 그냥 낙수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놓아두었는데, 테라스를 만들면서 물이 튀어 오르지 못하도록 동판으로 물받이와 홈통을 달아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반짝여서 눈에 거슬리더니 이제는 녹이 앉아 집의 나이와 걸맞게 보기 좋아졌습니다. 비가 오면 홈통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을 깨울 만큼 퉁퉁거리지요. 이 소리가 싫지 않습니다. 종종 어린 시절로 통하는 통로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밤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곤궁에 처해 있고,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단 한가지 생각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생면부지의 사람을 돕는다. 이를 위해 때로는 자신의 목숨 까지도 던진다... 이것은 ‘네가 그것’ 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 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깨달음이 섬광처럼 지나간 결과다... (이 근원적 통찰은) 나의 참된 내적 존재가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 안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 쇼페하우어, ‘도덕의 기초에 대하여’, 중에서 ) .

간혹 밤에 깨어 일어나면 그 비가 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간혹 나는 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모든 생명과 사물 속에도 내가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신화학자인 죠셉 켐벨은 이것을 우주의 ‘신비로운 떨림 mysterium tremendum' 에 의식이 깨어나는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네가 바로 그것‘(Tat tvam asi, 산스크리트어)이라는 영적 공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당신이 아닌 다른 것 속에 당신이 들어 있는 것 같은 우주의 떨림을 체험해 보세요. 그녀 속에, 그 사람 속에, 지나가는 행인 속에, 풀 속에, 가로수 속에, 노래 속에, 그리고 봄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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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
2005.03.17 12:13:42 *.82.18.202
사시나무는 미약한 바람에도 뜰림을 합니다. 오늘 떨고싶습니다. 봄비가 내린후의 화창함에 감동의 떨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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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
2005.03.18 00:13:46 *.84.254.166
우리 모두는 우주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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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7.01.26 14:36:38 *.86.31.59
어떤 우화속에 짧은 말이 지나가네요. 'who is this?' 'i am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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