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자유

주제와

  • 구본형
  • 조회 수 158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5년 3월 27일 22시 45분 등록

며칠 전 섬진강 다압리 매화가 한창이었습니다. 산청에서 강연을 마치고 우리는 하동을 거쳐 섬진강 자락을 따라 그 아름다운 모래톱들을 즐기며 매화 마을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곳곳에 홀로 핀 매화꽃들에 감탄했습니다.

매화의 아름다움은 아무 것도 없는 아직 황량한 겨울 들판에 갑자기 유일하게 봄을 뿌린다는 점입니다. 나로 인해 봄이니라. 이 당당한 외침을 조용히 수줍게 속삭인다는 것이 매화의 예쁨입니다.

매화는 외로운 꽃입니다. 떼거리로 모여 있으면 오히려 그 멋이 반감되는 묘한 꽃입니다. 벚꽃이 함께 있을 때 그 화사함의 극치에 달하는 것과 달리 매화는 홀로 있을 때 고귀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다른 꽃입니다.

남도에서는 매화가 피고 질 때 쯤 되면 벚꽂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벚꽃이 지기 시작하면 산수유가 한창입니다. 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돌아 오는 길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 천리향 한 그루를 사서 차에 실고 왔습니다. 현관 앞에 심어 두었더니 문을 열 때 마다 향기 가득합니다.

꽃은 경제적 성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꼭 필요합니다. ‘꼭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바쁘고 일이 많으면 사랑도 일이 되고 노동이 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잃게 됩니다. 살면서 꽃을 즐길 수 없으면 삶이 노동이 되고 그래서 삶을 잃게 됩니다.

풀, 꽃, 달팽이, 지렁이 같은 것들이 어디 있는 지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삶을 데리고 놀 수 있습니다. 도처에 놀 것 가득하여 하루를 심심찮게 보내는 어린아이들처럼. 이번 주말이 그렇길 바랍니다.

******************************************************************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無邊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작은 미물微物이라도 찬란한 꽃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온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를 상상해봅시다. 한마디로 장엄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깨닫는다는 것, 즉 각覺이란 이 연기의 망網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좁은 사고의 함정을 깨닫는 것입니다. 개인이 갇혀있는 좁은 사고의 함정을 깨닫는 것입니다.....

불교 철학의 관계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 이미지는 인드라의 그물입니다. 제석천의 궁전에 걸려 있는 그물에는 그물코마다 한 개의 보석이 있습니다. 그 보석에는 다른 그물코에 붙어 있는 모든 보석이 비치고 있습니다. 모든 보석이 비치고 있는 이들 모든 영상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영상도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또 다른 보석에 비치고, 당연히 그 속에는 자신의 모습도 비치고 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영상이 다중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 신영복, '강의' 중에서
IP *.229.146.5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