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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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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8일 11시 06분 등록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
며칠전 무더운 밤들이 이어진 것은 가을로 가기 위한
마지막 걸음이 아니었는지,
곧 왜성과꽃이 피어나고 공작초 더 무성하게 피어나리라.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보랏빛 벌개미취 연한 꽃잎들은
햇살이 밟고 간 자욱 간지러운지 이리저리 몸 뒤채고 있다.
흰꽃망울 탱탱하게 부풀리고 있는 옥잠화는 곧 꽃이파리 열어
은밀한 내부를 보여 주겠지.
해거름 밭에 나가 줄무늬 자국 선연한 노오란 참외를 한 바구니나 따낸다.
특유의 단맛을 내면서 한껏 살찌고 무르익어 삶에 대한 집착에어 놓여날 때,
바로 그 순간에 따내는 참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하게 내 손으로 들어온다.
흐르는 물에 슬슬 씻어 껍질채 베어문다.
엄마 품에서 갓 나온 그 것들은 연하기 이를데 없이 아삭거린다.
여름날 작열하는 햇빛과 몇 포기의 바람과 무수한 사선들의 군무인 빗줄기로
단물 내내 쟁여놓았던 참외는 내 혀끝에서 더 이상 낼 수 없는
단맛의 세포를 자극한다.
자연이 가져다준 선물이기에 혼자 먹는다는 것은 욕심이다.
느티나무 아래서 두런거리며 고구마줄기 다듬고 있는 아낙과 그의 남편과
또 다른 이웃들과 달게 나누어 먹는다. 자연이 마련해준 성찬을......

여름과 가을사이에서 누릴 수 있는 이런 날들,
유년 시절에는 늘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곧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할머니댁 고향을 떠나 도회지 부모곁으로 가서
개학준비를 해야한다는, 이제 여름날 누렸던 고향의 아름다운 빛깔들과,
방학내내 나누었던 고향 동무들의 우정과도 작별해야 한다는 슬픔으로
우울한 나날이 며칠간 계속 되었다.

이 무렵이 되면 자연의 미세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이 발달한다.
완벽한 화음을 내며 각자의 소리를 잃지 않는 풀벌레 소리들,
풀밭에서 메뚜기의 통통 이리저리로 건너는 소리들,
소슬바람에 망초꽃대(이제는 씨를 가득 달고 있는) 흔들리는 소리들,
대숲에서 벌어지는 꿩들의 푸드득거림들......
검은 바탕에 작은 황금무늬 줄이 화려한 거미가 희미한 이슬방울 단 은실에
매달린 채 살금살금 미끄러지는 모습도 보인다.
흡족한 먹이감을 챙기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리라.
일부러 여기저기 널려 있는 거미줄을 걷지 않고 그의 삶을 관찰하기도 한다.

둔탁한 옹기에 담겨 있는 푸른색 물칸나 잎엔 늘 조그만 청개구리가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청개구리는 햇살을 만끽하려고 그렇게 납작하게 몸을 붙이고 있나 보다.
햇살 받은 그의 몸피가 쪼글쪼글하다. 한 2-3cm쯤 되려나.
연약한 그 녀석의 피부를 살짝 손으로 문질러 본다. 크게 놀라지도 않고
계속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이런 날들은 기껏해야 9월 중순까지 혹은 좀더 길게 지속될 것이다.
늦여름의 내리쬐는 태양으로 이미 팬 벼이삭들은 더욱 여물어 갈 것이고,
메마른 고구마 밭의 짙푸른 줄기들은 땅속에서 주렁주렁 자식들 매달고
안간힘 다해 젖줄 물리며 실하게 키우고 있을 것이다.
첫물 고추 따내는 아낙의 머릿수건 위에 곱게 부숴지는 햇살들,
인위적인 굉음을 내며 까치들 쫓아대는 배과수원에선
못생긴 배들 단맛 고우려 뜨거운 태양아래 마다않고 몸 드러내고 있을 것이고,
따가운 볕 아래 다홍빛 윤을 내며 건조되어 가는 붉은 고추들,
단단한 푸른가시 속에 영글어갈 밤톨들......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덧없고 얼마나 빨리 작별을 고할 것인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마음으로 늦여름의 그들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모든 것을 냄새 맡고 싶다. 나의 모듬 감각기관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
그들을 취하고 싶다.
설겆이 할때마다 열어놓은 부엌창으로 밀려드는 풀밭의 늦여름 향기를
안으며 이 풍요로움이 내 감각에 제공하는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맛볼 것이다.

열사흘 달, 그의 사르락거리며 끝없이 불러대는 유혹에 못이겨
결국 불려나와 희붐한 달빛 내려앉는 탁자에서 로즈마리차를 한 잔 했다.
로즈마리의 향그러움과 늦여름 밤의 소슬거림에 문득
홀연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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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곳 포항은 그저께 밤부터 선선해졌습니다.
한치 오차 없는 자연 순환의 경이로움입니다.
말복 지나고 팔월 중순 넘어서면 희한하게도 선선해지거든요.
어제, 칠월 열 사흘 달이 앞산 여인의 젖무덤 같은 능선에 걸릴적에
전신에 달빛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도 민트향 같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IP *.122.6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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