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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0일 20시 38분 등록

원잭 : 이제 조금 무거운 질문을 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앤디 : 노파심이 많으시군요..^^ 보시는 것처럼 이제 백살을 눈앞에 든 사람에게는 무거운 질문이 될만한 것은 거의 없지요. 혹시 토미나 브룩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또는 제 아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군요.

원잭 : 먼저 브룩스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그의 죽음이 앤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앤디 : 사실 저보다 레드가 충격을 많이 받았죠. 우린 브룩스가 자신의 결행을 앞두고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는데, 레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죠. "그는 여기서 죽었어야 했어". 레드야말로 브룩스처럼 교도소에 가장 길들여져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심경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레드의 심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그들처럼 생의 절반 정도를 쇼생크에서 계속 보내게 된다면 내 자신을 잃어버릴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길들여질 수는 없다고 속으로 다짐했었죠. 그때까지도 전 죄수번호 '37927'이 아니라 앤디 듀프레인이었으니까요.

원잭 : 당신의 극적인 삶에 매료되어 자신의 아이디를 지금 언급하신 죄수번호 '37927'로 쓰고 있는 네티즌이 있다고 하던데..

앤디 : 저도 사실 예전 영상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죄수번호가 그런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앤디 듀프레인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런 숫자로 기억되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군요.

원잭 : 토미의 죽음은 훨씬 더 당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건으로 생각되는데..

앤디 : 제가 교도서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또 하나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던 일이 토미와 같은 젊은이들을 돕는 것이었죠. 그 일은 시간이 남아도는 죄수들의 킬링타임용으로만 폄하되기에는 훨씬 더 보람이 있는 일이었죠. 그중에서도 토미는 제가 아끼는 영리하고 유쾌한 제자여서 더욱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미에게서 뜻밖의 얘기나 흘러나왔죠. 잠시동안 전 그 친구덕분에 제 무죄가 밝혀지고 당당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혔죠. 저는 여전히 순진한 희망을 품고살던 멍청이였던겁니다. 노튼소장의 악랄함을 과소평가한 대가는 매우 참혹했습니다.

그가 토미를 해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독방에 있던 저를 찾아와 대놓고 그 사실을 얘기하며 위협하던 소장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두달 동안의 독방생활과 토미의 죽음, 날아가버린 무죄방면의 꿈 등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아내를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그 아픈 실수의 대가를 이곳에서 치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리 다른 죄수들과 다른 대우를 받아도 쇼생크는 교도소일 뿐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 주었죠.

그리고 전 결심했습니다. 쇼생크를 떠나기로. 그리고 내가 이전의 사회에서도, 쇼생크에서도 다른 이유로 선택할 수 없었던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친구와 살아갈 것을 말입니다. 물론 레드에게조차 탈출이 성공하기전까지는 제 계획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에둘러서 그에게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단서를 남기는 수 밖에는요.

원잭 : 그때 레드와 당신이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나는군요. 레드는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었죠.. 그때만 해도 레드의 말처럼 당신의 이야기는 실현될 수 없는 꿈처럼 들렸던거 같아요.

앤디 : 지금도 레드는 그 당시를 회고할 때면 몸서리를 칩니다. 제가 분명 브룩스처럼 자살할 것으로 확신했다나요. 그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보였을겁니다. 제가 미리 준비한 탈출구가 없었다면 진짜로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원잭 : 적어도 토미의 일로 독방에 들어가기전에 탈출구는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맞다면 왜 좀 더 빨리 실행에 옮기지 않았나요?

앤디 : 맞아요. 독방에 들어가기 몇개월전에 이미 탈출구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죠. 토미도 그렇구 레드도 그렇구 정리가 필요하기도 했구.. 어쩌면 저 역시 쇼생크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두려웠던거죠. 탈출계획도 여러번 검토하고 몇번의 가상 예행연습도 해봤지만 실행에 옮겼을 경우 정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토미의 일을 겪으면서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해야할 일이 명료해지더군요. 노튼소장에 대한 심판, 그동안 일한 댓가의 완벽한 회수, 탈출 이후 레드와의 재회 그리고 제 2 의 인생계획 등이.. 약간의 떨림은 있었지만 전 해냈습니다.

원잭 : 하수도관의 길이가 그렇게 길게 이어질 줄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체력적으로나 악취 등으로 포기하고 싶은 심정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앤디 : 당연히 알고 있었죠. 축구장 다섯개만한 3km의 거리. 그러나 논리적으로 판단하던 그 거리는 막상 겪고 보니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심리적으로는 30km 이상으로 느껴졌죠. 그러나 그 어떤 고통과 악취도 이대로 붙잡혀 다시 쇼생크에서 종신형을 사는 것에 비할 수는 없었고 그 끝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견딜 수 있었죠.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감정들이 하수도관을 벗어나 하늘을 향해 비를 맞이할 때 분출되었고 다시 찾은 자유에 대한 환희와 더불어 결코 다시는 내 삶의 자유를 세상에 빼앗기지 않겠다고 맹세했답니다. (그때의 격정적인 상황이 다시금 실감나게 느껴지는지 그의 주름진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원잭 : 레드와 재회할 수 있다고 믿었나요? 지후아타네오에서..

앤디 : 레드가 가석방된다면 분명 내가 부탁한 일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었죠. 벅스톤에 그가 찾아와 준다면 최종목적지까지 저를 찾아와줄 것이라 믿었죠. 일종의 워밍업 역할을 기대했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레드는 그렇게 했습니다. 저를 믿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과가 불확실한 긴여로를 떠나준 셈이지요. 그래서 전 항상 레드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잭 : 이제 탈출 이후, 레드와의 재회 이후의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죠. 당신이 꿈꾸던 '지후아타네오'는 실제로도 그리던 그대로였나요?

앤디 : 생각보다 물가가 훨씬 비싸더군요.. 농담이구요..^^ 깨끗하고 잘 정돈된 해변에서 바라보는 '지후아타네오'에서의 일몰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장엄하며 꿈결같은 장관을 연출합니다. 레드와 저는 매일 그런 일몰을 봅니다.

이곳 코코넛과 마늘양념으로 쓰이는 향기로운 빨간 snapper의 맛은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라임 주스와 사우사 호니토스 데낄라로 만들어지는 마르가리타도 최고죠. 그리고 해변에선 언제나 펠리컨 떼들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던 그 이상랍니다.

원잭 : 요즘도 직접 배수리를 합니까? 단골이 충분히 늘어났다면 이제 일꾼들에게 맡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레드와 당신 나이를 생각하면..

앤디 :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을.. 돈까지 주어가며 남에게 시킬 수는 없지요. 손님들을 태우고 명당자리로 나아가서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옛날이야기를 더듬는 그 맛을 당신은 잘 모를껍니다. 레드는 초보낚시꾼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준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나보다 더 좋아하지요..^^

우리 두 사람에게 바다는 우리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매일 알려주는 친구지요. 레드와 저 모두 너무 건강해서 탈입니다. 이 나이에도 말이예요.. 최근에 레드가 이런 얘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앤디 너를 만나러 떠나면서, 몇년만이라도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벌써 40년이 흘렀네.. 다시 태어나 한평생을 산거나 진배없으니 돌이켜 보면 그때가 결코 늦지 않은 나이였던거야.."

원잭 : 그곳에서 당신 삶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영혼의 짝을 만나지는 않았나요?

앤디 : 레드덕분에 멋진 여인을 만났지요. 저보다 연상이고 지혜로운 여자랍니다. 한때 변호사로 활약을 했었고, 어떤 꼬마를 위험에서 구한 사건 이후에 마피아의 위협을 피해 이곳으로 떠나와 새로 둥지를 틀었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이름에는 '사랑'이란 말이 들어있어요.. 나의 사랑 레지 러브입니다..^^ (그가 그녀의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레드는 이곳 원주민들 여인네들에게 꽤 인기가 있음에도 장사에만 관심이 많아요. 아마도 쇼생크에서 항상 그를 감탄케 했던 리타 헤이워드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지금도 레지가 결혼하라고 타박을 주면 멋지게 하모니카를 불어서 그 잔소리를 멎게 만들곤 한답니다. 그게 레드지요..

원잭 :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당신의 모습에 모든 분들이 박수를 쳐줄 것 같습니다. 오늘 당신을 만나 이렇게 오랜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끝으로 이 인터뷰를 지켜봐 준 독자들께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지와 레드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구요.

앤디 : 직접 여러분과 인연이 닿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온라인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공명의 힘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쇼생크와 같은 감옥은 단지 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희망보다 절망을 볼 때 보이지 않는 감옥이 만들어 지는 것이지요. 세상의 룰대로만 살아간다면 또 다른 형태의 길들임에 빠져 자기다움이 보이지 않거나 실현할 수 없는 원치 않는 감옥을 또 만드는 것이지요. 다른 누군가에 의해 빼앗기는 자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부정적인 관점입니다.

당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당신은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현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 길들여짐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아 여행을 떠나십시오. 그곳에 당신만의 '지후아타네오'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 에필로그 >

이야기를 나누며 내내 머리속을 맴돌던 앤디의 말이 있다. '희망은 좋은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이다.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이런 얘기를 덧붙이고 싶어진다. '자기다움은 좋은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이다. 자기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인터뷰 주인공은 '죽은시인의사회' 존 키팅 선생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질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하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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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6.12.20 22:36:57 *.116.34.174
'모로하시 데츠지' 라는 유명한 일본학자가 있다. 그가 100 살에 쓴 책이 한 권 있는데 심우성씨가 번역하여 동아시아 출판사라는 곳에서 2001년 출간했다. '공자 노자 석가'라는 책이다.

그대는 이 책을 잘 보고, 그 독특한 방식을 응용할 수 있는 지 생각해 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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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6.12.20 22:39:41 *.140.145.118
감사합니다.. 선생님..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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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6.12.21 09:07:08 *.55.53.160
정말 좋은데요.. 대단한 상상력.
다시 한번 보고싶네요.. 볼때마다 새로운 교훈을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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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6.12.21 13:14:30 *.99.84.60
영화를 보고나서 그동안 몹시도 궁금했던 것인데,
적절하게 다 풀어줘서 고맙다...
다음 인터뷰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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