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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일 16시 46분 등록

<<경주 그리고 인생>>

 

지난 밤에도 막판에 몰린 프로젝트 때문에 두시에 들어왔다. 여섯시에 형이랑 조카와 서울에서 만나서 벌초를 가기로 약속했기에 휴대폰의 알람을 4시 55, 5, 5시 5 이렇게 세개를 맞춰놓고 아이의 편지를 다시 스캐너로 읽어서 카페에 글을 올리고 잤다. 눈을 뜨니 그제서야 알람이 울린다. 찬물에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미숫가루로 요기를 한 다음 집을 나선다. 남편이 먼 길 가는데 일어나지 않는 아내가 약간은 섭섭하다. 마음 한편에 그런 이야기를 해 봐야 만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를 타이른다.

 

서울에 들러서 형과 조카를 태우고 출발을 했다. 서하남 IC로 들어설까 상일 IC로 들어설까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보았는데 거리가 상일 IC가 나을 것 같아서 그쪽으로 갔더니 완전 판단 실수다. 인터넷 시대라 정보를 구하기도 쉬워졌지만 정보의 신뢰성은 여전히 곰곰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다.

 

상일 IC를 통해 들어선 순간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오늘 길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해 준다. 기름이 얼마나 갈지 몰라서 결국 제 2중부를 타지 못하고 그냥 중부를 탔다. 가는길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북클럽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오프닝멘트가 참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 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 버리는 거에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 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빨리 도착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지요.”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또 바다를 좋아한다. 그런데 예전에 산에 오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 정상에 잠깐 올라갔다 왔다는 기억만 있을 뿐 산을 오를때에 계곡이나 옹달샘이나 나무들을 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삶의 자세 또한 비슷하지 않았나 쉽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 목표를 향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었다. 어느날 우연히 이것은 아니냐 하는 의문을 품게 되고 그렇게 목표도 없이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주변의 경치에 너무 정신이 팔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잊어버리고 재미에 만 빠져 있었던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인생의 답이 흑 과 백의 이진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슴깊이 느껴진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목표를 잃지 않으면서 주변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또한 어느 시점이나 일관되게 목표와 주변에 대한 관심의 최적의 포인트를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목표에 매몰되다가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고 돌아서기도 하며 때로는 방황하다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돌아설 수 있는 그 자리 어디쯤에 내 인생의 길이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그렇게 불완전하고 모순 덩어리인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속도>> 

벌초를 하러 내려가다가 보니 도로가 막혔다 풀렸다 한다. 막혔던 도로사정이 좋아지자 너도 나도 속도 경쟁이 시작된다. 남들을 따라 하다 보니 나의 계기판의 속도도 장난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속도가 아니다. 내가 편한 속도를 지켜내는 것 쉽지는 않은 일이다.

 

고속도로에서도 인생수업은 계속된다. 고속도로는 내게 말한다. 인생이나 고속도로에서나 너의 속도를 지키라고 말이다..

 

<<잡초, 비명 그리고 구라>>

 

마지막 IC를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착하니 이미 가까운 곳에 계신 6촌들은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농사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촌놈이라 낫질도 서툴다. 먼저 뿌리채 뽑아야 하는 쑥을 먼저 뽑고 제초기 작업을 하기 어려운 아카시아 나무를 베기로 했다. 조카가 말하기를 쑥은 꼭 뿌리채 뽑아야 한단다. 안 그러면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고 한단다. 그말을 듣고 요즘 여러 번째 읽고 있는 어린왕자에 있는 바오밥나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한 백번쯤 읽을 작정이다. 옛말에 100번 읽으면 뜻이 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묘자리에 들어온 풀들은 여지 없니 잘려나간다. 묘자리에 들어와 있는 나무 또한 마찬가지다. 아버지 묘자리 위를 백년이나 됨직한 소나무가 그늘을 조금 드리우고 있다. 조카와 환갑을 넘은 사촌형님, 당숙 어른까지 한 마디 씩 한다. 내년에는 베어 버려야 겠다고. 그런데 내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왔다. 굳이 자를 필요가 있을까? 수백년을 버텨온 그 나무를 자른다는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인간들이 자기보다 많이 산 나무를 베어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그 나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움직일 수 없는 나무와 풀들이 어디에 났는지가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다. 묘들이 들어서 있는 곳에 난 나무들과 풀들은 여지없이 잘려 나간다. 제초기에 낫에 날아가는 생명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머리는 자꾸 풀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들리기는커녕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제초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귀에 들어올 뿐 풀들의 비명소리 같은 것은 먹물에 빠진 나의 생구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나는 어린왕자의 나레이터가 이야기 한 것처럼 그런 고통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게 아닐까? 어린왕자에서 나레이터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But I, sadly, cannot see a sheep through the sides of a box. I may be a little like grown-ups. I must have grown old.

 

그나마 풀들이 뿌리는 냄새라도 맡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변화>>

 

선산에서 바라보는 동네의 모습은 아담하고 아름답다. 그토록 크게 느껴졌던 학교운동장은 조그맣게 아래에 내려다보이고 있다. 우리 동기생(88명이 입학해서 72명이 졸업했던 것으로 기억난다)이 가장 많았고 그 뒤로 계속 줄어들어 이제 모교는 분교로 바뀌었다. 얼마가지 않아 폐교될 수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동네는 배의 형상이라고 하는 말을 예전에 들었다. 이제까지 나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구글어스의 항공사진을 보니 그러고 보니 앞의 내성천에 밭들이 배모양이고 그위에 마을이 배위의 건축물 처럼 보여진다. 다른 모양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배모양이라고 하는 것도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옛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에서야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을 머리에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여간 풍수지리를 믿지 않는 편이지만 배의 형상이라서 우물을 함부로 파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어릴적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잡초를 베다가 보니 메뚜기, 여치, 귀뚜라미, 벌 심지어 사마귀까지 보통 난리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마귀를 봤다. 어릴적에 푸른 색 사마귀가 대부분이었고 갈색계통의 사마귀가 많았는데 이제는 갈색계통의 사마귀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검은색 사마귀까지 나타났다.

 

돌연변이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인가 변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변화는 그렇게 우연을 통해서도 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것은 변화를 맞이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운명이다. 그 변화를 피해갈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맞이할 것인가만 문제가 될 뿐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나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환경이 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는 것이지만 가슴으로 그리고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자극을 선사하고 있다.

 

<<가을걷이>>

올해는 추석이 예년보다 빨라서 그런지 아직 들판의 곡식은 아주 추수하기에는 이르다. 밤조차 아직 익지도 않은 채 가시를 한껏 자랑하면서 꽉 다물어져 있다. 형수님이 애써 밤 몇 개를 까서 주신다. 떫기만 할 뿐인 밤을 굳이 따는 이유를 모를바는 아니지만 ..

 

마을앞의 내성천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마을 앞의 뜰을 바라보면서 가을걷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올해 가을걷이를 할 수 있을까? 올해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는 나의 마음 밭에 무엇을 경작하고 키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을걷이를 할 것들이 그다지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을걷이 할 생각에 마음만 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다시 속도>>

귀경길에 우연히 국도를 타게 되었는데 충주까지 잘 왔다. 옆에 고속도로를 보니 정체가 심하다. 똑 같은 속도일텐데 어찌 고속도로가 정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국도를 선택한 나에게 기쁨을 선사할까? 정말 졸렬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생각이 일어난다. 크크 그런들 어찌하랴. 그게 나인 것을. 그런 졸렬함까지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라디오를 들어보니 이미 귀경길의 사정이 장난이 아니다. 충주에서 들어선 고속도로는 서울까지 정체가 이어져 있다는 방송이 이어졌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거의 다가와서야 정체가 풀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을 느꼈다. 5시간을 휴게소에도 들르지 않고 10 Km 미만 정도로 달리다가 갑자기 풀리니 속도에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60Km정도로 달리는데도 엄청나게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속도라는 것이 다분히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 Km를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밟아서 80Km이하로 떨어지면 거의 서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60 Km를 달리는데도 이렇게 속도감이 나다니 인간은 간사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오감(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맡는)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절대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봤으니까 내가 들었기 때문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어를 배운답시고 어린왕자라는 책을 여덟번째 읽고 있다. 옛 어른들이 말하기를 100번 읽으면 뜻이 안통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진짜 그런지 시험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십분의 일도 읽지 못했지만 읽을 때 마다 새로 머리에 들어오는 구절 때문에 당혹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모자장수가 성경책을 보면 모자 이야기만 보이고 우산장수가 성경책을 보면 우산이야기만 보인다는 말이 있었나 보다.

 

우리가 보는대도 들리는대로 머리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들을 머리속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경험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사실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나 자신의 시각이 한계가 있음과 그것 또한 실제와는 다른 것 때로는 같은 것도 아주 빠르게 혹은 아주 느리게 보여질 수도 있다는 것 즉 나의 감각의 한계를 알게된 것은 이번 벌초길의 좋은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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