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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4일 04시 32분 등록
과분한 여름휴가가 끝나는 새벽이라 그런지..잠이 더 안온다.
휴가기간동안 내가 즐긴 것은 다음날 걱정없이 신새벽에 책 몇 권들고 논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길고 과분한 휴가를 보내면서
 처음에는 늘상 그렇듯이 산도 삼킬듯하다가 뒷심부족한 태를 내고야 만다.

김치에 웬 피클을 담그냐.. 웬 풋고추에 간장초절임이 웬말이냐
김치는 더위에 냉장고 넣기도 전에 시어빠져버려.. 절이기 쉽다고 열무랑 얼갈리로 선택
하고 생고추까지 갈아냈는데 김치에서 웬 장아찌 냄새냐.. 그러길래 왜 김치에다
젓갈이면 됐지 국간장까정 넣냐.. 이 웬수야. 포기하고 하루지나 이틀지나 사흘지나다
안되겠다 싶어 김칫 국물이 올라와 버린 첫날이후 다시 간을 보니 아예 못먹을 것도 아니다 싶어
냉장고 깊숙이 넣고 매끼니때마다 한대접 두대접씩 먹어치우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나,

피클도 벼르고 벼르다..(피클에 넣는 통후추인지 뭔지 향신료 같은 것 사놓은지가 일년이 지났다
유통기한도 지나버렸다. 그냥 아까와서 맨 마지막에 다 털어 넣어버렸음.)
너무 바빠서 피클오이 사다놓고 냉장고에서 썩어나간 지난 7월의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휴가때 해보리라. 쏘스 없이 올리브오일만으로도 맛난 스파게티가 되지 않더냐. 얼마나 간단허냐.
정성껏 당근 꽃모양꺼정 내고. 밤을 꼴딱 새우고. (내가 왜 이리 휴가때 일 못해서 난리냐. 바보 아냐?)

가평에서 주신 고추 한 봉다리. 어찌 다 먹을까 고민하다 남겨진 간장에 이것저것 넣어 끓여 맛간장 다 붓고
 하루 있다보니 허거덕.. 식초가 빠져부렸네. 그러게 왜 밤새워서 김치피클에다 식초빠진 초절임을 해!
다음날 겨우겨우 식초 섞고 그것 차마 먹을 수 있으려나.
여기까지만해도 참 우스운 꼴량인데.

언제 스파게티며 리조또를 만들겠다고. 카레나 하면 다행이지.
힘이 남아도는 듯 그렇게 시작했던 지난 주중 벌써 기력 쇄진한 노인네 모냥으로.. 쯧쯧쯧.

그냥 소스사다가 해줘라. 그래.. 내일을 그러리라.
내일은 밀린 빨래에다 꼭 대청소와 옷정리(휴가 첫날부터 결심한 그것은 안하고서 딴 짓으로 시간을 보내다니)
그래도 넘 타박하진마.  간간히 드는 해에 실로 몇 달만의 이불 요 빨래도 했쟎아. 
아이랑 옹달샘 어린이 도서관에도 갔지. 최순우 옛집에도 참새 방앗간 마냥 갔지.
청원산방에도 갔잖아.  그래 그래 널 그렇게 몰아세우지는 마. 칭찬해줘라. 뭐.
에고 에고 노력한다고. 단련 안된 몸으로. 경험이 엄마되는 데 약이라며 책보다 낫다고.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날보고. 38년전 브루너의 교육철학 읽었던 분이 그랬쟎아.

네 에너지를 적당히 잘 써봐아. 이 아줌마야.
뭐가 문제인가. 알맞게 사는 것. 그게 균형잡고 질서를 세우는 거라고. 리듬타기.


아이들이 있어서 제 1직업이라 누군가 깨우쳐 준 주부로서의 소양의 빈곤함에 놀란다.
길이 참고 오래 참고 지극히도 참아 기다리라!
결국 윤섭에게 이번주 화요일 밤 화를 냈다.
이유인즉슨, 윤섭은 계속 책읽어달라하고 하루 온종일이 아니라 웬종일이 더 맞는 표인일 거다.
밤까지도. 아침까지도..
뒷심 약한 나는 윤섭 윤하보다  먼저 졸기 시작하고
윤섭은 나를 간지러 깨우다 내 귀에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
더 어릴 때는 내 얼굴을 찰싹 찰싹 치며 깨운다. 책읽어 달라고.
나는 윤하 재워야 하니까 그럴 수 없다. (이 말은 별로 소용이 없다)
왜냐면 윤하 젖물리면서 윤섭이 책장 넘기면 나는 책을 읽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아빠가 한 열권 읽혀서 잠들었다면 나는 첫날은 다섯권 둘째날은 세권 다음날은 두 권으로 점점 더
줄어들고 아예 쭐어든다.
윤섭: 그럼 엄마, 아름~다운 얘기 해줘
어제는 그리 무사히 지나갔다.
엄마:(휴 다행이닷) 으응.. 무지개 나라가 있었대..

오늘 새로 생긴 뜬금없음에 윤섭 항의 시작,
화나서 저 방으로 가더니만.
침대 우로 올라가서 책을 콱콱 던지기 시작.
 뭐라 뭐라 머라고 큰소리로 저혼잣말을 한다.
세상에 책을 던지다니! 이녀써어억~~! 그런다고 책을 던져?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 던졌어?
윤섭: 엄마 싫어, 엄마 미워, 고운 눈빛, 고운 말해야지
엄마:(화가 치솟아 달려가서 난장판 침대밑 책들을 보다가 윤섭을 째려보다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울어? 책을 던지는 게 그럼 잘한 거야?
윤섭: 엄마가 책 안읽어주니까 그렇지. 엄마싫어 난 아빠가 좋다구.
엄마: 윤하 재워야 한다고 아까 말했쟎아. 그 다음에 읽어 준다고. 
윤섭: 싫어.
엄마: 이 책들 정리해!
윤섭: 엄마가 정리해!
엄마:(어안이 벙벙) 그럼 맨날 어지른 것은 엄마가 치우냐.

아침밥을 9시경에 차리기 시작하여 11시경에 끝난다.
요리조리 밥을 안먹어보기 시작한 윤섭.
시중들기 힘들고 나는 끝까지 먹인다.
(밥잘먹고 밥상에 달려들어 우리를 놀래키던 윤섭은 이제 가고 없다)
농부아저씨 슬퍼져. 이렇게 밥풀남기면.. 자 싹 싸악 먹어야지.
 
지난 13일간 집 아니면 집 근처에서 보낸 결론.

기한이 언제 찰 지 모르는 기다림은 길지만 분명 선한 끝이 있다하지 않더냐는
그 말을 머리속에 프로젝터없이 띄워주시는 얼굴이 지나간다.

아이 데리고 예방접종후 옹달샘 도서관 간다고 하니 뛸듯이 좋아한다.
그럼 내 맘대로 책읽을 수 있는거야? 으응.
한 시간이나 지났으려나.
4시경 핸드폰이 울린다. 어제 태안에서 큰 비에 돈만 아깝다며 하룻밤에 돌아오신 대부의 호출
맛있는 거 사줘?
아직 저녁은 이른데 고민이 왔다갔다.
대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부르면 1분도 안돼 즉각 나가지.
나: 네 나갈께요.

그리하야 우리는 담박에 만나 (신서방 친구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 만남의 결론)
 (대부님은 언제나 딸보다 어린 나를 나이어린 친구로 격상해서 대해 주신다
나도 그냥 그분에게만은 예의나 격식을 채려 분위기 험악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나름의 묵언을 지킨다.)
윤하  잠투정이 한창이라 젖을 물리니
대부: 선이는 그렇게 중년이 된거야?  내 앞에서 부끄럼도 없이 젖물리고.
          선이를  만났나 처녀때니까. 내 딸도 내게 그러더라 이제 자기도 사십넘었다고.
          세월이 제일 무섭지. 시간이 제일 무서워.

윤섭은 옹달샘에서 갑작스레 나가야 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나 안먹어 한다.
냉면집에서 짜장면 찾고.
대부는 종업원 불러서 애가 냉면 맛이 없대.여기 짜장면은 부탁해요
 (대부식 농담. 종업원은 화들짝 놀라서 상황파악하는 눈빛)
팔순을 바라보는 털보 할아버지의 당당한 주문에 죄송해여라는 눈빛으로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나.   윤하업고 젖은 등 물냉면으로 시원스레 식히면서
윤섭아 좀 먹어 볼래? 눈을 이리저리 하더니만 고개를 끄덕끄덕.
조금 나눠주니 맛나게 먹더니만 반절이상 남긴다. 남긴 것, 내가 주어삼켜 버린다.
냉면 맛만 좋구만.
선이도 이제 중년이구나. 대부의 놀림섞인 탄성.
 
대부의 배웅을 언제나처럼 받으면서 동성고등학교앞에서 2112번을 타고
우정의 공원으로 윤섭의 맘 풀어주러 간다.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려는 어깨위에 내린 고독.
하. 대부 그 벽화 꼭 그리세요. 머리속을 지나간다.









IP *.46.2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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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05:20:46 *.72.153.58
고생이 많네. 윤섭이 책 좋아해서 좋겠다.
윤섭이를 위해서 조그만 워크맨과 책 내용이 녹음된 테잎이 있었으면 해. 윤섭이 전용, 윤섭이 소유로 된것 말이야. 물론 엄마 아빠가 읽어주면 좋겠지만. 윤섭이는 지금 세상을 배우려고 호기심이 하늘을 찔르는 것도 모자라 우주까지 갈 시기니까 그거 채우려면 하루밤에 100권을 읽어도 모자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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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10.08.14 05:28:09 *.46.234.81
고생이라 치하해 주어 고맙다. 누구나 겪는 일에 엄살한번 떨었지. 이렇게 빨리 읽어답하다니. 깜짝 깜딱이얏. 가벼워지고 싶어서 건성건성 쓰면서 이런글 올려도 되는 것인가 수 번 고민하면서 질끈 감고 올린다.  잘 지내냐?  새벽이 아깝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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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05:35:15 *.72.153.58
이렇게 소식 접하니 좋구만. 진짜 사는 얘기 빼면 여기가 썰렁해 질꺼여.
때론 가볍게 유쾌하게 유치하게, 때론 진지하게 무겁게 살고 있으면서 그거 다 걸러버리면 맛이 밋밋해질거야.

난 잘 지내. 조금 무료한 일상에, 레몬껍질 알갱이처럼 상큼한 일이 몇개씩 툭툭 불거지는 삶을 살고 있지.
새벽엔 그림기리기와 헛짓거리를 병행하고,  주말엔 주중에 못 먹던 커피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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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12:00:39 *.72.153.58
^^*
제가 애를 안키워봐서 선이의 수고로움을 몰아요. 삶이 조금 잔잔해서 아주 강한 자극이 있길 바라는 바보지요.
한명석님 9월 글쓰기 강좌도 재미나게 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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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8.14 07:35:21 *.108.48.107
'이런 글' 올라오니 연구소 사이트에 사람냄새 물씬 나고 좋네요.
어느 댓글에선가 써니가 말했듯,
한참 손이 가는 애들 둘 두고 해마다 신랑 연수 보내는 선이씨가 정말 여장부네요.^^

정화, 레몬 알갱이가 톡톡 터져주면 무료한 일상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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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10.08.14 06:33:58 *.109.73.149
재미와 따뜻함과 그리움이 섞인 일상이군요^^
따뜻한 엄마, 예쁜엄마, 망아지 같은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상.
아이가 하나인 전 채 알지 못하는 그러나 꽤 많은 부분 공감하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아줌마의 삶까지,, 잘 읽고 갑니다.
선희님 휴가 마무리 잘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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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10.08.15 21:46:02 *.157.60.10
한명석 선생님 말씀대로 사람 냄새, 사는 냄새 물씬 나네요.
꿈섭이 요놈, 담에 만나면 엉덩이 때려줘야지. 그래도 책 좋아하니 기특하네 고놈.
오늘 '페어 러브'라는 안성기 나오는 영화를 봤는데 왠지 누나 글과 잘 어울리네요.
마음 따뜻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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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11.11 22:10:29 *.40.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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