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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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의 가을 속에서 꿈벗 한마당을 하는 중에
잠시 둘이서 혹은 외따로 놀았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햇볕에서 빛나고 있는 콩대들이 선 밭을 보면서 제가 아는 콩밭이 '콩밭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누나~'하는 노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보고 싶어졌습니다.
콩밭 속에서 뒹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뒹굴었다면 콩대들이 몸을 찌르고, 그리고, 귀한 콩들이 뒹굴었겠죠.
속에서 달려보고 싶기도 하고...
제가 이 사진을 찍는 동안 어당팔님이 밭 옆에 난 길에서 조용히 기다려주셨습니다.
아침산책을 마치고, 아침도 든든히 먹고 다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운동회하러. 잔디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다가 잠시 쉬는동안,
어디서 타닥타닥, 터덕터덕 소리가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옆에 밭에서 콩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한 경기가 끝나고 잠시 쉬는 틈에 저는 카메라를 들고 잔디밭을 빙 돌아서 밭으로 다가갔습니다.
"저기요~ 여기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작게 물었는지, 아님 탈곡기 소리에 묻힌 건지, 아니면 그냥 듣고도 모른채 하시는 건지
탈곡기는 계속 돌아가고 아주머니 한분과 아들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계속 탈곡기로 콩대를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뾰얀 빛깔. 전 한번도 저런 색을 만들어보지 못해서 콩깍지와 콩대의 색에 매료되었습니다.
크레파스에는 없는 색입니다. 섞지 않으면 만들지 못하는 색. 뽀얗고, 때로는 누르스름한 빛깔.
콩대를 뽑을 때 몇개씩 쥐었는지, 가지런히 쌓여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언젠가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사진 속에 담긴 것들이... 여럿이 모여 있거나 혹은 단 하나만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 한적이 있었습니다. 제눈에는 여럿이 모여서 이루는 무늬도 좋고, 하나만 톡 튀는 것도 멋지고 그럽니다.
콩을 흘리지 않으려고 깔아둔 비늘에 한낮의 빛이 반사됩니다.
콩대와 비늘의 대조가 눈에 와서 박힙니다.
탈곡기는 터덕터덕 소리내며 쉼없이 돌고, 콩은 계속 튀어나옵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탈곡기를 보겠습니까.
불규칙한 소리가 좋게 들립니다.
두분은 쉼없이 대꾸도 없이 일하는 데
미안해져서... 콩대와 콩 사진을 찍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습니다.
잔디밭으로 돌아오니 피구가 한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