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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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적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찍은 사진 중에 몇 장의 이미지를 골라보았습니다. 차례대로 일본 요정의 입구, 잘 정돈된 정원, 유카타 혹은 기모노를 입은 여자의 사진입니다. 이런 이미지들을 우리는 클리셰(Cliché)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이 일본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흔히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이미지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일본의 한국 여행 잡지를 뒤적여보면 한국 혹은 서울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인 듯 합니다. 경복궁, 한복, 기와집, 비빔밥 혹은 한상 차림 등등. 제가 일본에서 처음 일할 때 당황했던 것도 바로 그들이 가진 이런 고정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제작 스탭들이 가져온 일명 ‘한국적인’ 광고 시안은 한 눈에 보기에도 촌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한국의 이미지였나 봅니다.
자,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무어냐고 한번 더 자신에게 되묻는다면 저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원인이 일본의 뛰어난 상술에 있는 것인지, 섬세한 포장 기술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적인 것은 어딘가 눈에 딱딱 들어오는 아이폰의 아이콘과 같은 이미지이라면 한국적인 것은 윈도우의 프로그램 코드처럼 무언가 형태는 있으나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듯 느껴집니다. 게다가 너무 반복 재생되어 늘어져버린 녹음 테이프처럼 철 지난 같은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롤랑 바르트는 도쿄의 시내를 ‘텅빈 중심’이란 단어로 압축해내었고, 루스 베네딕트는 ‘각자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로 일본의 질서를 담아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말하여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없이 말하고 표현하려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김포 공항의 두서 없는 입국장을 들어설 때마다 제가 부끄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