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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3일 19시 34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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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미를 지닌다. - 니체, <도덕의 계보> 서문 중


‘이 뭐꼬?’ 꼭 이런 불교의 화두가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하는 곤란한 질문에 부딪히곤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나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할 본인이 정작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 중역 출신, 맥케너란 여성의 다음 고백은 곧 나의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어, 나는 곧바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다리가 셋 달린 의자처럼, 매일 하는 일 없이 넘어졌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명령 따위 받지 않겠다’는 짐짓 단호한 결심으로 세상에 나섰지만 정작 내가 가진 것은 명함에 찍힌 직함이 거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당혹감. 직장의 규칙적인 봉급과 주말이 주는 아늑한 휴식을 포기한 이유가 단지 일하기 싫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불필요한 사명감.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와 조직이 규정해주지 않은 나 자신의 불확실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감. 이런 것들이 매일 나를 넘어뜨렸다.   


보조국사 지눌은 말했다.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철학자 들뢰즈는 말한다. “반복은 언제나 두 번에 걸쳐서, 한번은 비극, 또 한번은 희극으로...” 넘어진 이유를 정확히 보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다시 반복된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러했듯이. (그것이 이 연극이 끝없는 반복을 상징하듯 2막으로 구성된 이유이다.) 들뢰즈는 덧붙인다.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 까닭은 “정확히 그가 본질적으로 어떤 무한한 앎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내가 넘어지는 그 자리를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나를 직접 볼 수 없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서만 들여다 볼 수 있듯이, 내가 나를 보기 위해선 다른 렌즈 - 타자, 언어, 도구 등 - 가 필요하다. 가령 우리는 현재의 업무나 가족과 연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때로는 전문적인(?) 도구의 힘을 빌기도 한다. MBTI, 스트렝스 파인더, 애니어그램 등. 최근 여기에 ‘사주명리학’이란 하나의 도구를 더해보았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우주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우주의 기운이란 바로 별들의 기운이다. 인간의 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는 서양 점성술이나 동양의 명리학이나 같다. (...)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별들은 태양계 안의 별들이고, 이를 다시 간추리면 해와 달, 그리고 수목화금토성이다. 사주팔자는 이들 일곱 별의 기운을 어느 정도 받았는가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헌, 한국의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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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의 만세력으로 사주를 뽑아보았다. 아직 초보라 정확히 살펴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어렴풋이 나를 비쳐준다. 연월일시의 사주(四柱)와 천간과 지지의 여덟글자(八字)가 내가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카드이다. 흔히 이를 운명이라고도 하지만, 자신의 사주팔자를 어떻게 운용할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정체성에 대한 사뭇 진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최근 사주를 뽑아보았다는 소박한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아마 이것 또한 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리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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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04, 2013 *.10.141.85

더 놀라운 사실은 나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할 본인이 정작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감공감...

그래도 님은 과거형이군요.

 

음...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여전히 작은일에 분노하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접시와 갈아 깊게 담아두지도 못하고..

 

그래도 조금이나마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런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

그것이 그렇게 비장하지도 않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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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1, 2013 *.119.12.209

제 경우엔 글만 과거형이죠. ;;


니체의 말이었던가요. 가장 가벼운 것이 가장 무거운 것이라고.

비장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가장 비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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