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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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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5일 09시 4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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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야근을 하다가 한밤중에 현업실에서 나와 노장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무서운 그녀석을 만난 것은. 기상청에서는 한밤중에도 일정한 시각이 되면 날씨를 관측하여 단말기를 통해 중앙의 컴퓨터에 전송해야 해서 밤 12시 이건 새벽 3시이건 무조건 밖에 나가서 하늘을 보고 백엽상을 들여다 봅니다. 2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데, 까만 현관문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습니다. 한발한발 내려오면서 평소처럼 하려고 노력하면서 마음 속에서는 여러가지 경우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한밤중에 공원에 놀러온 사람이 들어온 것인가? 간혹 그런 일이 있다던데.....'

한발 한발 내려디는 동안 그림자는 조금 더 잘 보이고 아무소리도 없었습니다. 오직 제 발자국 소리였지요. 손에 후레쉬를 들고는 있었지만 그걸로 확 비춰보자니 상대를 혹시라도 자극하는 걸까봐 놀라지 않은 척 다가갔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지요.

'안은 밝고 밖은 까마니까 저건 내 그림자일꺼야.'

그랬습니다. 그건 제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또 놀랬습니다. 그 까만 사람 그림자가 2개더라구요. 

'하나는 내껀데 다른 하나는 뭐지?'

그러다가는 궁금해서 주위를 휭 둘러보았지요. 사람은 하나인데 그림자가 둘이라서...... 그 무서운 존재가 문밖에 있으면 그나마도 안심인데, 그게 제 곁에 있는 것의 그림자라면 폴짝 뛸 일이지요. 그래도 안놀란 척 주변을 휭 둘러보았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저를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무서움에 떨게 했던 것은?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풀어 놓았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 강박이었습니다. 작품을 막 만들기 시작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선점해야한다느니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동의하기가 어렵웠습니다. 선점해야 한다는 것도,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시대가 그러니 그래야 한다면 머리로 동의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렇게 하더라도 작업에서 그게 드러나기는 쉽지 않으니 고민이었습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는 예술가(미술가)들이 계속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곰브리치는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시대에서는 새롭고 기묘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인 경우가 많고, 일부만이 그것을 수용하여 발전시키고 변화시켜나간다고 말했습니다. 그 수용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질때쯤이면 예술가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들고 나와서 그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미래를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래를 사는 사람이라, 저는 그말이 꼭 천벌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로 여겨졌습니다.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 몇 없는 아주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뒷풀이 시간에 그것에 대해 선생님께서 답을 해주셨습니다. 아니 먼저 질문을 하시더군요. 자신이 그린 것이 얼마나 마음에 드냐구요? 저는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번 마음에 든다고 답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어쩌다 한번 때문에, 다음번에 또 하고, 또 하고, 또 이만큼 해서 다가가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그런사람은 그것을 하는 그 순간을 사는 현재를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만들어 지고 나면 비평가들이 미래네, 과거네 하지만,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은 현재에서 그것을 하니까 그건 미래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웃음이 나더군요. 


아, 먼저 이야기한 그거, 2개의 그림자요. 그게 무엇이었을까 짐작해보셨나요?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한밤중에 자기 발소리에 놀라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놀랐던 경험.

한밤중 현관문 유리에 비쳤던 사람은 제 뒤에 서 있었을까요?

그림자라서 희미하게 보여서 잘 몰랐네요. 뒤쪽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천장에 형광등이 2개 달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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