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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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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2일 13시 3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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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름휴가는 가족과 보내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의 여름에 회사에 입사하고 첫해 되는 해에, 휴가에 지리산을 종주한 적이 있습니다. 남동생과 남동생 친구들 2명과 함께 노고단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후내내 걷고 저녁에 밥먹고 골아떨어지고, 다시 다음날 걷고, 밥먹고 설겆이하러 간 사람들 기다리지도 못하고 폭 꼬꾸라지고, 천왕봉 일출을 보러가자는 말에도 눈도 못뜨고는 안간다고 뻗대고, 그리고 다시 아침 먹고 걷고 내려와서는 버스타고 돌아왔습니다. 지리산을 한번 종주해 보고 싶다는 것은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대학생 때 첫번째 시도에서는 체력 한계로 하루만에 돌아왔지만, 2번째 시도에서는 회사업무에 시달리다가 가벼워진 몸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낮동안에 열심히 걷는 동안 지리산에 온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 일행처럼 그들도 몇몇씩 같이 왔더군요.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온 일행이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했더니, 남녀가 같이 온 사람들을 부러워해야지 뭐냐하더군요. 그때의 제 남동생도 남녀쌍이 부럽다고 하더군요. 친구들 중 몇은 친구들끼리 같이 온 사람이 부럽다고 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전 가족과 여행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가족만 오붓하게 여행한 것은 한번도 없습니다. 고등학생일 때였던가, 중3쯤이었나 우리가족은 처음으로 1박2일로 계곡으로 놀러갔습니다. 고향 순창의 강천산으로 갔습니다. 고향 동네 가까운 곳이니 놀다가 집에와서 자라는 친지, 친척 어른들의 말을 들었지만, 가족끼리 밥해먹고 한밤 자고오겠다고 나섰습니다. 텐트를 치고 밥을 했습니다. 밥이 끓을 때쯤에 신나서 폭짝폴짝 놀던 때에 사고가 났습니다. 남동생이 계곡에 함부로 버려진 깨진 유리병에 발을 크게 다쳤습니다. 발을 깊이 많이 베어서 아버지는 남동생을 들쳐업고, 어머니와 저는 텐트를 걷고 짐을 싸서 끓던 코펠을 뜨거운 채로 싸서는 짊어졌습니다. 어린 두 동생들은 놀라서 아무말이 없이 따라왔습니다. 서둘러서 산을 내려왔고 전주에 있는 큰병원으로 바로 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혈하느라 붙여둔 쑥을 의사가 사정없이 뜯어낼 때 아들이 소리를 질렀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고 하셨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코펠의 덜된 밥을 솥에 다시 퍼담고 가스불에 밥을 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까지도 가족여행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리산에서 온 사람들 중에 부러운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나는 왜 아버지와 아들이었나를 잘 알지 못했는데, 어제밤에, 새벽에 문득 그것이 생각 났습니다. '아, 내가 그 사소한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구나'였습니다. 그게 대체 뭐라고, 그게 대체 뭐라고.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말입니다. 가족끼리 밖에 나가 밥해먹고 한밤자며 시간보내고 오는 그것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는 어머니 친척들(외삼촌내외, 이모 내외, 사촌들,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데 가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가 하면서 수박 먹고, 민화투도 치면서 별거 아닌 사는 얘기하고, 밥 한끼 먹고  저녁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만이 여럿이 함께하는 휴가를 보내고도, 저는 그것이 아닌 따로 계획하고 좀더 가족과 더 가까이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한 떡을 먹고 싶습니다. 제가 먹고 싶은 떡은 어머니가 해주시는 것입니다. 시집가기 전에 꼭 한번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떡을 먹고 싶습니다. 떡이야 떡집에서 하는 거니까 특별한 것이 없는 그런 것이겠지만 제가 먹고 싶은 것은 그것에 나름대로 저만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생일에 떡을 하곤 했는데, 제 생일엔 한번도 떡을 하지 않으셨거든요. 그리고 너를 낳아서 좋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떡은 그런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 생일 떡이란 게 뭐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바래왔나 하면 제가 참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버렸음에도 아직도 어리구나 합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런게 대체 뭐라고'라고 할만한 사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이 제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요즘 인기있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말중에 ,'그 느낌 아니까'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그 느낌 아니까'라고 해도 될까요. 뭔가를 욕망한다는 거,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를 짐작해봅니다. 저는 사소한 것들을 바라는 것을 버리고 싶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은 버린 듯 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솟아나는 샘물같습니다. 불쑥 한밤중에 떠올라서는 잠못들게 합니다. 그 사소한 욕망이 시시때때로 모양을 바꾸며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꿈을 이야기할 때, 집을 갖고 싶다, 가족과 여행을 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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