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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7일 01시 16분 등록
굽은 나무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지난 일요일, 집 뒷동산을 산책하다가 당당하게 한 그루 느티나무를 만났습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노란 빛인 양 흔들리는 연초록 어린 나뭇잎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정취에 빠져 한참 동안 느티나무를 바라보다가 그 그늘 아래 단풍나무 한 그루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전체 길이는 3미터 가까운데 직선의 키는 그 절반쯤 되었습니다. 대충 보아도 90도쯤 허리를 꺾어 느티나무 가지를 빗겨 자란 모양이 애처로웠습니다.

느티나무가 하늘을 막고 서있으니 그 바로 아래의 단풍나무는 햇빛을 향해 제 허리를 꺾어 옆으로 자라고 있었던 겁니다. 그 모양은 비록 기묘했으나 가로등 빛을 받아 더욱 아름다운 단풍잎은 어느새 무성해 있었습니다. 녀석도 때가 되면 씨앗을 맺고 멀리멀리 떠나 보내며 제 몫을 해낼 한 그루 당당한 나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나무는 곧아서 아름답고, 느티나무는 풍성해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단풍나무는 붉디 붉어 단풍이라 부르고, 붉어졌을 때야 비로소 아름다운 나무가 됩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라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 비록 그늘을 피하느라 휘어진 생장의 역사를 담고 자라더라도, 그는 끝내 붉은 생을 살며 씨앗을 맺을 겁니다. 누가 이 휘면서 자라는 단풍나무의 생(生)을 보고 타협과 굴욕의 삶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척박한 환경과 맞서며 항거하고 적응해낸 훈장 같은 삶이겠지요.


사스래나무처럼 휘어진 인생을 딛고 작가간 된 유용주님은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다수의 사람들처럼 당신도 휘어진 역사를 품고 살고 계신가요? 그러나 당신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걸으며, 자라며 당당해 지는 이후의 역사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휘어진 단풍나무를 바라봅니다. 저처럼 굽어있는 당신의 과거를 지지합니다.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을 믿습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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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6.04.27 01:30:41 *.111.223.47
...당당하게 한 그루... → ...당당하게 자란 한 그루...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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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을 꿈꾸며
2006.04.27 11:59:25 *.208.4.59
굽어 있는 나무나 사람은 그러함으로 더욱 숭고합니다.
그것을 보완할 나름의 자원을 갖기 위해 치열하고도 지난한 삶을 살아 냅니다. 구족화가인 앨리슨 래퍼는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존심만이 그 출발의 동기가 될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늘에 있는 사물(사람)을 조명해 희망을 전달하려는 김용규선생님의 따뜻한 인간미가 그 단풍나무보다 더욱,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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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6.04.28 14:43:53 *.237.208.151
말씀대로 현재의 모습을 스스로 수용하고 당당히 변화를 모색하는 자기 존중감이 출발점일 것입니다. 휘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과거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 존중감을 구축하지 못하면 미래 또한 못마땅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출발을 꿈꾸며님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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