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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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한 남자
김왕노
한 여자, 한 남자에게 들꽃이고 싶은 한 여자, 한 남자에게 내리는 비와 햇살을 조금 얻어 한 여자, 한 남자의 모퉁이에 종일 들꽃이고 싶은 한 여자
한 남자 들꽃이 된 여자를 안고, 총부리도 지나 국경을 넘어가고 싶은 한 남자, 이념도 구멍 난 신발처럼 버리고, 푸른 사과 주렁주렁한 나라로 가고 싶은 한 남자, 아나키스트의 나라를 만들고 싶은 한 남자, 한 여자에게 한 잔 커피가 되고 싶은 한 남자, 한 남자, 제 생의 블랙 커피 한잔으로 한 여자에게 깊은 맛이 되고 싶은 한 남자, 한 여자의 목구멍을 적시며 가버린 혁명에 대해, 저문 혁명가에 대해,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남자, 한 여자의 남자이고 싶은 한 남자, 한 여자, 한 남자의 들꽃이고 싶은 한 여자
들꽃이 된 여자를 안고, 그 바람을 건너고, 꽃잎마다 물방울 맺히는 새벽으로 가려는 한 남자, 때로는 원죄에 우는, 유혹의 혀 날름거리는 한 여자, 그리고 한 여자의 한 남자, 한 남자의 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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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사원의 문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는 한 남자
‘추하게 늙지 않게 하소서’
어둠을 헤치고 한 남자의 옆에 다가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한 여자
‘아름답게 늙어가게 하소서’
한 여자의 등장이 놀라운 한 남자, 한 남자가 왠지 든든한 한 여자, 같은 듯 다른 기도를 하는 한 남자, 다른 듯 같은 기도를 하는 한 여자 촛불을 살려 간곡히 기도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저희를 위해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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