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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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2017년 4월 12일 01시 07분 등록

오늘로 이곳에 온 지 꼭 1년이 됐습니다.


12시간의 거리도 그렇거니와 이곳을 잠시라도 떠나면 안 되는 처지이기에 이번 해에는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작년 출국일 새벽에 찾아 뵈었으니 됐다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거 같습니다.


이곳에서도 벚꽃이 한창 흩날리고 있습니다. 참 좋아하는 풍광이지만 몇 해 전부터 좋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해야만 하는 아픔이 생긴걸 알지만 그 무엇도 감쇠시켜 주지 못하니 오늘 하루는 센치해 지기로 했습니다.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4개월간 떨어져 살다 다시 만난 아내는 이곳 사람들의 여유와 겉치레만이라도 좋은 매너 그리고 자연에 감사해 하고,
영어 한 마디 못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이제 혼자 숙제도 척척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방인 친구들뿐 아니라 현지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보다 밝아진 것도 좋지만, 기관지가 안 좋아 밤새도록 토해내던 기침 소리가 어느 순간 싹 사라졌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딸 아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누구보다 빨리 적응을 마쳤습니다. 수학 챔피언이 되어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2주전에 새로 온 한국 친구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너무 대견 합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토피가 없어지는 감사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게 똑같겠지만 이곳은 다를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프고 다른 집 아이가 명문 학교에 입학하면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는 것도 같습니다. 휘둘리지 않아야 하는 제 마음만 똑같이 가져갈 뿐입니다.


다만 이들의 오랜 노력끝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해낸 저력이 부러울뿐입니다. 해리 포터가 새로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자체만으로 기뻐하고 1년 뒤에야 볼 수 있는 뮤지컬을 예약하고 나서는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거 마냥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테러가 일어나면 진심으로 슬퍼하고, 어디를 가도 장애인이나 임산부에게 모든 걸 양보하고, 그들로 인해 지체가 되어도 어느 누구도 인상을 찌뿌리는 일도 없습니다. 임산부의 가슴에는 'Baby on train'이라는 배지를 달아 기차 안 모든 이가 양보 하겠다며 소란을 피우기도 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때 공항에서 갈길을 잃어 헤매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저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항공사 장애인 직원이였습니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준 적은 있지만 도움을 받은본 적이 없었기에 어색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말은 했지만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저를 일깨워 주는 일이였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니였음을 알았습니다. 같은 사람임을 말입니다.


책 한줄도 못 읽고 지쳐 쓰러지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생각의 끈만은  놓치지 않으려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묵묵히 한 발 한 걸음 걸어갈 뿐입니다. 이것이 저에게 맞는 방법이고 배움은 느리지만 잊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되뇌이는 일이 많아집니다.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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