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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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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일 10시 59분 등록

서식이 깨지는 부분이 있어 링크 걸어 둡니다.
http://blog.naver.com/webpoet/221021911372
아래 원문 올립니다.






I. 저자에 대하여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일요일 오후, 담요 털러 나가서 양지바른 곳의 모래 흙을 가만히 쓸어 보았더니 그 속에 벌써 눈록색의 풀싹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은 무거운 옷을 벗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던 소시민의 감상이 어쩌다 작은 풀싹에 맞는 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슬픔이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울타리 밖에 사는 우리보다 넓고 아름답다. 시인 김용택의 "아름다운 역사의 죄를 지은 이들이 내어놓은 감옥에서의 사색은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글귀가 공감되는 부분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듯, 수형 생활 중 자신이 직접 겪으면서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와 사색들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져내린 뒤 자본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기말의 상황 속에서 그가 찾아낸 희망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그는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도 푸르고 굳건하게 뻗어가고 있는 '남산의 소나무들'처럼 '메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낸다.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늘의 자본주의문화에 대한 그의 시각은 냉엄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상한 채 상품미학에 매몰된 껍데기의 문화를 그는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정보'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오늘의 신세대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지배구조의 말단에 하나의 칩(chip)으로 종속되는 소외의 극치일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임을 갈파한다. 또한 단순히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소나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면서 자연을 오로지 생산의 요소로 규정하는 현대 문명의 폭력성을 질타한다. 이러한 근본적 성찰의 밑바닥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연대에 대한 옹호이다. 그는,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20년 수형 생활을 통해 얻은 가르침과 동양고전을 통해 유연한 세계 인식의 틀을 설명한 『담론』은 부제 그대로 그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고 역설한다. 책 속 곳곳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가르침이 그득 담겨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16
미국 문화와 유럽문화를 다투어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치장하려고 하였지요.(중략)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던 것이 근대화의 서구 문화였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습니다.

P.24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P.25
과거는 그것이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 바꿀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 표현이 참 좋네. "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표현이.

P.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P.28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중략)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행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반대의 논리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한 것이지요.

P.29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 관계망안에서 기회가 생기고 성장의 길이 생기고 있다. 관계망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해결할지 정리하고 실행하는게 바로 내가 성장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P.31(?)
과학은 희망을 주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 이부분이 이해가 잘 안된다. 과학 그자체로는 상관없는 것인데 인간의 개입으로 변화내지는 변경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일까?

P.32
대립면을 상실한 질주입니다.
  • 상호보완관계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의 질주

P.32
동양의 역사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문주위적인 가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P.36(+)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 사람을 만나고 글을 만나고, 만남의 반복속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P.39
예술가 특유의 고집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쌓이는 도자기 파편으로 산천이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그릇이 진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생성의 질서가 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P.39
어떤 존재가 특별히 자기를 고집하거나, 비대하게 되면 생성과정이 무너집니다.
  •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고집
  • 순환하는 소통이 점점더 중요해지는 거 같다

P.42(++)
동양적 인간주의는 이처럼 철저하게 관계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 관계안에서의 존재적 개념이겠지

P.42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을 인(仁)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 이타적인 행동이 결국은 자신을 일으킨다는 것인가? 

P.47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길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 급하면 지거나 서서히 밀리게 되지

P.52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영혼이 병드는 시간으로 전락해서 결국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도, 그것이 자신의 말인지 타인의 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건 참안타깝다

P.54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내의 논리지요. 소박한 민중의 삶이며 소망입니다.

P.58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

P.63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이라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지요.
  • 마흔세살에 다시시작하다(P.125) :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P.64~65(++)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P.66(+)
누가 누구를 모방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개인적 세계를 열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자기의 좁은 체험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시경」의 세계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짓없는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매몰되고 있는 허구성입니다. 미적 정서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 개인적 세계를 열어가려는 노력. 모방을 통해서건 만남을 통해서건 마음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P.68
기록으로 남기는 문화 전통은 농경민족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농경민족은 유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P.70
군자는 무일(편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된다.
  • 실무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 귀가 막히고 눈이 막힌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는데. 리더들이 해야할 일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는 것

P.71
생산 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P.72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 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P.75
레닌은 「우리는 어떤 유산을 거부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공부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를 준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했지요. 나는 이 「무일」편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버려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중략)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시대나 어떠한 곳에서도 변함없이 관철되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P.75
나는 이 「무일」편이 무엇보다 먼저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화두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드의 가치관을 반성하는 경구로 읽히기를 바랍니다.(중략)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P.76
유목 문화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동일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가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P.77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P.83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 남방인들의 기질이 험난한 풍토에 단련된 북방의 강인한 기세를 당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P.84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P.89(+)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야 겸손을 알 수 있다

P.90(++)
의난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들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 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서 복서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폭넓은 식견, 그리고 의견을 수렴하는 소통

P.90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지요.

P.91
그만큼 해설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그것이 바로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적 해석이 곧 사물과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는 판단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P.92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 실업에 처한 사람이 그토록 처절하게 읽었던건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길을 찾고자 함 이었을 것이다.

P.93(+)
세상에는 수 많은 사물이 있고 사물과 사물이 관계하여 이루어내는 사건이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P.94
우리는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회관이 있습니다. 사회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관뿐만 아니라 여러가지의 인식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관과 인간관 등 우리가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지 않고 있든 익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인식의 틀이 있습니다.
  • 길게 쓰기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정관념이라는게 있다'라고 표현했으면 깔끔하지 않았었을까

P.101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헤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 때론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 그렇지만 오르지 말아야할 자리에 오른 사람을 보면, 처음의 달콤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에는 불행하게 되더라.

P.101
여러분은 어떤 자리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지요?(중략)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P.106~107
점(占)은 상(相)이나 명(命)처럼 이미 결정된어 있는 운명을 엿보려는 것이 아니라, 의난(疑難)을 당하여 선택과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이 복서(卜筮)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미신이라고 할 수 는 없습니다. 점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는 어떤 현상과 상황을 우리들의 일상적 관점과는 다른 논리로 재해석하고 조명하는 인식체계입니다.

P.111(+)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창건이든, 회사 설립이든, 또는 전위조직의 건설이든 많은 사람들의 중의(衆意)를 결집해서 시작해야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부모형제와 함께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자기만을 위한 방법이 아닌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해.

P.112
자기집단의 이기주의를 벗어나서 대의와 정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도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13(++)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 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 입장이 바뀔때가 있으며, 과거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곧은 마음의 믿음에는 삶이 있다.

P.116(+)
동료를 경계하지 않고 진실로 결속해야 하고 이해관계로 결속하기 보다는 초기의 이념적 목표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P.119 (++)
관계란 다른 것을 항하여 열려 있는 상태이며 다른 것과 소통되고 있는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그것이 태(泰)인 까닭. 그것이 비인 까닭이 오로지 열려 있는가 그리고 소통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의하여 판단되고 있는 것이지요.
  • 관계망안에서 호흡한다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오래전 부터 강조하는 것을 보면 소통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상대를 받아 들이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

P.126
동양 사상은 기본적으로 땅의 사상이며 모성의 분화라는 것이지요.

P.127
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무엇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순환하고 이어지고

P.127
실패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즉 인간관계를 디딤돌로 하여 다시 재기하는 것이지요

P.129(++)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 목적지만을 가는 길도 있지만, 살면서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길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잊고 있는건 '저 곳에 도착하면 모두 이루어 질 것이야'라는 생각인데, 그건 내 생각인것이다.

P.129(++)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이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 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 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130(+++)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31(++)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서 지나지 않습니다.

P.137
「논어」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공자어록입니다.(중략)
「논어」에는 공자뿐만 아니라 공자의 여러 제자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P.140
아와는 반대로 「논어」와 공자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물도 엄청나게 쌓여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P.142
학습은 그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것입니다.
  • 그래. 공부는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방편이었지. 그렇지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신분상승보다는 삶을 영위하는 길이 되고 있다. 지식으로 전승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니까.

P.143(+)
멀리서 벗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중략)
붕은 수평적 인간관계이며 또 뜻을 같이하거나 적어도 공감대가 있는 인간관계를 의미합니다.

P.144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쁜 것이지요.

P.145
「논어」는 인간관계론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중략)
사회의 본질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사실만은 여러분과 합의해두고 싶은 것이지요.

P.145~146
어느 기자로부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자본론」과 「논어」를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자가 매우 의아해했어요. 이 두 책이 너무 이질적인 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두 책은 다 같이 사회 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동질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중에 찬찬히 읽어봐야 할 책

P.149(++)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단절된 형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P.149
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이었지요.

P.149(++)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편의를 위한 관념적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 지금 생각해 두고 미리 그려놓았던 것은 과거의 것이 될 수 있지만, 그 풍경이 다가오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결국 미래. 항상 풍광을 그려 놓고 그리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

P.156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P.163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P.168(++)
마음 좋다는 것은 마음이 착하다는 뜻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이처럼 관계에 대한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놓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거나 좌우명으로 걸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자리잡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있는 그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68
"마음 좋은 것이 덕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덕의 의미는 「논어」의 이 구절에 나와 있는 그대로 입니다. '이웃'입니다. 이웃이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P.168(++)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절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P.171(++)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일화입니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신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인(人)+언(言)의 회의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신(信)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고 풀이되고 있지만 언(言)은 원래 신(神)에게 고하는 자기 맹세이므로 신(信)이란 곧 신(神)에 대한 맹세로 보기로 합니다. 사람들 간의 믿음이라는 뜻은 후에 파생되었다고 보지요. 그만큼 신(信)의 의미는 엄격한 것이지요.

P.172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P.174
지인이란 타인에 대한 이해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을 아는 것이 지(知)라는 대단히 근본적인 담론을 공자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P.175 (+)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팔기 위해서'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 가치와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P.180
한 시간쯤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30분 정도는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덥고 읽은 것을 다시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어둡지 않게 된다는 것이 할아버님의 해석이었습니다.
  • 정리해 나가면서 책을 읽는 과정이 지금의 과정이지 않을까 한다

P.181(+)
사(思)를 경험과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P.181
경험과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성입니다.
  • 답은 현장에 있기 마련이지

P.182(+++)
「학이」편에 '학즉불고(學則不固)'란 구절이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학(學)이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지는 것입니다.
크게 공부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배운다는 것은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경험에 갖혀서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 지고 고집스러워 집니다. 공부라는 것은 관계성의 자각과 성찰입니다

P.183
책상에서는 한가지 이지만 실제로 일해보면 열가지도 넘는다
  • 현장의 모르니 책상에서만 하나가 전부인것 처럼 생각하고 고집스러워 진다. 현장에 답이 있기 마련이다. 

P.187~188(+)
윗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욕심이 날로 사라지고 지혜가 날로 밝아진다고 하였습니다.
  •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P.188(+)
공을 숨기고 겸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욕심이 없어야 겸손할 수 있으며 욕심이 없어야 지혜가 밝아질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갈공명의 명석한 판단은 무사(無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윗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마저도 없었지요. 이처럼 무사(無私) 하기 때문에 공평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에 이치가 밝아질 수 있는 법입니다.
  • 삶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P.188(++)
대부부의 경우에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명석합니다. 이 말에 대하여 아마 선뜻 납득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자의 시각이 정곡을 찌르는 법입니다.
  • 명심하고 항상 다짐해 놓을 것

P.194(++)
「논어」가 인간관계론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관계론은 특정한 시대의 사회 질서를 뛰어넘는 관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 인간관계론은 특정 시대를 뛰어넘어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어쩌면 진리라는 것은 그거라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도 그 대로 존재하는 것

P.212
맹자가 공자를 잇고 있는 사상가임에 틀림 없습니다만(중략)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재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P.212~213 (+)
왕께서는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

P.213(++)
위 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利)를 추가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P.233
삶의 자세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의 작은 실수도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바깥이란 남이기도 합니다.

P.239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중략)
다시볼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피차 배려하지 않습니다.

P.240(+)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사회입니다. 상품 사회는 그 사회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과 상품의 교환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당연히 인간관계가 상품 교환이라는 틀에 담기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교환의 형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P.242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P.264(++)
노자철학에 있어서 무(無)는 '제로'(0)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의 의미는 무명(無名)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명(有名)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안으로 들ㄹ어온다는 것이지요.

P.284
도는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도에 가까운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이지요. 물로써 도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P.295
백성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불신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요컨데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백성, 즉 민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함으로써 신뢰받는 일입니다. 백성들을 믿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 입니다.

P.296
공성사수, 즉 일이 성취되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이룩한 일을 생색내지 않는 것입니다.

P.296~297
정치가는 진심으로 백성들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정치적 목표는 백성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그러한 지혜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지요.

P.297
노자의 자연은 'nature'가 아닙니다.
  • 인위적으로 간섭하지 않는 것을 '자연'으로 보았다.

P.330
동양적 가치는 '인성(人性)의 고양'입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가 아닙니다. 도의 깨달음과 도의 체득 그리고 합일입니다. 물론 현대의 동양에서는 이미 이러한 가치와 정서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동양의 근대화란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333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효율성보다는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복원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352
오늘날의 지식이 하는 일이란 대체로 이런 역할에 지나지 않지요. 정권을 유지하게 하거나, 돈을 벌게 하거나, 나쁜 짓을 하고도 그것을 그럴 듯하게 꾸미는 일을 대행하는 일이지요.

P.354
나는 여럽룬이 개인적으로 계속 공부하기를 물론 바랍니다. 그리고 특히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는 태도를 갖기 바랍니다.

P.370
백성들은 세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주린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에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중략)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連帶)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P.370
묵자는 그의 사상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있어서도 매우 훌륭한 모범을 보입니다.

P.374(+)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P.375
겸애는 별애(別愛)의 반대 개념입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사회적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相利)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임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도적, 법제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75
애정과 근대사회의 개인주의적 인간 이해를 반성하는 귀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P.382(++)
그러니 묵자께서 말씀하기를, "엿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P.386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ㅇ낳고 드러내 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 세상의 인심이 다 그렇지. 어느것을 택하든지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린게 아닐까 생각한다.

P.395
"천명이란 폭군이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폭군이 자의적인 횡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천명이라는 것입니다.

P.398
맹자는 묵가의 고결한 가치인 엄격성과 비타협성 그 자체를 비판합니다. 그리고 겸애라는 이상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도 그것이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것임을 비판합니다.

P.409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체계입니다. 능참, 즉 주체적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인문 세계의 창조와 관련하여 순자는 결국 유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P.414
인간의 본성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선악판단 이전의 것입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에 의하면 본성은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에서도 나오는 내용

P.416(++)
묵자는 인간 본성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것입니다. 묵자는 소염론(所染論)에서 인간의 본성은 물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원래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자라나고 구성되어진다는 이야기. 묵자의 이야기가 나의 생각과 비슷하다

P.423(++)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욕구 충족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성악적 측면이 순자의 교육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성인이나 폭군이나 군자나 소인이나 그 본성은 같은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인간관이 되고 있습니다.
  • 송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교육이 무엇일거 같으냐?'의 질문과 같은. 신부님읜 순자의 사상에서 영향을 맏으셨던 것일까. 이런걸 느끼기 까지 20년을 돌아왔구나.
  • 찾아 뵐 때가 지났는데...올해는 꼭 찾아 뵈야 겠다.

P.423~424
인간의 본성은 교화될 수 있으며 또 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교육학이며 사회학입니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까닥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P.475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覺)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포기, 벌레 한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 많은 꽃으로 가닥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 'DNA의 역사'라는 출발점에서 보면 꽃과 나는 다르지 않고,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P.481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 서구 사상이 도입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이외에 문면이 있다는 사실에서 받은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중국이 불교에서 받은 충격은 이러한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것입니다.


III.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1)아쉬운 점
  • 순자, 유자, 법가도 각각 따로 분리하여 정리 했으면 좋을 법했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1)아쉬웠던 부분
  • 한자의 음을 달아 두었으면 좋았겠다.
  •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부터, 연대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 연대별 인물의 표가 있었으면 좋을거 같다.
2)이해가 안된 부분
  • 과학이 왜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P.31)
    • 순수과학으로 탐구하고 연구하는 차원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인간의 개입이 문제가 됬음을 지적하시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판도라의 상자, 유혹받은 이브와 같은 거겠지.
  •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깊이있게 다가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
3. 이 책의 장점
  • 고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잘 설명해 주셨다.
  • 해설의 미묘한 부분까지 잘 짚어주셔서 하나 하나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됬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 강의 CD를 넣어 두었으면 어떠했을까
  • 공부를 더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떻게 공부하라고 일러두기를 넣었으면 좋겠다.
  • 인물별 간단한 요약정리 내용들을 장이 끝날 때 마다 실어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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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11:04:08 *.124.22.184

나와 비슷한 생각이 많았네요. ㅎㅎ 두꺼운 책 일주일만에 읽느라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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